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한진리 기자] 올해 상반기 농협중앙회를 뒤흔들었던 농협 개혁 논의가 최근 지방이전 이슈에 가려진 모습이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의 해외출장 숙박비 초과 집행과 내부통제 문제를 계기로 중앙회장 선출 방식과 감사 기능 등 지배구조 전반을 손봐야 한다는 요구가 거셌지만, 여름 이후 농협중앙회와 금융계열사의 지방이전 가능성이 부상하면서 관심의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개혁 작업이 중단된 것은 아니다. 농협은 자체 혁신과제를 이행하고 국회에서도 농협법 개정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개혁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방이전 문제가 새로운 현안으로 부상하면서 정치권과 조직 내부의 관심이 분산된 모습이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중앙회는 정기국회가 진행 중인 가운데 다음달 국정감사와 주요 입법 현안 대응에 분주한 분위기다. 중앙회장 선출 방식과 감사기구 개편 등을 담은 농협법 개정 문제에 농협중앙회와 금융계열사의 지방이전 가능성까지 더해지면서 대외 대응 현안이 한층 복잡해졌다.
농협 개혁론은 지난해 말 시작된 농림축산식품부 특별감사의 중간 결과가 올해 1월 공개되면서 본격화했다. 농식품부는 강 회장이 취임 이후 다섯 차례 해외출장에서 모두 내부 숙박비 상한을 초과했고, 초과 집행액이 약 4000만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감사 과정에서는 임직원 비위 처리와 회원조합지원자금의 재량적 배분, 인사·징계 절차 등 내부통제 전반의 문제도 드러났다.
이후 정부합동 특별감사까지 이어지면서 논의는 강 회장 개인의 책임 문제를 넘어 중앙회장 권한과 선출 방식, 감사 기능 등 농협 지배구조 전반으로 확산됐다. 정부는 특별감사 결과 위법 소지가 큰 14건을 수사의뢰하고 96건에 대해서는 제도 개선과 처분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농협중앙회도 개혁 요구를 일부 수용했다. 지난 5월 기존 조합장 중심의 중앙회장 선거를 전체 조합원이 참여하는 직선제로 바꾸는 방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1100명 안팎의 조합장이 참여하는 선거를 조합원 직선제로 전환하면 중복 가입자를 제외해 약 187만명이 투표권을 갖게 될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범농협 감사 기능을 통합하는 별도 독립기구인 '농협감사위원회' 신설에는 중복 규제와 자율성 훼손, 인력·비용 부담 등을 이유로 반대했다.
농협 자체 개혁 작업도 이어지고 있다. 농협은 농협개혁위원회가 제시한 13개 개혁과제와 16개 세부과제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6월 말에는 이 가운데 약 75%가 정상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밝혔다. 7월에는 감사조직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외부위원 중심의 범농협 준법감시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 등을 포함한 '농협 대전환' 실행 방안도 내놨다.
이런 가운데 지난 7월 이후 농협을 둘러싼 논쟁의 전면에 지방이전 문제가 부상했다. 정부가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공공기관이 아닌 농협중앙회와 금융계열사까지 이전 대상으로 거론되면서다.
현재 농협중앙회와 농협경제지주는 전남 나주, NH농협금융지주와 NH농협은행 등 금융계열사는 부산으로 이전하는 방안이 정치권과 업계 안팎에서 거론되고 있다. 정부가 구체적인 이전 대상이나 지역을 공식 확정한 상태는 아니다.
농협중앙회는 공공기관운영법상 공공기관으로 지정돼 있지 않다. 현행 농협법은 중앙회의 주사무소를 서울에 두도록 규정하고 있어 중앙회를 지방으로 이전하려면 법 개정도 필요하다. 농협중앙회와 계열사의 지방이전 문제가 현실화하려면 법적·정책적으로 넘어야 할 절차가 적지 않은 셈이다.
지방이전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농협 내부의 반발도 거세졌다. NH농협지부 등은 농협이 농민과 지역 농축협의 출자로 만들어진 협동조합이라는 점을 들어 정부 주도의 이전에 반대하고 있다.
지난 7월23일에는 노조원 약 200명이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지방이전 반대 집회를 열었다. 같은 달 29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결의대회에는 주최 측 추산 약 4000명이 참석했다. 8월21일에도 노조원 250여명이 농협중앙회에서 청와대 인근까지 가두행진을 벌이며 반대 목소리를 이어갔다. 노조는 정부가 이전을 강행할 경우 총파업 등 강력한 투쟁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지방이전 논쟁이 커지는 사이 국회에서는 농협 개혁을 위한 입법 논의가 계속됐다. 지난 8월25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농협법 개정안을 심사하고 조합원 직선제와 독립 감사기구 신설 등을 논의했다. 핵심 쟁점을 둘러싼 이견으로 결론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에 따라 다음달 국정감사가 농협 개혁 논의를 다시 전면으로 끌어올리는 변곡점이 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올해 초 특별감사에서 불거진 강 회장의 숙박비 초과 집행과 내부통제 문제에 더해 중앙회장 선출 방식, 감사기구 개편 등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한 지배구조 문제가 국회에서 다시 다뤄질 수 있어서다. 지방이전 문제까지 맞물리면서 농협을 둘러싼 현안이 국정감사에서 한꺼번에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도 있다.
농협 내부에서도 국정감사와 입법 현안 대응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대관 조직을 중심으로 국회 논의 동향을 파악하는 한편 지방이전과 농협법 개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대응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방이전 논쟁이 당분간 이어지더라도 특별감사에서 시작된 지배구조와 내부통제 문제는 아직 끝난 사안은 아니다"라며 "지방이전 문제에 가려졌던 개혁 과제가 국정감사를 계기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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