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
기간 설정

국민성장펀드 쏠림에 한숨짓는 벤처캐피탈
이준우 기자
2026-08-20 08:25:00
금융그룹 국민성장펀드 유치 경쟁…돈 풀려도 민간 매칭 가뭄겪는 모태펀드 GP
이 기사는 2026-08-19 08:52:29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이준우 기자] "오랜 관계를 이어온 캐피탈사를 찾아갔더니 국민성장펀드에 자금을 넣어야 한다며 출자를 거부당했습니다. 금융그룹 모펀드를 명분 삼아 국민성장펀드가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최근 한 벤처캐피탈(VC) 대표는 제안서를 들고 금융기관 출자자(LP)를 찾았지만 아쉬운 마음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트랙레코드와 펀드레이징 역량을 입증해 앵커 LP를 확보했으나 하우스의 경쟁력을 설명할 기회도 얻지도 못한 채 그저 서류만 두고 갈 수밖에 없었다. 국민성장펀드가 아닌 모태펀드 정시 출자사업을 완주한 위탁운용사(GP)들의 얘기다.


지난해 말부터 벤처투자 업계에서 공공연하게 들리던 소문은 올해 시장에 자금이 대거 풀린다는 것이었다. 이재명 정부가 국가 첨단산업 육성을 강조하면서 유동성이 경색된 벤처시장에 자금이 공급될 것이라는 논리다.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운용 계획 역시 시장의 기대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실제 모태펀드가 올해 1차 정시 출자사업에서 2조1000억원이라는 역대급 출자 규모로 화답했다. 국민성장펀드도 간접투자 출자사업을 1차 1조3850억원, 2차 6950억원의 출자 규모로 사업을 추진하며 출자 풍년의 해를 알렸다.


하지만 한국산업은행이 국민성장펀드 1차 사업을 마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부분의 LP들이 국민성장펀드 GP에 최우선으로 출자를 검토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민성장펀드가 시장 자금을 흡수하는 신호탄이 됐다. LP들이 GP들을 찾아가 줄을 서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LP들의 들끓는 러브콜에 기자에게 미팅 일정을 조정해 달라는 펀드레이징 담당자도 제법 있었다. 하반기 출자사업을 진행하는 연기금은 1차 사업에서 자금을 넣지 못하니 국민성장펀드 GP들에 출자 룸이 남았냐는 애꿎은 전화만 돌렸다는 후문도 있다.


펀드레이징에 열을 올리고 있던 VC들은 순식간에 날벼락을 맞았다. 상당수의 모태펀드 GP들이 펀드 결성 기한 7월을 맞추지 못하고 2개월가량을 연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사이에서는 출자 가뭄을 겪었던 지난 정부 때보다 펀드레이징이 어렵다는 곡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말 펀드를 결성해 올해 출자사업에 참여하지 못한 하우스들이 승자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출자 풍년의 해가 무색하게도 민간 출자 시장이 얼어붙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이면에는 정부의 생산적 금융에 편승하겠다는 금융그룹의 유치 경쟁이 있었다. 국민성장펀드 GP에 자금을 투입하면 위험자산비중(RWA) 100%를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생산적 금융에 동참했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다. 민간 매칭 출자 시장에서 규모가 큰 금융 계열사들이 혈안이 돼 있으니 다른 LP들도 덩달아 움직였다. 최근 첨단산업 영위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금융지주들이 투자 검토를 늘리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벤처기업에 국민성장펀드 자금이 들어오면 생산적 금융에 동참하는 셈이 되니 직접투자를 늘리는 것이다. 비(非)국민성장펀드 자금을 따낸 VC들은 그렇게 잊혀가고 있다.


출자를 제안하는 VC들은 모태펀드 GP를 따내며 뛰어난 투자 전문성과 펀드레이징 역량을 시장에서 인정받은 운용사들이다. 이들이 기업을 발굴하고 자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성장해 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정부가 추진하는 첨단산업 육성 전략과 맞닿아 있을 뿐더러 생산적 금융과도 궤를 같이 한다. 모태펀드·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농식품 펀드도 RWA 100% 적용이 가능해졌는데 정부와 LP들은 국민성장펀드만 바라보고 있다.


이들이 이제 기대를 거는 건 LP 사무실에 두고 온 서류다. LP들은 국민성장펀드에 출자하고 자금이 남으면 매칭을 검토해 보겠다는 희망 섞인 발언을 던졌다. 계열 금융그룹 모펀드 출자사업에 참여해 민간 매칭을 안 한다는 운용사도 있지만 결국 국민성장펀드 GP에는 출자할 것을 모두가 안다. 국민성장펀드가 없는 GP들은 그저 LP들이 제안서를 읽고 연락이 오길 기다릴 뿐이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