[딜사이트 김기령, 김은서 기자] “증권시장의 기업공개(IPO) 규제가 지금처럼 계속된다면 앞으로 벤처캐피탈(VC)들은 라이선스를 반납하고 모두 집에 가야 할 상황입니다.”
김학균 한국벤처캐피탈협회장은 8일 서울 서초구 양재 엘타워에서 열린 ‘2026년도 벤처캐피탈 출자기관(LP)-벤처펀드 운용사(GP) 교류회’ 패널토의에서 정부의 IPO 규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재명 정부가 중복상장 규제라는 명목으로 증시 상장의 문을 좁게 만든 것에 대한 벤처투자 시장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이다. 김 회장은 “매년 조성되는 벤처펀드 규모는 10조원을 넘어 20조원을 향하지만 기업공개(IPO)를 통해 회수할 수 있는 자금은 연간 3조원 안팎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 IPO 병목현상 심화…20조 넣고 회수는 3조
이날 토론은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좌장을 맡았다. 김 회장을 비롯해 송영훈 법무법인 광장 고문, 김봉섭 한국성장금융 실장, 안희철 법무법인 DLG 대표변호사가 패널로 참여해 IPO 시장 변화와 벤처투자 회수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김학균 회장은 상장기업 수만으로 국내 IPO 시장의 적정성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근 5년간 연평균 약 100개 안팎의 기업이 상장했지만 공모가 기준 평균 시가총액은 1500억원을 밑도는 수준이다. 이를 토대로 산출한 연간 신규 상장기업의 전체 시가총액은 약 15조원이다.
VC가 보유한 평균 지분율을 20%로 가정하면 IPO를 통해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은 연간 2조4000억~3조원 수준에 그친다. 김 회장은 “2020년부터 10조원 이상의 벤처펀드가 결성되기 시작해서 이제 시장 규모가 15조원, 20조원으로 향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상장 기업 수가 연간 100개에 그친다면 VC는 살아남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상장 이후 혁신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할 기관투자가가 부족하다는 점도 근본적인 문제로 꼽았다. 벤처투자는 공적자금과 기관자금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반면 IPO 이후 회수는 개인투자자에게 의존하는 불균형한 구조라는 것이다. 김 회장은 “VC가 초기부터 투자해 기업을 상장시키면 이후에는 기관투자가가 바통을 이어받아야 한다”며 “코스닥이 단순한 회수 창구를 넘어 상장기업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플랫폼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 락업·중복상장 규제 강화…LP 마저 ‘현미경 심사’
달라진 IPO 환경은 LP의 출자 판단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중복상장 규제가 강화되고 VC 보유 지분의 의무보유 기간이 길어지면서 펀드 만기와 투자금 회수 시점 사이의 간극이 커져서다. 김봉섭 한국성장금융 실장은 “IPO는 VC 회수 실적의 약 30~40%를 차지해 온 핵심 회수 수단이었다”며 “요즘은 출자 심사 과정에서 펀드 만기와 회수 시점의 미스매치가 발생하면서 어려워진 상황이라 IPO 이외에 인수합병(M&A) 등 다른 회수 시나리오가 있는지도 면밀히 심사한다”고 말했다.
락업 장기화에 대응해 펀드 존속기간을 늘리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김 실장은 “예전에는 상장 후 곧바로 지분을 현금화해 LP에게 분배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의무보유 기간이 길어졌다”며 “정책 출자기관은 펀드 존속기간을 10년가량으로 설정하지만 민간 LP가 참여하면 8년으로 줄어드는 경우가 있어 규약 설정 단계부터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중복상장 규제의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지적도 나왔다. 물적분할 자회사뿐 아니라 연결·종속회사와 계열회사까지 포괄적으로 규제하면서 VC가 투자한 기업의 상장과 회수 기회까지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안희철 법무법인 DLG 대표변호사는 “투자기업이 대기업에 인수된 뒤 연결회사나 종속회사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상장이 제한되면 VC의 회수 기회가 현저하게 줄어든다”며 “소액주주를 보호해야 할 영역과 벤처투자 회수를 고려해야 할 영역을 구분해 규제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성 평가 기준의 모호함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송영훈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동일한 평가기관에서 기술성 평가를 통과했던 기업이 재도전 과정에서 탈락하는 사례를 언급하며 현행 평가 체계의 정합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송 고문은 “기술 심사를 할 수 있는 심사 인력을 확충하고 전문가를 영입해 정확한 기준으로 심사하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며 “상장심사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 IPO 의존도 낮춰야…”세컨더리 펀드 조성 늘리자”
IPO 의존도를 낮출 대안으로 꾸준히 거론된 세컨더리 시장 확대에 대해서도 논의됐다. 송 고문은 세컨더리 시장을 키우기 위해 신뢰할 수 있는 기업 정보와 가치평가 기준을 제공하는 기관 전용 거래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 실장 역시 “LP로서 1조원 이상의 세컨더리 펀드를 조성해 IPO 이외의 회수 경로를 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세컨더리 펀드 역시 인수한 지분을 다시 매각해야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김 회장은 “세컨더리 시장 확대는 당장의 회수 부담을 덜어주는 데 의미가 있지만 세컨더리 투자자도 결국 엑시트해야 한다”며 “임시 대응책으로 활용하되 근본적인 해법은 코스닥 시장 활성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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