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박안나 기자] 홈플러스가 회생폐지 확정을 코앞에 두고 2000억원의 긴급 운영자금을 확보하며 회생절차를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즉시항고 기한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대주주 MBK파트너스와 최대 채권자 메리츠 3사(증권, 화재, 캐피탈)가 2000억원 규모의 DIP 조달에 합의하면서다.
일각에서는 장기간 평행선을 달리던 양측이 막판에 합의에 이른 배경으로 정치권의 압박과 MBK파트너스의 연대보증 확대, 회생절차에서 DIP 금융이 갖는 법적 우선변제 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회생법원은 지난 3일 홈플러스에 대해 회생폐지를 결정했다. 법원은 회생계획안을 이행하기 위한 운영자금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점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회생폐지 결정 이후 홈플러스에는 14일간의 즉시항고 기간이 주어졌고 이 기간 안에 2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문제는 홈플러스의 최대주주인 MBK파트너스와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 3사가 홈플러스 회생에 필요한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를 두고 이견을 보였다는 점이다.
메리츠증권, 메리츠화재, 메리츠캐피탈 등 메리츠 3사는 홈플러스에 추가 대출을 실행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경영권을 행사해 온 MBK파트너스의 실질적 책임을 요구했다. 채권자가 신규 자금을 투입하는 만큼 대주주도 보증이나 책임자본 투입으로 위험을 함께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MBK파트너스와 김병주 회장의 연대보증을 조건으로 1000억원 규모의 DIP(기존 경영자 관리인제도) 대출을 제공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의 자금은 집행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반면 MBK파트너스는 DIP금융 자체가 회생절차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변제받는 채권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과도한 보증 요구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이에 따라 MBK는 메리츠가 2000억원을 대출할 경우 절반인 1000억원에 대해서만 MBK파트너스와 김병주 회장이 연대보증을 제공하는 방안을 제시했고, 메리츠 3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협상은 장기간 교착상태에 빠졌다.
대출 조건과 대주주 책임 범위를 놓고 양측이 맞서면서 홈플러스의 운명은 회생폐지 확정과 함께 청산 쪽으로 기우는 듯 했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정치권이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부터다.
교착상태에 머물던 자금조달 협상은 정치권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급물살을 탔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지난 9일 국회에서 MBK-메리츠 경영진 간담회를 열어 자금 확보와 회생 방안 마련을 촉구했고, 홈플러스 정상화 태스크포스(TF) 단장인 유동수 의원이 직접 중재에 나섰다. 이에 더해 한병도 원내대표가 홈플러스 사태와 관련한 청문회를 개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압박 강도를 높였다.
한 원내대표는 1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MBK와 메리츠가 여전히 소극적 태도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국회 정무위 차원의 청문회 추진 계획을 밝혔다. 이날 MBK파트너스는 기존 1000억원으로 제시했던 연대보증 규모를 2000억원으로 늘렸고 다음 날 메리츠 3사는 이사회를 거쳐 홈플러스 회생을 위한 2000억원의 DIP 대출 안건을 의결했다.
실제로 MBK파트너스와 메리츠금융그룹의 2000억원 자금조달에 대한 합의가 도출된 이후 청문회 계획이 취소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청문회라는 정치적 카드가 사태 해결의 실질적 압박 수단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번 대출이 DIP금융이라는 점도 메리츠3사의 의사결정을 뒷받침한 요인으로 꼽힌다. DIP금융은 회생절차에서 기업의 영업을 유지하기 위해 공급하는 신규 운영자금으로, 채무자회생법상 공익채권으로 분류된다. 일반 회생채권이나 회생담보권보다 우선 변제받는 만큼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일반 대출보다 회수 안정성이 높은 구조다.
다만 법률상 우선변제권이 있다고 해서 회수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선변제는 기업에 분배 가능한 자산과 현금흐름이 존재한다는 전제 아래 적용되는 권리다. 홈플러스처럼 회생 성공 여부 자체가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기업가치가 크게 훼손되거나 청산으로 이어질 경우 우선변제권만으로는 손실을 모두 막기 어렵다. 메리츠 3사가 끝까지 MBK파트너스에 대주주 책임 분담과 전액 연대보증을 요구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합의 덕분에 홈플러스는 법원에 즉시항고를 제기했으며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회생계절차를 재개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이번 2000억원 조달은 회생계획을 이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갖춘 데 의미가 있을 뿐, 회생 성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홈플러스는 “즉시항고를 통해 회생절차가 연장되고 DIP 대출이 들어오는 대로 영업을 재개할 계획”이라며 “운영자금 확보로 정상화를 위한 한 고비는 넘었지만 협력사를 포함한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협력과 도움 없이는 회생이 어려운 만큼 상생의 관점에서 홈플러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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