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한진리 기자] 농협 개혁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개혁의 실효성을 둘러싼 의문도 커지고 있다. 인적분할과 지방 이전 등 다양한 방안이 속속 나오고 있음에도 "조직을 나누는 것만으로 개혁이 완성되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이 해소되지 않고 있어서다. 중앙회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한다는 방향성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그 방식이 조직 쪼개기와 지방 이전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개혁추진단이 마련한 1차 개혁안의 핵심은 조합원 직선제 도입과 감사위원회의 외부화다. 이어 준비 중인 2차 개혁안에는 경제사업 활성화와 지배구조 개편, 사업 부문 인적분할 등이 담길 전망이다. 여기에 농협중앙회의 전라남도 나주 이전과 NH농협금융지주·은행의 부산 이전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개혁 논의는 조직 구조 전반으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이번 개혁안을 관통하는 방향은 명확하다. 중앙회에 집중된 권한을 기능별로 분산하는 것이다. 회장 선출 방식은 직선제로 바꾸고 감사 기능은 외부 조직으로 독립시킨다. 경제사업은 분할을 검토하고 조직 일부는 지방으로 이전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중앙회가 보유한 인사권과 감사권, 경제사업 영향력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농협 안팎에선 이러한 접근만으로 개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조직을 재정비하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을지라도 권한을 여러 조직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개혁의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업계에서는 이번 개혁이 조직 구조 개편에 무게가 실리면서 정작 권한과 책임의 재설계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이번 개혁을 두고 "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의 또 다른 버전 아니냐"는 평가도 흘러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방 이전이다. 본사를 나주와 부산 등으로 옮긴다고 해서 중앙회의 권한 집중 문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조직의 위치보다 의사결정 구조와 책임 체계를 어떻게 바꿀지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외부감사위원회 설치 역시 같은 논란을 낳고 있다. 추진단은 감사 기능을 중앙회 밖으로 독립시켜 회장 권한을 견제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업계에서는 기존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또 다른 강한 권한을 가진 조직을 만드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견제 장치가 또 다른 권력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반면 추진단 측은 감사 기능 독립 없이는 중앙회 권한을 실질적으로 견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감사 조직을 중앙회로부터 분리해야 내부통제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인적분할도 논란의 중심에 있다. 인적분할이 현실화되면 중앙회의 경제사업 통제력은 상당 부분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권한이 분산되는 만큼 책임 주체도 복잡해질 수 있다. 의사결정 주체가 늘어나면 중앙회와 지주, 회원조합 간 이해관계 조정 비용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조합원과 지주회사, 중앙회 간 이해관계가 더욱 얽히면서 오히려 의사결정 속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농협 내부에서는 개혁 추진 방식에 대한 비판이 거센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개혁 과제와 관련해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정부 주도로 '일방통행' 방식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이번처럼 조직의 근간을 바꾸는 사안은 임직원과 지역 농축협, 조합원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농협 내부 관계자는 "개혁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며 "다만 인적분할이나 외부감사위원회 설치처럼 조직의 근간을 바꾸는 사안을 충분한 사전 교감 없이 추진하는 데 대한 우려가 내부에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 의견을 듣기보다 방향을 먼저 정해 놓고 추진하는 방식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농협 개혁의 핵심은 조직을 얼마나 많이 나누느냐가 아니라 권한과 책임을 어떻게 재설계하느냐에 있다고 지적한다. 중앙회의 권한을 축소하는 것만으로는 개혁이 완성되지 않기 때문에 분산된 권한의 행사 주체와 범위, 방식 등이 세부적으로 설계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논의되는 개혁안은 대부분 조직을 분리하거나 기능을 이전하는 방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진정한 개혁은 권한을 나누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 구조와 책임 체계를 어떻게 바꾸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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