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주연 기자] SK하이닉스의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이 확정되면서 삼성전자의 미국 ADR 상장 가능성도 시장 안팎에서 거론되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투자 경쟁이 본격화되며 메모리 기업의 자금 조달 규모가 커진 데다 미국 기관투자자의 투자 접근성을 높여야 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어서다.
다만 삼성전자의 ADR 추진 여부를 당장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SK하이닉스의 ADR 상장 이후 기업가치 재평가와 주가 상승 등 긍정적 효과가 가시화될 경우 삼성전자를 향한 시장의 요구도 커질 수 있지만 실제 추진 과정에서는 공시 범위와 내부통제, 주주 관점의 지배구조 체계가 함께 점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6일 KB증권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미국 ADR 상장 발표 이후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 삼성전자의 ADR 상장에 대한 문의가 증가하고 있다.
KB증권은 "ADR 상장이 현실화되면 삼성전자 주가 상승의 강력한 촉매 요인이 될 것으로 주목하는 분위기"라며 "글로벌 투자자의 접근성 확대 차원에서 미국 ADR 상장이 유력한 자본 정책 옵션으로 평가되며, 관련 논의가 점증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일본의 최대 메모리 기업인 키옥시아도 내년 봄 ADR 상장을 추진할 계획이다. 가와무라 요시히코 키옥시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25일 주주총회에서 내년 4~5월께 미국 증시에 ADR을 상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메모리 업계의 ADR 추진은 AI 인프라 투자 사이클 속에서 미국 자본시장의 평가를 직접 받으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업체들은 미국 투자자 접근성 확대와 밸류에이션 재평가, 대규모 투자 재원 확보를 동시에 노리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이번 ADR을 통해 신주를 발행하며 약 45조원 규모의 투자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사는 메모리 반도체 캐파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조달 자금 전액을 시설 투자와 장비 확보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신용평가 역시 SK하이닉스 ADR을 위한 신주 발행에 대해 재무적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신평은 리포트를 통해 "이번 대규모 유상증자는 AI 메모리 수요 대응을 위한 설비 투자 확대 국면에서 자본 확충을 통해 재무 기반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신용도에 긍정적"이라며 "순현금 규모가 확대되며 재무 레버리지 지표가 개선되는 등 재무 완충력이 제고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만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와 달리 ADR 상장을 서두르지 않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삼성전자가 이미 외국인 투자 비중이 높은 데다 미국 투자자들도 해외 주식 계좌나 장외시장 등을 통해 투자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ADR 상장의 필요성을 따져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 ADR 거래가 활발해질 경우 국내 본주 거래량이 일부 분산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다.
미국 상장에 따른 공시·회계 부담도 변수다. 미국 거래소에 ADR을 상장하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연차보고서인 Form 20-F를 제출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재무제표뿐 아니라 내부통제, 위험 요인, 지배구조 관련 사항 등이 폭넓게 담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와 파운드리, 시스템LSI 등 반도체 사업과 모바일·가전 사업을 한 법인 안에 두고 있어 사업부 간 부품 공급과 물량 배분, 가격 산정 구조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반도체 사업부가 생산 한제품이 반도체가 모바일 사업에 활용되는 만큼 ADR 추진 시 사업부 간 거래 조건과 수익 배분, 손익 구조에 대한 공개 압박이 발생할 수 있다. 내부통제 부담이 늘어나는 동시에 사업부별 원가 구조나 거래 조건이 경쟁사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도 부담 요인으로 거론된다.
지배구조와 공시 체계도 변수로 꼽힌다. 미국 거래소에 ADR을 상장할 경우 SEC 기준에 맞춘 공시와 내부통제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해외 투자자들이 이사회 독립성, 주주환원 정책, 주주가치 제고 방안 등을 보다 면밀히 들여다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의 ADR 상장 요구가 커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 자본시장 입장에서도 글로벌 메모리 선도 기업에 대한 투자 수요가 있는 만큼 삼성전자 역시 미국 투자자 접근성을 넓힐 경우 기업가치 재평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삼성전자가 고려한다기보다 미국 쪽에서 더 요청하는 측면도 있을 수 있다"며 "미국 자본시장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활용하고 싶고,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도 미국 자본을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반도체 투자를 많이 해야 하는 만큼 미국 자본을 투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다"며 "미국 시장과 국내 기업 양쪽 모두에 나쁠 게 없는 선택"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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