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배지원 기자] 전세 사기 이후 얼어붙은 비아파트 시장을 정부가 공곱 대책이 아닌 청년 대출 카드로 먼저 풀기 시작했다. 만 39세 이하 청년이 4억원 이하 빌라·오피스텔 등을 구입할 경우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최대 80%까지 적용하는 ‘청년미래보금자리론’을 내년 출시하기로 하면서다. 공급자 금융이 여전히 끊긴 상태에서 수요만 자극한다는 지적과 함께 환금성이 떨어지는 비아파트를 높은 LTV로 떠안는 청년 개인의 위험 부담을 키운다는 우려도 나온다.
24일 건설·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8·13 부동산금융대책을 통해 비아파트 청년 수요자를 대상으로 한 정책금융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청년미래보금자리론은 생애 최초로 주택을 구입하는 만 39세 이하 청년 가운데 연소득 7000만원 이하인 경우 이용할 수 있다. 4억원 이하 빌라·오피스텔 등 비아파트를 구입하면 요건에 따라 LTV를 최대 80%까지 적용한다. 금리는 연 3% 수준으로 책정될 예정이다.
금융위가 청년미래보금자리론을 내놓은 것은 월세로 거주하는 청년층에 내 집 마련이라는 선택지를 추가하기 위해서다. 지원 규모는 연간 3조원, 공급 기간은 2년으로 한정됐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사회초년생이나 1인 가구 등이 직주근접을 위해 역세권 빌라·다세대·다가구·오피스텔 등에 월세로 거주하는 경우가 주요 대상이다.
예를 들어 2억5000만원짜리 비아파트를 매입할 경우 LTV 80%를 적용하면 2억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금리 연 3%를 적용하면 월 원리금 상환액은 약 85만원이다. 금융위는 월세 80만~90만원을 부담하는 청년들에게 월세 대신 주택을 매입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한다는 취지다.
다만 전세사기 이후 비아파트 시장의 공급 구조 자체가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요자 금융부터 다시 열었다는 점에서 우려도 나온다. 전세보증금이 사실상 비아파트 공급자의 자금조달 수단으로 활용돼왔지만 전세사기로 이 같은 자금 흐름이 끊긴 만큼 청년에게 대출을 제공하기에 앞서 공급자가 안전하게 사업을 이어갈 수 있는 '공급자 금융'을 복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채상욱 커넥티드그라운드 대표는 2020년 이후 이어진 전세사기 여파로 비아파트 주택의 공급자 금융이 사실상 단절됐다고 지적했다. 채 대표는 “민간 비아파트와 오피스텔의 경우 전세금 시장의 축소와 함께 공급 축소가 이뤄지고 있다”며 “전세금을 늘리는 대출은 미래의 전세사기 환경과 거시금융 관리에 문제를 일으키므로 지금 필요한 것은 오피스텔·빌라·다세대 등 비아파트 사업자를 위한 공급자 금융”이라고 밝혔다.
이번 대책은 주택 수요자에게 유동성을 공급하는 ‘수요자 금융’이라는 점에서 또다른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금융위는 “사회초년생들, 지방에서 서울 올라왔거나 1인가구 분들이 직주근접 이유 때문에 역세권 빌라나 다세대·다가구, 오피스텔에서 월세로 거주 중인데 이런 분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며 “추가로 선택지를 주겠다는 것이지, 아파트를 희망하는 청년의 기존 혜택을 축소하려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청년미래보금자리론에 대한 반발이 나오는 것은 대출 대상이 아파트가 아닌 비아파트로 한정됐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아파트 선호가 뚜렷한 데다 전세사기 사태를 거치면서 빌라 등 비아파트에 대한 불신도 커졌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청년들에게 상대적으로 선호도가 낮고 환금성이 떨어지는 비아파트 매입을 유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청년층을 비아파트 시장으로 유입시키는 과정에서 자산가격 하락 위험이 개인에게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짚어볼 대목이다. 아파트에 비해 거래가 제한적이고 환금성이 떨어지는 비아파트를 높은 LTV로 매입할 경우 향후 주택가격이 하락하면 청년 개인의 손실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세사기 이후 비아파트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점도 부담이다.
청년미래보금자리론을 둘러싼 논란은 정치권으로도 번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SNS를 통해 청년미래보금자리론의 대상을 아파트까지 확대하고 대출한도도 6억원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청년의 절박함을 정책 실패의 방패로 삼아서는 안 된다”며 “불합리한 대출 규제를 현실화하고 전·월세 시장을 정상화하는 것, 그것이 정부가 당장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금융위는 청년미래보금자리론을 아파트를 살 수 없는 청년에게 비아파트 매입을 강요하는 정책으로 보는 것은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아파트 구매를 희망하는 청년은 기존 일반 보금자리론을 이용할 수 있고, 청년미래보금자리론이 신설되더라도 기존 보금자리론의 지원 규모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해 청년층에 공급된 보금자리론은 약 12조원 규모다. 이 가운데 97%에 해당하는 11조6000억원이 아파트 구입에 활용됐다. 이번 청년미래보금자리론은 기존 아파트 대상 정책금융을 축소하는 대신 비아파트에 별도의 지원 수단을 추가하는 형태다.
청년미래보금자리론을 이용한 이후 대출을 상환하고 다른 대출을 이용하더라도 생애최초 LTV 우대 혜택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도 금융위가 강조하는 부분이다. 비아파트를 먼저 구입했다가 향후 다른 주택을 매입하는 경우에도 생애최초 주택구입자에 대한 LTV 우대 혜택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선택지를 넓혔다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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