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전한울 기자] 5대 가상자산 거래소가 국내외 굴지의 금융·정보기술(IT) 기업과 연달아 맞손을 잡고 있다. 가상자산 제도화 이후 열릴 스테이블코인·토큰증권(STO)·법인거래 시장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합종연횡으로 풀이된다.
다만 국내외로 속출하는 경제·정치적 현안에 정작 가상자산 제도화 논의는 차일피일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 한편에선 "최근 합종연횡 사례가 급증한 만큼 산업 개화·진흥에 초점을 맞춘 입법·규제안에 힘이 실릴 것"이란 기대감도 나온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 등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가 최근 들어 활발한 합종연횡을 이어가면서 금융당국 규제 및 관련 입법 추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디지털자산기본법(가상자산 2단계법)' 논의가 장기화 수순에 접어든 상황 속, 금융·IT 등 산업 전방위로 가상자산 분야를 새 먹거리로 낙점하면서 제도화 물결이 한층 거세질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韓 제도화 사실상 정체…주도권 쥔 美 상황도 '글쎄'
가상자산 제도화 움직임 중심에는 관련 법적 기반을 담은 '가상자산 2단계법'이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부터 법인거래 및 대주주 지분율까지 산업 전반을 아우른다.
당장 상황은 녹록지 않다. 현재 관련 논의는 중동사태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크게 부상하면서 잠정 연기된 상태다.
최근 지방선거 종료에 발맞춰 이달 논의를 다시 시작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다만 법안 논의에 나설 국회 정무위원회에 조직 재편이 뒤따르는 점을 고려하면 8~9월 이전에는 재개가 어려울 것이란 시각도 존재한다.
실제 앞서 여당이 지난해 9월 출범시킨 ‘가상자산 태스크포스(TF)’는 최근 원내대표 임기 종료와 함께 해체 수순을 밟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 측은 “추후 인선에 따라 관련 TF를 재구성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새 구성원의 전문성 및 논의 지속성은 담보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초 여러 쟁점이 산적해 있어 재개 시점이 무의미하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앞서 국회입법조사처는 가상자산 거래소 대주주 지분을 제한하는 법안 내용을 두고 "재산권 및 기업활동 자유 등과 관련해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국내 뿐만 아니다. 국제 표준으로 기대를 모은 미국 '클래리티 법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클래리티법은 그동안 모호했던 가상자산 산업을 금융 제도권으로 편입시키는 데 목표를 둔 법안이다. 미국 가상자산 시장의 규모 및 선도적 입지를 고려하면 '글로벌 스탠다드' 격으로 평가된다. 그동안 해외 선례를 적극 참고해 온 규제당국으로선 잘 다듬어진 지침서가 등장하는 셈이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현재 상원에서 정체돼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상원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 일가의 가상자산 사업과 연계된 윤리적 이슈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여·야간 갈등이 한층 깊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올 11월 미국 중간선거도 변수다. 트럼프 정권의 레임덕 가능성까지 점쳐지는 만큼, 제도화 성패 여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가상자산 산업을 직접 진두지휘해 온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중동전쟁에 따른 고물가 현상과 이민자 단속 강경책 영향으로 지지율이 역대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 같은 여론은 올 초 진행된 보궐선거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텍사스, 마이애미 등 전통적인 공화당 텃밭이 민주당에게 넘어가면서다.
이 같은 추이가 올 11월까지 이어질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조기 레임덕에 빠질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이는 곧 트럼프 대통령 일가가 적극 추진해 온 '가상자산 대세화' 움직임이 정체될 가능성을 의미한다.
현재 민주당은 가상자산 관련 세금부담 완화 등 일부 내용에 대해 반대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민심 악화에 직면한 공화당으로선 상원 통과가 한층 시급해진 셈이다.
◆시장은 이미 연합전선…"거래소 신뢰 향상·차세대 금융 진입"
이처럼 제도화 움직임이 정체 중인 가운데, 시장은 오히려 역대 가장 활기찬 격변기를 맞이하고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와 금융·IT 업계가 활발한 지분거래를 통해 넥스트 스텝을 내다보면서다.
거래소는 제도권 금융 수준의 신뢰성을, 금융·IT 업계는 새 먹거리를 요하는 만큼 합종연횡 규모는 지속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국내 1위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 중인 두나무는 가장 활발하고 돋보이는 합종연횡을 이어가고 있다.
하나은행은 최근 두나무를 대상으로 약 1조원(지분 6.55%) 규모의 전략적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은행과 가상자산 기업간 대규모 딜이 이뤄진 첫 사례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및 블록체인 기반 금융 인프라 개발을 목표로 한다.
이미 앞서 네이버파이낸셜과 포괄적 주식교환 계약을 체결해 100% 자회사로 편입된 점을 고려하면 금융권 접점이 대폭 늘어난 셈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삼성그룹 계열사 3사가 가상자산 시장에 첫 발을 내디뎠다는 점이다. 삼성증권·삼성SDS·삼성카드는 최근 두나무 지분 총 4%를 확보하기로 했다. 토큰증권(STO)·스테이블코인 시장 공략은 물론, AI·블록체인 기술력을 결합해 차세대 디지털 금융 인프라를 확장하는 데 속도를 낼 계획이다.
'2위 거래소' 빗썸의 경우 최근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인 서클과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가상자산 인프라·기술 협력에 집중하고 있다. 금융권 합종연횡은 타사 대비 뜸한 만큼 관련 협력안을 지속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3·4위 거래소인 코인원과 코빗은 증권사와 손을 잡았다. 코인원은 최근 한국투자증권 및 글로벌 거래소 OKX로부터 지분투자를 유치했다. 양사는 각각 코인원 지분 20%씩 취득하게 된다. 코빗 역시 미래에셋그룹으로부터 지분 92%에 대한 투자를 유치했다.
이 밖에 '5위 거래소' 고팍스는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바이낸스를 최대주주로 두고 있다. 다만 고파이 사태 정상화와 대주주 리스크 해소 여부가 향후 합종연횡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이처럼 업계 전반에 확대 중인 합종연횡을 두고 "추후 가상자산 법안 논의 과정에서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것"이란 기대감도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한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중요한 건 가상자산 제도화 요구와 필요성이 거래소를 넘어 금융·IT 계열사를 주체로 확산 중이란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가상자산 제도화는 거스를 수 없는 추이로 자리 잡았다. 최근 뉴욕증권거래소 모회사까지 OKX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다"라며 "최근 규제당국도 1000만원 이상 의무보고 규제를 선회하는 등 업계 입장을 일부 고려하기 시작했다. 다소 지연되더라도 제도화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결국 축적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규제 완화 필요성도 제기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외부에선 "아무 대안 없이 금융 리스크만 가득하다"는 시선도 없지 않은데, 알고 보면 실상은 전혀 다르다"며 "그동안 자금세탁 방지 등 여러 안전장치를 확대하며 안정성 강화에 힘써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같은 노력으로 최근 들어 불필요해진 명목상 규제도 분명 있다. 1개 거래소당 1개 은행과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계약을 체결하도록 한 게 대표적"이라며 "투자자 보호라는 명분에도 되레 이용자들의 거래소 이동을 제한하는 낡은 규제로 전락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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