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배지원 기자] 태영건설 워크아웃 이후 2년 넘게 이어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조정으로 브릿지론 중심의 부실은 상당 부분 정리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권 PF 익스포저가 꾸준히 감소하면서 금융시스템 리스크 우려도 한층 완화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준공 이후 분양이 지연된 본PF 사업장이 새로운 부실 요인으로 떠오르면서 PF 시장의 위험이 또 다른 국면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4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최근 ‘8차 부동산PF상황 점검회의’를 열어 금융권PF자산의 사업성 평가 결과와 연체율 동향 등을 점검했다. 그 결과 금융권 PF 익스포저는 2023년 말 231조원에서 올해 3월 말 170조원으로 감소했다.
금융당국의 사업성 평가와 구조조정, 금융회사의 충당금 적립 등이 이어진 데다 증권사의 PF 채무보증 규모가 크게 줄면서 양적 부담은 상당 부분 완화됐다. 시장에서도 지난해와 같은 PF발 금융시스템 리스크 가능성은 낮아졌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반면 PF 시장의 질적 건전성은 다시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까지 이어졌던 개선 흐름이 멈추고 신규 부실 사업장이 늘어나면서 건전성 지표가 일제히 후퇴했다.
실제 유의이하 사업장 규모는 지난해 말 14조7000억원에서 올해 3월 말 16조4000억원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유의이하 사업장 비율은 8.4%에서 9.7%로, 부실우려 사업장 비율도 6.3%에서 7.1%로 상승했다.
이 같은 변화는 부실 사업장 정리 속도가 둔화된 영향이 크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경·공매와 재구조화, 상각 등을 통해 부실 사업장을 빠르게 정리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리 실적이 크게 줄어든 반면 신규 유의이하 사업장은 늘어나고 있다.
실제 정리·재구조화 규모는 지난해 3분기 3조8000억원에서 올해 1분기 4000억원으로 급감했다. 정호준 한국신용평가 애널리스트는 "시장 여건 저하로 유의이하 비율이 다시 상승 전환했고 정리·재구조화 실적은 감소하고 있다"며 "유의이하 사업장이 증가하면서 PF 익스포저의 질적 위험은 다시 높아지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점검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위험의 중심이 브릿지론에서 본PF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착공 이전 토지 매입 단계의 브릿지론 부실이 PF 시장의 핵심 위험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사를 마쳤거나 상당 부분 진행한 사업장이 분양 부진과 매각 지연으로 경·공매 시장에 유입되면서 본PF 부실 위험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브릿지론은 사업이 중단되더라도 토지 매각 등을 통해 손실을 일부 회수할 수 있지만, 본PF는 착공 이후 공사비가 대규모 투입된 상태여서 준공 이후에도 분양이 부진하면 금융회사의 회수 부담이 훨씬 커질 수 있다. PF 시장의 위험이 '사업 착수 실패'에서 '분양성과 회수 실패'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경·공매 추진 사업장 가운데 본PF 비중은 지난해 말 16.8%에서 올해 3월 말 20.6%로 상승했고, 6월 말에는 23.6%까지 확대됐다.
정 애널리스트는 "경·공매 추진 사업장 내 완공 사업장 비중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점은 본PF 단계의 부실 위험이 점차 부각되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향후 본PF 사업장의 만기가 순차적으로 도래하는 과정에서 분양성과 부진 및 매각 지연이 지속될 경우 자산건전성 저하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낮지 않다"고 분석했다.
부동산 경매시장 여건도 악화되고 있다. 담보 처분을 통한 회수율이 떨어지면서 PF 정리에도 부담이 커지는 모습이다. 실제 부동산 경매 매각가율은 72.3%에서 58.2%까지 하락했다. 담보를 처분하더라도 대출금을 충분히 회수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의미다.
지역별로도 경·공매 추진 사업장 잔액은 서울 약 1조원, 인천·경기 4조5000억원, 지방 5조9000억원으로 전 지역에서 증가했다. 서울은 대규모 기타주거시설 부지가 신규 편입됐고, 수도권은 아파트와 물류센터 사업장이 다시 늘었다. 지방 역시 일부 사업장 정리에도 신규 사업장이 지속 유입되면서 잔액 감소가 지연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지방뿐 아니라 수도권에서도 부실 사업장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PF 위험이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장에서는 PF 위기가 완전히 끝났다고 단정하기보다 위험의 성격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브릿지론 중심의 구조조정이 상당 부분 마무리된 대신, 앞으로는 본PF 사업장의 분양 성과와 회수 여부가 PF 시장 안정성을 좌우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는 “PF 시장은 4년여 만에 저점을 통과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금리 상승과 분양시장 부진이 겹치면서 회복보다는 바닥 다지기가 길어지는 양상”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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