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주명호 기자] 삼성전자와 SK그룹이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들과 총 9500억달러(약 1390조원) 규모의 인공지능(AI) 협력 프로젝트 추진에 나서면서 국내 반도체 산업도 전환점을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표면적으로는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장기공급계약(LTA)이지만 실제적으로는 반도체 핵심 공급망을 함께 구축하는 전략적 동맹의 의미가 크다는 진단이다. 글로벌 AI 공급망 주도권 경쟁에서 한국 기업들의 위상 역시 더욱 격상했다는 점도 다시금 주목된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24일(현지시간) 삼성전자와 SK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더 미드웨이에서 열린 ‘AI 서밋’ 행사에서 글로벌 빅테크들과 AI 반도체 및 인프라 협력 추진을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맞춤형 반도체 설계업체 브로드컴과 2000억원 규모의 전략적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SK는 엔비디아를 비롯한 글로벌 AI기업들과 총 7500억달러 규모의 장기 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키로 했다. 이중 5000억원은 SK하이닉스와 엔비디아간 AI메모리 공급 및 AI팩토리 구축 프로젝트가 차지한다.
이번 발표의 핵심을 '반도체 판매 계약'을 넘은 'AI 공급망 동맹'으로 해석된다. 단순히 메모리를 생산해 고객사에 공급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AI 반도체 개발 단계부터, 메모리,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 데이터센터 구축 등 사업 전반에 대한 구조를 공동으로 설계하는 방향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관측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브로드컴과의 협력으로 파운드리(메모리 위탁생산) 분야의 경쟁력 회복 가능성도 제기된다. 브로드컴으로부터 장기간 생산 물량을 확보하면 메모리와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을 아우르는 '턴키 AI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이를 통해 TSMC 중심의 AI 파운드리 시장에서 입지 강화를 모색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SK 역시 HBM공급업체를 넘어 AI 인프라 사업자로 영역 확대가 기대된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와 공동으로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을 개발하고 SK텔레콤은 이 HBM이 탑재된 AI 컴퓨팅 시스템 '베라 루빈'을 기반으로 하는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나설 방침이다. 이번 협력을 두고 AI 시대 핵심 경쟁력이 단순 생산을 넘어 컴퓨팅 인프라 전반을 확보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평도 나온다.
한국 정부 역시 이번 협력을 단순한 기업간 계약을 넘은 국가 차원의 AI 산업 도약을 위한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AI 서밋에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대체 불가한 글로벌 AI 공급망의 핵심 국가로 도약할 것"이라며 "우리가 가진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과 생산 역량을 토대로 신뢰할 수 있는 AI 반도체 생산기지이자 공급망 파트너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위상 및 영향력 역시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간 한국기업들의 이미지가 부품 공급자에만 고정돼 있었다면, 이번 협력을 시작으로 AI 차세대 인프라 구축까지 아우르는 핵심적인 사업자로 발돋움할 것이란 진단이다. 업계에서는 장기공급계약과 공동개발체제를 함께 확보했다는 점에서 실적 안정과 기술 경쟁력 제고가 동시에 이뤄지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협력의 상징성과 별개로 실제 사업 성과과는 구분해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MOU 단계인 만큼 향후 세부 물량, 투자 일정 등 단계적인 협상 및 확정 과정을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다만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AI 기업들의 핵심 파트너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향후 추가 사업 및 투자로 연결되는 선순환적 행보가 더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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