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차화영 기자] KB금융그룹이 방카슈랑스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출발점은 고객이다. 보험사가 만든 상품을 은행이 얼마나 많이 파느냐보다 고객에게 어떤 보험이 필요한지를 먼저 따져보겠다는 구상이다.
지금까지 방카슈랑스는 보험사의 자금 조달·운용 전략과 상품 금리 경쟁에 따라 움직이는 측면이 컸다. KB국민은행도 방카슈랑스 판매의 70% 이상이 일시납 저축성보험인 이유다. 이에 KB금융은 이런 방카슈랑스 판매 관행에서 벗어나 연금과 보장, 상속·증여까지 아우르는 종합자산관리(WM)의 일환으로 바꾸겠다는 목표다.
윤희승 보험담당 상무는 지난 26일 딜사이트와 만나 “기존 방카슈랑스는 고객 관점보다는 공급자 관점에서 운영돼 왔다”며 “단기 저축성보험 판매 및 수수료 수익 중심 모델에서 벗어나 고객·은행·보험사·그룹 각각의 이점을 기반으로 한 종합자산관리 중심의 방카슈랑스 역할 재정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시납 70%…판매 중심에서 자산관리 중심으로
윤 상무는 KB손해보험에서 장기보험 관련 업무를 오래 담당했다. 장기보험 기획과 언더라이팅, 손익관리 등 부문에서 경력을 쌓았고 2024년 경영전략본부장, 지난해 장기보험상품본부장을 지냈다. 올해 초 KB금융 보험담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상품 기획부터 손익관리까지 맡아온 경력을 바탕으로 지주 차원의 방카슈랑스 전략을 재설계하는 역할을 맡은 셈이다.
윤 상무는 상품 포트폴리오와 성과평가체계를 자산관리 중심으로 다시 짜는 작업을 1차 과제로 진행하고 있다. 일시납 저축성보험에 쏠린 포트폴리오를 적립식과 연금, 보장성보험 등으로 넓히고 판매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도 단기 판매 실적이 아닌 자산관리 성과 중심으로 바꾼다는 구상이다.
연금보험을 바라보는 기준부터 달라진다. 그동안 은행에서는 노후에 실제로 받을 연금액보다 가입 후 5년 시점의 환급률이 상품 경쟁력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았다. KB금융은 연금보험이라면 단기 환급률보다 실제 연금 수령액을 중심으로 상품을 설계하고 판매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단기적인 상품 경쟁력보다 노후 현금흐름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지를 우선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실제로 지난 7월 KB국민은행은 적립식 상품의 가입을 유도할 수 있도록 KPI(핵심성과지표) 기준을 조정했다. 가입 시점에 인정되는 실적을 확대해 목돈이 한꺼번에 실적으로 잡히는 일시납 상품으로 판매가 쏠리는 유인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상담 방식도 달라진다. 고객에게 보험상품부터 제시하기보다 고객의 자산을 먼저 살피고 부족한 부분을 찾아 상품을 연결하는 식이다. 은행은 급여와 소비, 대출, 투자 등 고객의 금융생활 전반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점이 있다.
여기에 마이데이터를 통해 다른 금융회사에 보유한 자산까지 함께 살피면 고객별로 필요한 보험을 보다 구체적으로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은퇴가 가까운 고객에게는 노후 현금흐름을 위한 연금보험을, 자산승계를 준비하는 고객에게는 상속·증여 재원 마련을 위한 보험을 제안할 수 있다.
윤 상무는 “은행 PB·WM 담당자가 고객의 투자자산과 보장·은퇴 자산을 통합 분석하고 은퇴 후 노후 현금흐름 확보를 위한 연금자산 구성과 자산승계를 위한 상속·증여형 보험 솔루션을 한 자리에서 연계 설계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KB금융은 이를 위해 마이데이터를 활용한 보험자산 분석·진단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AI 에이전트 기반의 보험상품 검색 시스템도 개발할 예정이다. 여러 제휴 보험사의 상품을 고객의 자산과 필요에 맞춰 비교·검색함으로써 권유 과정의 객관성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은행 수수료 넘어 ‘그룹 손익’으로 본다
방카슈랑스를 다시 보는 데는 그룹 차원의 계산도 깔려 있다. 은행에는 비이자수익을, 보험사에는 신계약과 운용자산을 가져다주는 만큼 방카슈랑스의 가치는 단순한 판매 수익 이상이라는 판단이다. 보험사의 운용자산이 늘어나면 자산운용 계열사에도 운용 수요가 생기고 장기 보험계약을 통해 은행이 고객과의 거래관계를 이어가는 효과도 있다. 은행 창구에서 보험상품 하나를 판매하더라도 그 효과가 보험과 자산운용 등 다른 계열사의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윤 상무는 “방카 상품 수익성이 낮더라도 은행 비이자수익, 그룹 운용자산 규모 확대에 기여할 수 있다”며 “경쟁력 있는 상품을 통한 고객 확보와 운용자산 성장을 달성하고 그룹 연결 손익 기준으로 방카 채널의 가치를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계열사 입장에서는 GA 등 기존 판매채널과 다른 고객 접점을 확보하고 은행의 고객 기반을 활용해 안정적인 신계약을 확보하는 효과도 있다. 은행과 보험사의 협업도 상품 판매에서 상품 개발로 넓혀 판매 현장의 고객 요구와 아이디어를 공유해 상품 콘셉트를 만들고 향후 상품기획부터 사후 모니터링, 마케팅까지 함께한다는 계획이다.
◆일본·프랑스서 힌트…목표는 ‘금융 솔루션 플랫폼’
KB금융은 일본과 프랑스의 방카슈랑스를 참고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보험이 연금과 상속·증여 등 WM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본은 고령화 과정에서 은행을 통한 은퇴·자산승계 수요가 커졌다는 점에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한국이 앞으로 마주할 시장과 닮았다고 봤다.
국내에서는 방카슈랑스 관련 규제가 전략 확대의 변수다. 지난해 혁신금융서비스를 통해 이른바 ‘25%룰’이 한시적으로 완화됐지만 금융계열사 상품에는 별도 판매한도가 운영되고 있다. KB금융은 현행 규제 안에서 보험자산 진단과 맞춤형 상품 추천을 고도화하는 동시에 금융당국 및 업계와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KB금융이 궁극적으로 그리고 있는 방카슈랑스는 보험 판매채널을 넘어 고객의 생애주기를 관리하는 채널이다. 고액자산가에게는 상속·증여와 절세를, 일반 고객에게는 노후 준비를, 법인 고객에게는 절세와 CEO 리스크 관리를 연결하는 방식이다.
윤 상무는 “궁극적으로는 방카슈랑스 상품 판매에 그치지 않고 방카슈랑스 상품 밖의 보험·타 금융상품까지 고객에게 필요한 솔루션을 연결해주는 ‘금융 솔루션 플랫폼’으로서 은행 채널 내에서 방카슈랑스의 위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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