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청년을 돕기 위한 대출 규제 완화가 오히려 주택시장 과열과 자산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청년·무주택자의 주거 사다리를 복원해야 한다는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금융 지원 확대가 실제로 청년층의 내 집 마련 기회를 넓힐지, 아니면 일부 자산가 가구의 영끌·갭투자만 자극할지를 놓고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금융위원회는 15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이억원 금융위원장 주재로 전문가, 청년, 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한 ‘부동산 금융정책 국민 의견 경청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위원장은 “부동산과 금융은 국민의 삶에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는 문제”라며 “가계부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도 청년과 무주택자의 주거 사다리를 조화롭게 보호할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토론회에서는 청년층의 주택 구매가 부모의 자산 지원 여부나 직장 대출 등 금융 접근성에 따라 좌우되면서 자산 양극화가 확대될 수 있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다만 이를 해소하기 위한 금융 지원 확대 방안을 놓고는 시각차가 뚜렷했다.
이대열 한국주택건설협회 본부장은 "자산이 부족하지만 미래 소득이 있는 청년층에게 금융 지원을 확대하지 않으면 부모 자산 여부에 따른 청년층 내부 격차가 극대화된다"며 정책 금융 확대를 주장했다.
반면 박선영 동국대 교수는 영국의 지분형 모기지 확대 정책 실패 사례를 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박 교수는 "공급이 제한된 상태에서 금융 지원(대출 완화)을 확대하면 집값 상승으로 이어진다"며 "청년층 대출 규제 완화는 목마르다고 소금물을 마시는 격인데, 단순히 규제 완화로 해결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서영수 SK증권 상무 역시 과거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사례로 들며 실수요자 우대 정책의 부작용을 지적했다.
서 상무는 "2020년 생애최초 주택구입자 등에 대한 LTV 우대 폭 확대 이후 2030 세대의 영끌·갭투자가 늘어나면서 전세가격과 주택가격 상승을 자극한 측면이 있었다"며 "서울 아파트 거래의 40% 이상을 30대가 차지하는 상황에서 강남 고가 아파트 구매 자금의 70%가 부모와 조부모로부터 증여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실수요자 지원이라는 명분만으로 대출 규제를 완화할 경우 결국 자산가 가구가 더 큰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실수요자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년층 주택구입 금융 지원과 함께 전세대출 정책 역시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전세대출이 무주택 서민의 주거안정을 위한 필수 수단이라는 시각과, 집값·전셋값 상승을 자극하는 요인이라는 시각이 맞섰다.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전세대출과 관련해 "전세 수요는 월세보다 실질적으로 부담이 낮기 때문에 발생하고, 전세대출이 가격 상승을 야기하는 측면도 있다"며 "우리 정책이 단기적인 가격상승 방어에 있다면 취약계층에 한정해 제공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서영수 상무는 “비투기지역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전세대출을 늘리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반대로 투기지역에서의 확대는 불난 집에 기름 뿌리는 격”이라고 언급했다. 김원장 삼프로TV 부사장 역시 “하단에 위치한 무주택 서민에 대한 전세대출은 묶거나 축소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박사는 주택담보안정비율(LTV),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대출의 '양'만 조절하는 기존 규제 방식의 한계를 거론하며 새로운 대안으로 '거시건전성 관리부담금'을 제시했다.
거시건전성 관리부담금은 은행이 주택담보대출을 과도하게 확대할 경우 추가 비용을 부담하도록 해 대출금리를 간접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이다. 대출 기회 자체를 제한하기보다 비용을 높여 가수요를 억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김 박사는 "주택담보대출 수요는 비탄력적이어서 양을 줄이는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부작용만 목도 되고 있다"며 "통화당국이 주택시장만을 보고 금리를 올릴 수 없는 만큼, 거시건전성 관리부담금을 은행에 부과해 주담대 비용(금리)을 조정하는 가격 조절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출의 기회 자체를 원천 차단하기보다는 비용을 높여 가수요를 거르자는 취지다.
이에 대해 배문성 라이프자산운용 이사는 “원칙적으로는 거시건전성 관리부담금에 찬성한다”면서도 “부모 대출이나 직장 대출 등 규제를 우회하는 '그림자 금융'으로 부담금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에 DSR을 규제할 때 주담대뿐 아니라 신용대출과 그림자금융까지 함께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14일부터 16일까지 사흘간 부동산 정책 토론회를 열고 주택 공급, 금융, 세제 등 주요 쟁점을 연속 논의한다. 첫날 열린 토론회에서는 민간 재개발·재건축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 방안이 다뤄졌다. 마지막 날인 16일에는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비롯한 보유세 개편 방향을 놓고 토론을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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