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KB국민은행이 시중은행 최초로 기업대출 잔액 200조원 시대를 열었다. 기업대출 증가율 자체는 5대 시중은행 가운데 높은 편이 아니었지만 절대 규모에서는 가장 먼저 200조원 고지를 넘어섰다. 눈여겨볼 부분은 성장의 내용이다. 올해 들어 늘어난 기업대출 6조6000억원 가운데 60% 이상이 대기업 여신에서 발생하면서 기업대출의 무게중심도 대기업 쪽으로 이동했다. 정부가 생산적·포용금융 확대를 주문하고 있는 만큼 기업대출의 외형뿐 아니라 늘어난 자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가 중요해졌다는 분석이다.
13일 KB금융지주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올해 상반기 원화대출금 잔액이 총 385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377조5000억원) 대비 2.0% 증가했고, 올해 1분기 말(379조원)보다는 1.6% 늘었다.
주목할 부분은 기업대출 잔액이다. 국민은행의 기업대출 총잔액은 200조7000억원으로 지난해 말(194조1000억원)보다 3.4% 불어났다. 5대 시중은행 대부분의 기업대출이 우상향 흐름을 기록했지만, 200조원을 돌파한 은행은 국민은행이 유일하다.
기업대출 200조원을 먼저 넘어선 곳은 IBK기업은행이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금융 지원을 주요 업무로 하는 정책금융기관인 만큼 시중은행인 국민은행의 200조원 돌파와는 성격이 다르다. 국민은행은 가계와 기업을 함께 주요 여신 대상으로 삼는 시중은행 가운데 처음으로 기업대출 200조원 시대를 열었다.
기업대출 증가 속도가 다른 시중은행을 압도한 것은 아니다. 국민은행의 상반기 기업대출 증가율은 3.4%로 신한은행(2.8%)보다는 높았지만 하나은행(4.5%), 우리은행(4.8%), 농협은행(4.5%)보다는 낮았다. 기업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려 200조원을 넘어섰다기보다 기존에 쌓아온 기업여신의 절대 규모에 상반기 추가 성장이 더해지면서 200조원 고지를 밟은 셈이다.
국민은행의 전체 대출 포트폴리오에서도 급격한 변화가 나타난 것은 아니다. 올해 상반기 총대출에서 기업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말 51.4%에서 올해 상반기 52.1%로 0.7%p 상승했다. 가계대출보다 기업대출이 빠르게 늘면서 기업여신 비중이 소폭 확대됐지만 전체 포트폴리오의 무게중심이 단기간에 크게 이동한 수준은 아니다.
200조원 돌파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대기업 여신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국민은행의 올해 상반기 말 대기업 등 대출잔액은 48조3000억원으로, 지난해 말(44조3000억원) 대비 9.0% 성장했다. 올해 1분기 말(45조원)과 비교해도 7.6%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전체 기업대출은 194조1000억원에서 200조7000억원으로 6조6000억원 증가했다. 이 가운데 대기업 대출 증가액은 4조원으로 전체 기업대출 순증액의 약 60.6%를 차지한다. 지난해 말 전체 기업대출의 22.8%였던 대기업 대출 비중도 상반기 말 24.1%로 약 1.3%p 상승했다. 전체 기업대출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않는 대기업 부문에서 상반기 순증액의 60% 이상이 발생한 셈이다.
반면 중소기업 대출의 증가 속도는 상대적으로 더뎠다. 올해 상반기 말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152조4000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0.7%, 지난해 말 대비 1.8% 증가하는 데 그쳤다. 특히 중소기업 대출에 포함된 개인사업자(SOHO) 대출 잔액은 94조3000억원으로 전분기와 지난해 말 대비 각각 0.1% 감소했다.
국민은행의 기업대출 200조원 돌파는 중소기업과 SOHO에 대한 전방위적인 여신 확대보다 대기업 부문의 성장이 상당 부분 견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여신 확대 자체가 생산적 금융 기조와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첨단산업과 제조업, 설비투자 등에 공급되는 대기업 여신 역시 생산적 금융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어서다.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한 자금 공급은 포용금융 측면에서 별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금융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 확대도 요구하고 있는 만큼 기업대출의 양적 성장과 함께 자금 배분의 내용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대기업 대출은 중소기업 대출보다 금리가 낮은 편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6월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에 따르면 신규취급액 기준 가계대출 금리는 4.50%, 기업대출 금리는 4.27%로 집계됐다. 기업대출 가운데 대기업 대출 금리는 4.17%로 중소기업 대출(4.38%)보다 0.21%p 낮았다.
대기업 여신의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은데도 은행들이 해당 시장을 공략하는 배경에는 신용위험 관리와 기업 고객을 통한 연계 영업 등이 자리한다. 대기업과의 거래는 대출뿐 아니라 외환과 퇴직연금, 투자은행(IB) 등 다른 금융거래로 관계를 확장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국민은행의 경우 기업대출 확대 과정에서 대기업 여신 비중이 높아지는 동시에 전반적인 자산건전성 지표도 안정적인 흐름을 나타냈다.
실제 기업대출 외형이 확대되는 동안 국민은행의 전반적인 자산건전성 지표는 오히려 개선됐다. 국민은행의 NPL비율은 올해 상반기 말 0.28%로 전년 동기(0.35%) 대비 0.07%p 하락했으며, 연체율은 0.27%로 전년 동기(0.31%)보다 0.04%p 낮아졌다.
부실이 실제 손실로 이어질 경우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을 가늠하는 NPL 커버리지 비율(대손충당금 잔액을 NPL 총액으로 나눈 값)은 상반기 197.3%로 전년 동기(189.1%) 대비 8.2%p 확대됐다. 기업대출이 증가하는 과정에서도 연체율과 NPL비율은 낮아지고 부실흡수 여력은 높아진 셈이다.
신용비용 역시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했다. 국민은행의 CCR(대손비용률)은 올해 상반기 0.1%대를 기록했다. CCR은 대손충당금 전입액을 총여신 또는 평균잔액으로 나눠 산출하는 지표로, 은행의 대출자산에서 발생하는 신용비용 부담 수준을 보여준다. 기업대출 증가에도 CCR과 주요 건전성 지표가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는 점에서 외형 확대가 곧바로 신용비용 부담으로 이어지지는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 건전성 지표만으로 대기업 중심의 대출 확대가 낮은 신용비용을 직접 이끌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CCR은 신규 여신의 신용도뿐 아니라 기존 부실채권 정리와 충당금 적립·환입 등 여러 요인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대기업 대출 비중 확대와 건전성 개선이 동시에 나타났다는 점은 확인되지만 두 지표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업대출 200조원 시대를 연 국민은행의 다음 과제는 외형보다 자금의 '질'에 있다. 올해 상반기 기업대출 순증액의 60% 이상을 대기업이 차지한 만큼 앞으로는 대기업 여신의 성장과 함께 제조업·첨단산업 등 생산적 분야로 자금 공급을 얼마나 넓힐지가 관건이다. 중소기업·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포용금융 확대도 풀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대출의 절대 규모가 커진 만큼 앞으로는 단순한 잔액 증가보다 어떤 산업과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지가 중요해질 것”이라며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생산적 분야와 중소기업 등으로 공급처를 다변화하는 것이 기업금융 경쟁력의 관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Ho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