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현호 기자] 한국투자파트너스가 올해 안에 5800억원 규모의 신규 펀드를 조성한다. 하우스 설립 이후 최대 규모다. 덩치만 키우는 것은 아니다. 대표 펀드매니저를 맡은 박민식 전무가 꺼내든 운용 전략은 될 기업에 크게 베팅하는 스타일이다. 여러 기업에 자금을 잘게 나누기보다 글로벌 경쟁력이 확인되는 기업에 화력을 집중해 J커브 성장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한국투자파트너스는 국민성장펀드 1차 출자사업에서 고배를 마신 이후 절치부심 끝에 2차에서 중형 분야 운용사(GP)로 선정됐다. 당초 자펀드 목표 결성액은 2000억~4000억원 수준이었으나 이를 5800억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목표 결성액의 200%까지 초과할 수 있는 하드캡이 설정된 데다 업계 1위 VC를 믿은 출자자(LP)들의 참여가 이어지면서다. LP들의 출자 의향이 잇따르고 있는 만큼 펀드 결성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 전무는 최근 서면 인터뷰로 국민성장펀드를 기존 벤처펀드와는 다른 방식으로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단순히 싸게 투자해 높은 수익률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국내 유망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커지는 과정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단순 투자수익에 초점을 두기보다 안정적인 펀드 운용을 통한 수익률 제고와 함께 국내 유망기업을 발굴하고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에 초기 투자와 후속투자를 진행해 글로벌 시장에서 스타트업의 경쟁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포트폴리오의 무게추도 국내로 이동한다. 기존에 약 30%를 해외 기업에 투자해 왔다면 국민성장펀드에서는 국내기업 투자에 보다 집중할 예정이다. 이와 동시에 해외에서 쌓은 네트워크와 투자 경험을 국내로 ‘역수입’한다. 글로벌 포트폴리오 기업이나 해외 테크기업과 국내기업을 연결해 해외 진출과 밸류업을 돕는 방식이다.
AI 분야가 대표적이다. 한국투자파트너스는 앤트로픽, xAI, 앱트로닉, 퀀티넘 등 글로벌 AI 기업에 투자한 경험이 있다. 이번에는 이 경험을 해외기업에 투자하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국내기업을 골라내는 눈으로 활용한다. 글로벌 선도기업이 어떤 기술에 자금을 쓰고 어떤 시장을 선점하는지를 살펴본 뒤 이들과 협업하거나 정면으로 경쟁할 수 있는 국내기업을 찾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투자 트랙레코드가 국내에서 차세대 승자를 선별하는 일종의 기준점이 되는 셈이다.
최근 AI와 반도체 스타트업을 둘러싼 고평가 논란도 이 같은 투자 철학과 맞닿아 있다. 한국투자파트너스는 기업가치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AI가 인터넷 등장 이후 산업 구조를 가장 크게 바꾸는 변곡점이라면 산업의 최상단을 차지하는 기업의 몸값 역시 과거의 잣대로 설명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에 사느냐’보다 ‘얼마나 큰 기업이 될 수 있느냐’에 가깝다.
박 전무는 "AI는 인터넷 이후 최대의 산업지형 변경 이벤트"라며 "고평가나 버블 논란이 당연히 있을 수 있지만 미국 사례를 보면 결국 상위 기업들의 밸류에이션은 기존 기업의 역사적 고점을 충분히 넘어설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밸류에이션만 볼 것이 아니라 글로벌로 성장할 수 있는 충분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느냐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며 "경쟁력을 가진 기업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J커브로 스케일업하는 데 이번 펀드가 기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저평가된 기업을 찾는 투자보다 승자가 될 기업에 충분한 실탄을 쥐여주는 투자에 가깝다.
한국투자파트너스는 국민성장펀드가 만들어낼 변화가 벤처투자 시장에만 머물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딥테크와 AI처럼 성장 과정에서 대규모 자금을 반복적으로 필요로 하는 기업이 국내에서도 충분한 성장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되면 IPO 시장의 기업 풀 자체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결국 ‘될 기업’을 골라 대규모 자금을 넣고 이를 글로벌 성장과 IPO까지 연결하는 하나의 성장 사다리를 만들 수 있느냐가 이번 펀드의 진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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