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주연 기자] 삼성전기가 유리기판 투자 속도를 조절한다. 당장 유리기판 양산에 대규모 금액을 투자하기보다 기존 주력인 플립칩 볼그리드어레이(FC-BGA) 등 고성능 패키지 사업에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유리기판 시장이 아직 본격적인 양산 단계에 진입하지 않은 가운데 공정 수율과 고객사 신뢰성 검증에 시간이 필요한 점이 투자 속도 조절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기 고위급 임원은 최근 임직원들에게 유리기판 사업의 투자 속도를 당분간 조절하겠다는 취지의 방침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리기판에 대규모 투자를 집중하기보다 FC-BGA 등 기존 패키지기판 사업과 AI·전장용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등 수요가 확인된 고부가 사업에 투자를 우선하겠다는 방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생산 캐파(CAPA)가 넘치면서 임직원들에게 당분간 유리기판 사업의 속도 조절을 주문했다"며 “좀 더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앞서 삼성전기는 유리기판 양산을 목표로 세종사업장에 파일럿 라인을 구축하고 국내외 고객사를 대상으로 샘플 평가를 진행해왔다. 일본 스미토모화학그룹과 글라스 코어 생산을 위한 합작법인 '글라셈'을 설립하는 등 소재부터 완성 기판까지 이어지는 공급망 구축에도 나섰다.
다만 실제 양산으로 넘어가기 위해 필요한 고객사 인증과 공정 수율 확보에는 예상보다 시간이 걸리는 모습이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기는 최근 TSMC에 유리기판용 유리관통전극(TGV) 모듈 샘플을 제출하고 신뢰성 평가를 진행 중이지만 당초 예상보다 평가 일정이 늦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샘플 제출 이후 수개월이 지났지만 평가 절차가 길어지면서 양산 준비 일정 역시 유동적인 상황이다.
유리기판은 기존 기판보다 표면이 평탄하고 열에 따른 변형이 적어 대면적 반도체 패키지 구현에 유리하다. 반면 유리 자체가 파손에 취약하고 TGV 형성 이후 홀 내부에 금속을 채우는 과정에서 빈 공간이 생기거나 접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레이저 가공과 식각을 거쳐 유리에 홀을 형성하는 초기 공정은 수율이 90% 이상까지 올라왔지만, 이후 금속을 입히고 홀 내부를 구리로 채우는 후속 공정에서는 수율이 30% 안팎까지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화학적 반응과 기계적 힘을 이용해 기판 표면을 평탄하게 만드는 화학적 기계적 연마(CMP)와 커팅 등 추가 공정도 거쳐야 한다.
구체적으로 후속 공정에서 구리가 유리에 제대로 붙지 않거나 홀 내부를 빈틈없이 채우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여기에 공정 중 열이 가해지면 서로 다른 열팽창계수를 가진 금속과 유리로 인해 유리기판에 균열이 생기거나 깨질 수도 있다. 유리 두께와 공정 조건도 업체와 고객사마다 달라 아직 양산에 적용할 표준 공정을 잡는 단계라는 게 업계 설명이다.
한 유리기판 업계 관계자는 "레이저와 식각을 통해 홀을 만드는 단계까지는 수율이 95% 수준까지 올라왔지만 이후 구리 도금 등을 거치면 수율이 30%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후속 공정의 수율을 끌어올리는 데 시간이 걸리면서 업체들의 양산 일정도 계속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최근의 일정 조정을 유리기판 사업 자체의 지연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아직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지 않은 데다 실제 수요처인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도 유리기판 적용을 위한 준비와 검증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리기판은 인공지능(AI) 서버와 데이터센터 등 고성능 반도체 패키지에 적용될 가능성이 큰 만큼 양산에 앞서 충분한 신뢰성 검증이 필요하다. 작은 결함도 시스템 전체의 안정성 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 고객사 입장에서도 새로운 소재와 공정을 곧바로 양산에 적용하기보다 장기간 평가를 거치는 게 일반적이라는 설명이다.
박남선 한국공학대학교 교수는 "아직 고객사가 유리기판을 사용할 준비가 되지 않은 만큼 유리기판 사업이 늦춰지고 있는 게 아니라 정상적인 속도로 가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며 "첨단 반도체는 신뢰성 평가 등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만큼 서두르기보다는 하나씩 검증하면서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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