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조은지 기자] "블록체인의 자유와 서비스 제공자의 책임은 양립할 수 있습니다. 다만 블록체인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는 방식은 아닙니다."
류기혁 넥스페이스 블록체인 총괄은 17일 경기 성남시 넥슨 본사에서 열린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NDC 26)에서 이같이 말했다.
류 총괄은 이날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 자유와 책임의 딜레마"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블록체인 게임을 실제 라이브 서비스로 운영하는 과정에서 넥스페이스가 어떤 기술적·운영적 한계에 부딪혔고, 이를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자리였다.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는 메이플스토리 지식재산권(IP)을 기반으로 한 블록체인 생태계다. 블록체인 게임 '메이플스토리N'과 마켓플레이스, 토큰, NFT 아이템, 외부 빌더 앱 생태계까지 포함한다. 이 모든 인프라는 아발란체 기반 퍼미션드 체인인 '헤네시스 체인' 위에서 운영된다. 헤네시스 체인에는 가스비 지불 수단인 NXPC와 게임 내 토큰 NESO가 존재한다.
류 총괄은 블록체인의 핵심을 투명성, 신뢰성, 자유, 확장성으로 설명했다. 그는 "확장은 결국 블록체인에서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에 가능하고, 이 자유를 위해서는 투명성과 신뢰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데이터의 진실성이 운영사의 약속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로 보장되는 게 블록체인 투명성의 매력"이라고 짚었다.
하지만 이 이상은 실제 서비스 운영 단계에서 현실적 제약과 충돌했다. 류 총괄은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가 마주한 대표적인 벽으로 자산 접근 승인(Approve), 가스비, 스마트컨트랙트 배포 제한을 꼽았다. 그는 "처음에는 별개로 보였지만 결국 하나의 도미노였다"고 말했다.
Approve는 블록체인에서 자산 거래를 위해 필요한 권한이다. 특정 조건이 발생하면 이용자 지갑에서 자산을 이동시켜도 된다는 서명에 가깝다. 그러나 공격자가 정상 서비스처럼 위장한 스마트컨트랙트를 배포하고 이용자가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서명하면 자산 탈취로 이어질 수 있다. 류 총괄은 "이게 기존에는 없었던 새로운 자유에 따라온 책임"이라고 말했다.
넥스페이스는 이용자 보호를 위해 자사가 허용한 컨트랙트만 NXPC, NESO, NFT 등 주요 자산과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화이트리스트 방식을 적용했다. 다만 외부 빌더가 늘어날수록 각 컨트랙트를 직접 검토하고 등록해야 했고, 운영 비용과 내부 절차 부담도 커졌다. 류 총괄은 "화이트리스트 방식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자유의 가치를 조금 줄이고 유저를 보호하는 책임을 택한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가스비 문제도 비슷한 맥락이다. 블록체인에서는 토큰 전송, NFT 발행, 거래 등 모든 행동에 가스비가 필요하다. 류 총괄은 "지금 시점에서 가스비는 금액적으로 허들이 높다기보다 결국 편의성의 문제"라고 짚었다. 기존 게임에서는 구매 버튼을 누르면 끝나지만, 블록체인에서는 이용자가 별도로 가스 토큰을 확보해야 하는 불편이 생긴다.
넥스페이스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용자 가스비를 100% 부담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류 총괄은 "억지로 퍼미션리스 체인을 흉내내지 말고, 차라리 퍼미션드 체인으로 가서 가스비 수입을 다시 유저 지원에 쓰자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가스비라는 허들을 낮추기 위해 자유의 또 다른 모습인 탈중앙화를 양보한 결정이 되어버렸다"고 덧붙였다.
퍼미션드 체인은 또 다른 책임을 낳았다. 류 총괄은 "퍼미션드이기 때문에 KYC·AML 의무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넥스페이스는 지갑별 일일 출금 한도, 자산 흐름, 이상거래 탐지 등을 모니터링해야 한다. 그는 "퍼미션리스 체인에서는 관리할 수 없다고 책임 회피를 할 수 있지만, 퍼미션드는 관리할 수 있는데 하지 않았다는 책임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넥스페이스는 스마트컨트랙트 배포 자체도 제한했다. 누구나 컨트랙트를 배포할 수 있도록 열어두면 출금 한도나 이상거래 모니터링 체계를 우회하는 경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용자 보호를 위한 화이트리스트, 사용성 개선을 위한 퍼미션드 체인, 규제 책임에 따른 컨트랙트 배포 제한이 하나로 이어진 셈이다.
류 총괄은 "처음에는 블록체인을 통해 생태계가 확장되는 이상적인 꿈을 꿨다"면서도 "라이브를 하면서 빌더들이 스마트컨트랙트를 배포할 수도 없고, 배포하더라도 하나하나 검토하고 화이트리스트를 해야 하는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유저를 보호하고 사용성을 높이기 위해 했던 결정의 끝이 퍼미션드 체인이었고, 퍼미션드 체인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가 생태계 확장의 발목을 잡는 구조가 됐다"고 설명했다.
넥스페이스가 찾은 해법은 블록체인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재정의하는 방식이다. 류 총괄은 검증된 기능을 모듈 형태로 제공하고 빌더가 이를 조합해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액션 모듈' 구상을 언급했다. 모든 스마트컨트랙트를 자유롭게 열어주는 대신, 사전에 검증된 기능 단위를 제공해 운영 리스크와 확장성을 함께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류 총괄은 이를 두고 "책임은 모듈이 지고 자유는 조합으로 연다"고 표현했다. 그는 "블록체인이니까 열어야 한다는 문법에 집착하지 않고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을 찾는 것, 그것이 5년의 빌딩 끝에 도달한 답"이라며 "중요한 건 더 좋은 방향으로 한 걸음씩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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