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조은비 기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추진해온 풍산 탄약사업부 인수가 최종 입찰제안서 제출 6일 만에 전격 무산됐다. 풍산이 구체적인 설명 없이 매각을 철회하면서 류진 풍산그룹 회장의 의사결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노조 반대로 인한 철회로 알려졌지만 업계에서는 LIG D&A 등 인수 후보자가 늘고 있고 미국 이란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몸값 부풀리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나온다. 2세 승계 과정에서 류 회장 아들이 재직하고 있는 풍산의 미국 법인의 재무적 뒷받침을 위해서는 탄약사업부의 가격을 높게 받으려는 속내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업계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을 통해 "방산 경쟁력 강화 및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풍산의 탄약사업 부문을 포함한 다양한 사업 기회를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나 풍산 방산부문에 대한 인수 검토는 중단됐다"고 밝혔다. 풍산도 같은 날 "탄약 사업 매각과 관련해 현재 추진하고 있는 바가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공시했다. 양사 모두 구체적인 결렬 이유는 공개하지 않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풍산 탄약사업부 인수를 위한 비공개 입찰에 단독 참여해 지난 3일 최종 제안서를 제출한 상태였다. 그러나 불과 6일 만에 풍산 측이 매각 중단 의사를 밝히면서 거래는 사실상 백지화됐다. 풍산 탄약사업부 매각가는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포함해 1조5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됐다. 한화 내부에선 사전 조율 없이 풍산이 공시를 내면서 크게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이번 인수 백지화를 두고 최종 제안서까지 받아놓고 일주일 만에 매각을 없던 일로 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평가한다. 특히 풍산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양측 모두 구체적인 철회 사유에 대해 함구하고 있어 류 회장이 애초부터 탄약사업부를 팔 의사가 없었다는 의견과, 매각 건을 두고 풍산 경영진 내부에서 의견이 갈렸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방산 업계 관계자는 "류진 회장 스타일이 뚝심있게 밀어붙이기 보다는 주변 말에 잘 휘둘리면서 의견을 자주 바꾸는 스타일"이라면서 "이번 일도 주변의 여론과 사회적 분위기 등으로 인해 갑자기 인수를 철회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표면적으로는 이번 철회의 직접적인 방아쇠는 노조의 강경 반발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최종 입찰제안서를 제출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이후 7일 풍산 노사 간 임금·단체협약 회의가 예정돼 있었다.
노조는 이 자리에서 매각 추진을 강하게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노조의 강경 반발이 이번 철회의 직접적인 방아쇠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조측은 글로벌 탄약 수요가 폭발하는 시기인 만큼 오히려 사업을 키울 때라는 의견과 한화에 넘어갈 경우 고강도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며 매각 중단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탄약사업부는 풍산 전체 매출의 약 30% 수준에 불과하지만, 영업이익 기여도는 70% 이상으로 추산되는 핵심 수익원이다. 2025년 연결 기준 풍산의 전체 영업이익은 2974억원에 달했다. 반면 매출의 약 74%를 차지하는 신동(구리 가공) 부문은 구리 가격 변동에 따른 '메탈 로스' 리스크에 상시 노출되며 수익성이 낮은 구조다. 그룹의 재무 구조를 실질적으로 떠받치는 버팀목이 방산 부문인 셈이다.
업계에서는 '여론 및 규제 부담설'이 이번 철회의 원인이라고 지목하기도 했다. 한 방산 업계 관계자는 "국내 탄약 시장 독점 사업자인 풍산을 한화가 인수할 경우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적으로 제기됐다"며 "방산업체 매각은 방위사업법에 따라 정부 승인도 받아야 하는 만큼, 국가 안보 차원의 여론 부담도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풍산이 탄약 부문 분리를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2년에도 방산 부문 물적분할을 추진했다가 소액주주들의 강한 반발에 한 달 만에 철회한 바 있다.
로이스 류 씨의 경영 행보를 둘러싼 논란도 이번 철회 배경과 무관치 않다는 시각도 있다. 앞서 풍산이 방산 사업 매각에 나선 배경으로 2세 승계 문제가 꼽혀왔다. 류진 회장의 장남 로이스 류(한국명 류성곤)는 미국 시민권자다. 방위사업법상 외국인은 방산업체의 경영권을 행사할 수 없어, 탄약 사업을 인적분할로 독립 법인으로 분리한 뒤 매각하고 신동 사업만 류 씨에게 승계하는 구조가 유력하게 거론돼 왔다.
하지만 로이스 류가 현재 부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풍산의 미국 신동(구리 가공) 법인인 PMX 인더스트리(PMX Industries)의 재무 상태가 문제로 꼽힌다. PMX 인더스트리는 2025년 한 해에만 473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만성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24년 순손실(214억원)과 비교하면 1년 만에 두 배 이상 불어난 수치다. 풍산 본체는 현재 PMX에 1363억원을 포함해 7개 종속회사에 총 2185억원의 채무보증을 서고 있다. 알짜 방산 수익이 미국 법인의 재무 리스크를 떠받치는 구조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매각 무산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도 적지 않은 타격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9 자주포·천무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지상 무기 체계를 수출하는 K-방산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했지만, 정작 무기에 들어가는 탄약은 외부 조달에 의존해왔다. 이번 인수가 성사됐다면 탄약 생산에서 무기 플랫폼 제작·수출까지 이어지는 수직 계열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K9 수출 시 탄약까지 패키지로 공급할 수 있는 수출 협상력이 크게 높아졌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인수 가격을 둘러싼 이견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어차피 류 회장 아들이 미국 국적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 매각은 시간 문제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LIG D&A 측도 인수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고 이에 풍산에서도 가격을 높이기 위해 인수 철회를 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LIG D&A도 기존 유도무기 중심 사업에 탄약 분야를 더할 경우 사업 포트폴리오 확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전략적 시너지를 낼 수 있다.
한편 이번 거래가 무산되면서 풍산의 승계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게 됐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풍산 입장에서 탄약사업부 매각은 단순한 M&A가 아니라 그룹의 미래 구조를 결정짓는 문제"라며 "쉽게 결론을 낼 수 있는 사안이 아닌 만큼 앞으로도 논란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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