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신지하 차장] 스마트폰을 구매할 때 화면 크기나 카메라 화소도 중요하지만 요즘은 그보다 먼저 따지는 게 있다.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다. '이 스마트폰에는 무슨 모바일 AP가 탑재됐을까'라는 궁금함이 먼저 들기 마련이다. 같은 모델이라도 어떤 칩을 쓰느냐에 따라 성능과 체감이 갈린다는 인식이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앞으로는 자동차를 구매할 때도 비슷한 질문을 던지게 될 전망이다. 배기량이나 디자인 못지않게 어떤 자율주행 칩과 소프트웨어(SW)를 얹었는지가 새로운 구매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미국과 중국에서는 레벨2+ 감독형 자율주행이 낯선 풍경이 아니다. 유럽도 문을 열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차량당국(RDW)은 지난 4월 테슬라 감독형 완전자율주행(FSD)을 승인했다. 기존 규정에 딱 들어맞지 않는 신기술을 먼저 도입할 수 있게 해주는 유럽연합(EU)의 예외 승인 제도 덕분이다. 물론 RDW는 18개월 넘게 160만km 이상 실도로 시험을 거친 뒤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이후 덴마크와 리투아니아 등 다른 유럽 국가도 테슬라의 FSD를 자국 기준에 맞춰 순차 허용했다.
자율주행을 규정하는 국제 기준도 허용 범위를 넓히며 한층 관대해지고 있다. 유엔 유럽경제위원회(UNECE) 산하 '세계자동차기준조화포럼'(WP.29)은 지난 6월 표결로 '운전자제어보조장치(DCAS) 02' 시리즈 개정안을 채택했다. 고속도로에 한정됐던 자율 차선변경을 시내 도로까지 넓히는 내용으로, 이르면 연말 발효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국내 사정은 조금 다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덕분에 미국산 테슬라 모델S, 모델X와 사이버트럭은 별도 검증 없이 FSD를 쓸 수 있지만 중국산 모델3와 모델Y는 여전히 막혀 있다. 정부는 테슬라 FSD를 비롯한 자율주행 기능 허용 여부에 신중한 모습이다. 다만 지난해 9월 발효된 DCAS 규정에 맞춰 국내 도입 방향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규정도 정해진 지 2년 안에는 나라마다 관련 법을 갖춰야 해, 한국도 내년 하반기까지는 이를 반영한 법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도입이 늦어지는 사이 국내 중고차 시장에서는 FSD를 체험할 수 있는 테슬라 차량의 인기가 높다는 얘기도 들린다.
자연스레 시선이 쏠리는 곳은 국내 대표 완성차 현대차그룹이다. 현대차는 자체 개발한 비전 기반 자율주행 모델 '아트리아AI'와 엔비디아 플랫폼을 함께 쓰는 투트랙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5월에는 광주광역시에서 실증차 200여대를 투입해 아트리아AI를 검증하는 사업에 나섰다. 하반기에는 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플래그십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GV90'도 선보일 예정이다.
다만 노선을 완전히 정한 모양새는 아니다. 현대차에서 자율주행 전략을 이끌던 송창현 사장이 지난해 말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자체 기술 노선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테슬라와 엔비디아 출신인 박민우 사장이 새로 왔지만 자체 개발과 외부 협력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둘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
도로 위에서 실제로 쌓은 주행 데이터양에서도 차이가 크다. 엔비디아가 완성차 업체와 손잡고 모은 도시 데이터는 아직 테슬라가 전세계에서 실시간으로 쌓는 데이터양에는 못 미친다는 평가다. 중국에서 자율주행 기술이 가장 앞섰다는 샤오펑조차 최근 테슬라와 격차가 있다고 인정한 만큼 후발주자가 넘어야 할 벽은 여전히 높다는 게 업계 평가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어떤 칩을 썼는지가 곧 그 제품의 수준을 말해주듯, 자동차도 곧 같은 잣대로 평가받는 시대가 머지않아 보인다. 자율주행이라는 핵심 기술에서 한국 대표 완성차가 어느 수준인지 증명할지, 하반기 공개될 결과물이 그 답을 가늠할 첫 시험대가 될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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