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송한석 기자] 수율 부진과 고객 확보 난항에 시달리던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4~5나노 공정에서 수주를 기반으로 가동률 상승 기대가 커지는 가운데 지난해 테슬라 대형 계약 이후 구글과 앤트로픽 등 글로벌 빅테크와의 추가 협력 가능성도 잇따라 거론되고 있다.
세계 최초로 GAA(게이트올어라운드) 기반 3나노 양산에 나서고도 충분한 고객과 생산 물량을 확보하지 못했던 삼성전자가 최근 수주 흐름을 생산량 확대와 수율 개선, 추가 고객 확보로 이어지는 선순환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최근 선단 공정을 중심으로 고객 기반을 넓힐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테슬라와 약 165억달러 규모의 반도체 위탁생산 계약을 체결하며 대형 고객을 확보했다. 여기에 구글은 차세대 텐서처리장치(TPU) ‘아이스피시’에 들어가는 메모리 I/O 다이를 삼성전자 2나노 공정에서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AI 기업 엔트로픽과의 협력 가능성도 거론된다. 자체 AI 칩 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와 생산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새로운 수주처로 부상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아직 구체적인 생산 물량과 일정이 확정된 단계는 아니지만 기존 모바일 중심 고객 구조에서 벗어나 AI 반도체 수요를 흡수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고객 확대 움직임이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가동률과 실적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창민 KB증권 연구원은 “최근 구글, 아마존, 메타 등 빅테크 업체로부터 신규 수주 가능성이 확대되면서 파운드리 실적 개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운드리 사업에서 주문 확보는 단순한 매출 증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고객 물량이 늘어나면 생산 라인을 반복적으로 가동하면서 공정 데이터를 축적하고 불량 원인을 줄일 수 있다. 생산 과정에서 수율 개선 활동이 이어지면 원가 경쟁력과 납기 안정성이 높아지고 이는 다시 추가 고객 확보로 연결될 수 있다. 반대로 초기 고객과 양산 물량이 부족하면 생산 경험을 충분히 쌓기 어려워 수율 개선 속도도 늦어지는 구조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TSMC는 주문 생산을 많이 하다 보니까 생산 기술이 굉장히 올라가 있고 우리는 주문이 적어 생산 기술이 떨어진 건 사실”이라며 “우리도 대량 생산을 많이 하면 TSMC만큼 수율이 안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3나노 부진은 이 같은 악순환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2022년 최초로 GAA 기반 3나노 양산에 나서며 TSMC보다 먼저 차세대 트랜지스터 구조를 도입했지만 대형 고객 확보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수율 논란이 이어지는 사이 주요 고객의 TSMC 쏠림이 심화했고 고객 물량 부족은 다시 생산 경험 축적과 수율 개선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삼성 파운드리는 10나노와 8나노 공정까지 TSMC와 기술 격차가 크지 않았지만 7나노 이후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평가된다. 4나노에서는 공정 문제가 불거지며 퀄컴 물량이 TSMC로 이동했고 3나노에서는 업계 최초로 GAA 구조를 도입하고도 고객 확보에 고전했다. 선단 공정을 먼저 개발해도 이를 채울 주문과 반복 양산 경험이 부족하면 수율과 고객 신뢰를 함께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점을 드러낸 셈이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선단 공정 개발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열린 SAFE 포럼 2026에서는 1.4나노 공정인 SF1.4를 2029년 양산 목표로 개발 중이며 개량형 SF1.4+는 2030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3나노에서 선단 기술을 먼저 확보하고도 고객 물량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만큼 차세대 공정 경쟁력 역시 기술 개발 자체보다 실제 주문과 양산 경험으로 연결할 수 있느냐가 좌우할 것으로 풀이된다.
TSMC와 삼성전자의 격차 역시 이 대목에서 나타난다. TSMC는 30년 이상 파운드리 사업에 집중하며 글로벌 팹리스의 제품을 반복적으로 양산해 왔다. 고객사는 검증된 공정에 후속 제품을 맡기고 TSMC는 늘어난 생산량을 기반으로 공정 안정성과 생산기술을 높이는 선순환을 구축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선단 공정 기술을 확보하고도 고객 기반과 양산 경험에서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TSMC는 30년 이상 파운드리만 했기 때문에 고객 신뢰가 상당히 크다”며 “경쟁력과 실력 모두 있어 고객이 많이 선호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삼성은 상대적으로 메모리에 치중해 왔고 파운드리는 10년 전부터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뜻대로 안 되는 것”이라며 “앞으로 고객을 얼마나 더 빠른 속도로 확보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최근 2나노 잠재 고객뿐만 아니라 4~5나노 공정에서도 수주를 기반으로 가동률이 높아지면서 파운드리 손익 개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최선단 공정의 대형 고객 확보와 별개로 기존 생산라인에 물량이 유입되면 고정비 부담을 낮추고 사업 전반의 적자 폭을 줄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수림 DS투자증권 연구원은 “4~5나노 수주 기반 가동률 상승을 감안하면 4분기 중 분기 흑자 전환 및 점진적인 실적 개선이 기대된다”며 “2027년 양산이 시작되는 테일러 팹에서도 2나노 파운드리 추가 고객 확보가 이어지며 2028년부터 본격적인 실적 기여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2나노에서는 잠재 고객이 실제 양산 물량으로 이어질지가 관건으로 꼽힌다. 구글과의 협력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TSMC의 2나노 가격 인상을 배경으로 퀄컴과 미디어텍이 삼성전자 공정을 검토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아직 상당수가 검토 또는 협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만큼 잠재 수요가 실제 설계 확정과 양산 계약으로 이어지는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외부 고객 확보 여부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팹의 가동에도 직결된다. 테일러 공장은 그동안 고객 확보 난항 속에 가동 일정이 지연되며 삼성 파운드리 부진을 상징하는 사례로 거론돼왔다. 선단 공정 생산능력을 확보하고도 이를 채울 고객 물량이 부족하면 대규모 투자 부담만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뒤따랐다.
최근 분위기는 달라지고 있다는 평가다. 테슬라 대형 수주 이후 테일러 팹의 2027년 고객 생산 일정이 거론되는 가운데 2나노 추가 고객 확보와 추가 팹 검토 가능성도 부상하고 있다. 과거 가동 지연의 원인이 고객 부족이었다면 향후에는 확보한 주문을 실제 생산 물량으로 연결해 라인을 안정적으로 가동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다만 최근 고객 확대 기대가 곧바로 파운드리 경쟁력 회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잠재 고객과의 협의가 실제 설계 확정과 테이프아웃, 대량 양산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4~5나노 가동률 상승과 분기 흑자 전환 전망 역시 실제 생산량과 손익 개선으로 입증돼야 한다.
업계에서는 삼성 파운드리의 재도약 여부는 2나노 기술을 확보했다는 사실보다 확보한 주문을 얼마나 안정적인 양산 물량으로 연결하느냐에 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3나노에서는 기술 선점에도 고객과 생산 물량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서 수율 개선과 추가 수주로 이어지는 고리를 만들지 못했다. 반면 최근에는 4~5나노 가동률 상승 기대와 2나노 고객 확대 가능성, 테일러 팹 양산 준비가 맞물리고 있다. 이 흐름이 실제 생산량 확대와 수율 개선으로 이어질 경우 삼성전자가 3나노에서 겪은 악순환을 끊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박 교수는 “파운드리는 주문을 많이 받아 생산량을 늘릴수록 수율 개선 속도도 빨라진다”며 “테일러 팹이 얼마만큼 성공하느냐가 결정나는데 3나노부터 시작해 2나노도 할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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