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박안나 기자] 글로벌 시장에서의 K-푸드 열풍이 뜨겁다. 라면과 과자, 아이스크림, 김치와 만두까지 한국 식품은 이제 해외 소비자들에게 낯설지 않은 제품이 됐다. 미국과 유럽, 동남아를 넘어 중동과 남미까지 판로가 넓어졌고 식품기업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우고 있다. 국내 내수 침체를 해외가 상쇄하는 구조도 어느덧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흥미로운 대목은 K-푸드의 전성기와 국내 식품기업들의 세대교체 시기가 절묘하게 맞물리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 식품기업 오너 3세들이 경영 전면에 등장한 뒤 글로벌 사업을 이끌며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사례는 롯데그룹이다.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은 최근 한국 롯데웰푸드와 일본 롯데제과가 설립하는 싱가포르 합작법인 의장을 맡게 됐다. 한·일 롯데 식품사업을 총괄하는 조직의 이사회 의장으로 그룹 식품사업의 글로벌 확장을 진두지휘할 예정이다.
농심도 비슷하다. 신상열 부사장은 지난해 8월 농심의 북미 지주회사 최고경영자 오른 데 이어 올해 4월 중국사업을 지원하는 홍콩법인 임원까지 맡으며 해외 사업의 핵심 축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지난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는 사내이사에 오른 뒤 기업 내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에도 이름을 올리며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
해외 사업 확대를 발판으로 역대 최대 실적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오리온 역시 지난해 정기 임원인사에서 오너 3세 담서원 본부장을 부사장으로 승진시키면서 글로벌 사업을 맡겼다. 담 부사장은 승진과 함께 전략경영본부를 진두지휘하게 됐는데 본부 산하 조직으로 해외사업팀을 비롯해 신규사업팀, 경영지원팀, CSR팀 등을 두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우연이 아니다. 국내 식품산업에서 이제 후계자의 경영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시험대가 글로벌 시장이기 때문이다. 국내 시장이 성숙기에 진입하면서 성장 정체가 계속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해외에서 얼마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브랜드를 안착시키느냐가 후계자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역설이 생긴다. K-푸드 자체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만큼, 글로벌 사업 성과가 후계자의 경영 능력에 기인하는지 혹은 산업 전체의 호황 덕분인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호황은 기업을 성장시키지만 동시에 경영자의 진짜 실력을 가려버리는 환경이기도 하다.
K-푸드 열풍이 영원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 글로벌 식품기업들의 K-푸드 모방 경쟁, 환율 변동성 확대 등 변수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해외 소비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지금 잘 팔리는 제품이 3년, 5년 뒤에도 경쟁력을 유지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결국 차기 수장이 고민해야 할 것은 K-푸드 열풍이 시들해진 이후의 ‘넥스트 스텝’이다. 해외 판매 채널을 넓히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현지 소비자 취향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꾸준히 경쟁력을 지닐 수 있는 차별화된 브랜드와 기술을 축적해야 한다.
K-푸드의 전성기는 분명 국내 식품기업들에게 축복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시기가 가장 위험한 시기일 수도 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글로벌 시장에서의 K-푸드 열풍도 언젠가는 사그라진다. 승계 행보를 이어가는 차기 오너들에게 필요한 것은 꽃이 지고 난 이후를 대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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