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우리은행이 대기업대출을 중심으로 기업금융 외형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상반기 대기업대출 증가율은 15.7%로 5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가운데 가장 높았다. 가계대출 규제가 강화되고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SOHO)의 건전성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연체율이 0.01%에 불과한 대기업 여신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성장처로 부상한 모습이다. 비은행 부문의 이익 기여도가 선두 금융그룹보다 낮은 우리금융 입장에서는 핵심 계열사인 우리은행의 안정적인 수익 창출력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도 기업금융 확대의 배경으로 꼽힌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의 올 상반기 기업대출 잔액은 189조184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180조4450억원)보다 4.8% 증가했으며, 1분기(184조1140억원)보다는 2.8% 늘었다. 기업대출 성장은 대기업 여신이 주도했다. 지난해 말 대비 15.7% 불어난 63조9940억원을 기록했다.
우리은행의 대기업대출 증가율은 5대 시중은행 중 가장 높다. 같은 기간 국민은행의 증가율은 9.0%였으며, 신한은행은 8.2%로 나타났다. 하나은행과 농협은행은 각각 10.1%와 15.6%로 집계됐다.
대기업대출이 기업여신 성장의 중심에 자리 잡은 배경에는 대출 시장별로 엇갈린 영업 환경이 자리한다. 가계대출은 정부의 강도 높은 총량 관리와 주택 관련 대출 규제로 추가적인 외형 확대에 제약이 커졌다. 중소기업대출 역시 경기 둔화와 내수 부진이 이어지면서 건전성 부담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우리은행의 전체 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말 0.34%에서 올해 상반기 0.43%로 0.09%p 상승했다. 이 가운데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이 0.52%에서 0.75%로 0.23%p 오르며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개인사업자대출 연체율도 0.47%에서 0.60%로 0.13%p 상승했다.
대기업대출은 정반대 흐름을 나타냈다. 대기업대출 연체율은 같은 기간 0.02%에서 0.01%로 0.01%p 하락했다. 중소기업 연체율(0.75%)의 75분의 1 수준으로 사실상 무부실에 가까운 상태다. 중소기업·SOHO에서 건전성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낮은 신용위험으로 대출자산을 확대할 수 있는 영역으로 부각된 셈이다.
대기업대출은 중소기업대출보다 금리가 낮아 단순히 높은 대출마진을 확보하기 위한 성장 전략으로 보기는 어렵다. 대규모 자금을 상대적으로 낮은 신용위험으로 운용할 수 있고 외환·퇴직연금·투자은행(IB) 등 다른 금융거래로 관계를 확장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대출금리뿐 아니라 신용비용과 연계 영업까지 고려한 위험조정수익 측면에서 대기업 여신의 활용도가 높아질 수 있는 이유다.
우리은행의 기업금융 확대가 주목받는 또 다른 배경은 우리금융의 높은 은행 의존도다.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은 올해 상반기 각각 1조6660억원, 1조365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단순 비교하면 은행 순이익이 그룹 순이익의 80%를 웃도는 규모다. 연결조정 등의 영향을 고려하면 이를 그대로 은행의 공식 이익 기여도로 보기는 어렵지만, 그룹 실적에서 우리은행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가늠할 수 있다.
우리금융은 비은행 영역을 빠르게 확대하면서 은행 의존도를 낮추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6.9%에 불과했던 우리금융의 비은행 이익 기여도는 올해 상반기 22.3%로 1년 만에 15.4%p 상승했다. 자산운용과 증권 등 비은행 계열사들이 일제히 호실적을 기록하며 이익 기여도를 끌어올린 결과다.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먼저 구축한 선두 금융그룹과 비교하면 격차는 남아 있다. KB금융은 대형 증권사와 손해보험사 등을 바탕으로 비은행 비중을 44%까지 끌어올렸고, 신한금융 역시 비은행 비중이 35.4%에 달한다. 하나금융은 은행 비중이 81.2%로 우리금융보다 은행 의존도가 높지만, KB·신한과 비교하면 우리금융 역시 핵심 은행의 실적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구조다.
우리금융이 올해 금융지주 순이익 경쟁에서 NH농협금융에 뒤처진 점도 은행과 비은행의 동반 성장 필요성을 보여준다. 우리금융은 올해 상반기 1조666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해 NH농협금융(1조7791억원)보다 1131억원 적었다. 1분기에도 NH농협금융이 8688억원으로 우리금융(6040억원)을 앞섰다. 비은행 포트폴리오 확대에 시간이 필요한 상황에서 핵심 계열사인 우리은행의 수익 기반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우리금융이 농협금융에 뒤처진 것이 대기업대출 확대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기업여신 확대는 상반기 동안 진행된 영업 전략인 반면 금융지주 순이익 순위는 같은 기간의 실적을 집계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비은행 경쟁력을 높이는 데 시간이 필요한 상황에서 우리은행의 안정적인 이익 창출력이 그룹 전체 실적 경쟁력에 중요하다는 점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우리은행은 기업대출의 양적 성장과 함께 여신 영업의 질적 개선도 추진하고 있다. 여신 심사와 영업 인프라에 첨단 인공지능(AI)을 도입해 기업 신용평가와 심사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이 대표적이다. 기업여신의 외형이 커질수록 차주의 위험을 정교하게 판별하고 부실 가능성을 조기에 포착하는 능력이 중요해지는 만큼 심사 체계 고도화는 중장기적인 건전성 관리와도 맞닿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시스템 고도화는 중장기적으로 경쟁력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하지만 실제 심사 모형 안정화와 영업력 강화로 이어지기까지 물리적인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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