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한진리 기자] 정부가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디지털자산기본법(가칭)' 제정에 속도를 내면서 금융권의 경쟁 방식도 '사업 검토'에서 '동맹 구축'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그동안 사업 가능성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거나 상표권을 선점하는 수준에 머물렀던 금융사들이 최근에는 협력 상대를 공개하고 결제·송금 인프라 구축에 나서는 등 시장 선점 경쟁을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특히 법안 통과 이후 주도권 확보를 위해 은행과 빅테크, 글로벌 디지털자산 기업들이 잇달아 손을 맞잡으며 경쟁의 축도 '누가 먼저 발행하느냐'에서 '누구와 연결망을 구축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9일 금융권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을 위해 관련 논의를 월 2회씩 집중적으로 진행하기로 뜻을 모았다. 정부와 국회의 정책 공조도 강화되는 분위기다. 논의의 필수 전제인 당정협의를 2주에 한 번꼴로 정례화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으며, 오는 9월 구체적인 법안 공개를 목표로 입법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도 연내 입법 의지를 거듭 확인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4일 발표한 경제성장전략에 디지털자산기본법의 연내 입법 방침을 담았다. 이어 재정경제부와 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는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유통 제도화를 포함한 입법 계획을 재확인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도 지난 20일 더불어민주당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이 참여한 비공개 업무설명회에서 "산업과 시장, 이용자를 모두 아우르는 통합법 형태로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발의해 연내 입법을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법안에는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디지털자산 산업 규율과 시장질서, 이용자 보호 체계를 함께 담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이처럼 제도화 일정이 구체화되자 금융권의 파트너십 경쟁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법이 마련된 이후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시작하면 서비스 출시 시점이 늦어질 수 있는 만큼 기술과 결제망, 해외 네트워크를 미리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곳은 플랫폼 경쟁력을 앞세운 빅테크 진영이다. 카카오그룹은 글로벌 핀테크사 서클인터넷그룹과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디지털자산 인프라 사업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카카오의 플랫폼·금융 생태계와 서클이 보유한 블록체인 및 글로벌 결제 인프라 운영 경험을 연결하는 것이 골자다. 양측은 원화 기반 디지털자산과 토큰화 금융서비스의 사업 가능성을 비롯해 해외송금, 결제·정산 등 다양한 활용 방안을 공동 검토하기로 했다.
국내 대표 핀테크로 자리 잡은 토스와 토스뱅크 역시 서클 측과 접촉하며 블록체인 기반 결제 인프라 및 스테이블코인 기술 협력 가능성을 타진하는 등 글로벌 스탠다드 확보전에 뛰어들었다.
전통 금융권도 기존 금융 인프라와 디지털자산 생태계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사례는 하나금융그룹과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의 협력이다. 최근 양사 최고경영진은 직접 만나 간담회를 열고 디지털자산 금융 인프라 공동 구축을 위한 중장기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하나은행이 두나무 지분 6.55%를 확보한 데 이어 지분 관계를 실제 사업 협력으로 확대하는 첫 행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의 행보도 눈길을 끈다. 케이뱅크는 아시아 디지털자산 시장의 주요 사업자인 해시키그룹(HashKey), 국내 블록체인 기업 비피엠지(BPMG)와 3자 업무협약을 맺고 해외송금 및 결제 분야 협력에 나섰다. 기존 금융권이 자체 인프라 중심 전략을 펼쳤다면 웹3 생태계 핵심 사업자와 손잡아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협력 대상은 서로 다르지만 전략은 비슷하다. 카카오와 토스는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인 서클을 통해 해외 결제 네트워크와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려 하고, 하나금융과 케이뱅크는 거래소 및 블록체인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실제 금융서비스 접점을 넓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업계에서는 스테이블코인 사업이 네트워크 효과가 큰 시장인 만큼 제도 시행 이후 파트너를 찾는 것보다 미리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국내 사업자만으로는 글로벌 결제망과 유통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어려운 만큼 해외 사업자와의 협력이 사실상 필수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시장 선점 경쟁은 법이 열렸을 때 즉시 움직일 수 있는 연결망을 누가 먼저 구축하느냐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의 연내 입법 의지가 강한 만큼 이제는 물밑 검토 단계에서 벗어나 각 사업자가 수면 위에서 우군을 확보하고 결제·송금 등 실제 사업 인프라를 선점하려는 움직임이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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