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진배 기자] 지난해부터 공모시장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기업인수목적회사(SPAC)를 통한 합병상장이 벤처캐피탈의 자금회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기업가치(밸류에이션) 하향 조정 위험성이 없어 경기 침체기에 유리하다는 이유에서다.

12일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오너스GC에서 '벤처투자 혹한기 펀딩·회수 전략'이라는 주제로 열린 딜사이트 벤처캐피탈 포럼에서 김중곤 NH투자증권 IB1사업부 대표(사진)는 "기업공개(IPO) 침체에 대한 대안책으로 SPAC이 떠오르고 있다"며 "늘어난 신규 SPAC 상장 건수는 비우호적인 시장 환경을 반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신규 상장된 SPAC은 45개에 달한다. 이는 최근 10년 동안 가장 많은 수이며 2021년 대비 80% 증가한 수치다. 이에 따라 지난해 존속 SPAC 개수도 가장 많은 89개를 기록했다.

SPAC을 통한 합병 상장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총 17개사가 SPAC과 합병해 증권시장에 진입했다. 업종별로는 정보통신(IT) 하드웨어(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업체 2개, IT소프트웨어(IT솔루션, 보안) 4개, 소비재 3개(의류, 화장품), 헬스케어(신약, 제약) 3개, 미디어·콘텐츠(게임, 방송, 엔터) 3개, 건설·기계장비(기계, 장치) 2개 등이다.

주주들도 SPAC 상장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최근 10년 합병 주주총회가 부결된 사례는 ㈜스튜디오삼익 1건에 불과하다. 김 대표는 "스튜디오삼익 사례는 합병 대상법인이 시장에서 인정받은 밸류에이션이 급락해 SPAC 주주들이 반대의사를 표명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추세는 SPAC 상장이 가진 장점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SPAC은 일반 신규상장과는 달리 별도의 공모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으며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주주총회 승인만 받으면 자금조달이 가능하다.

밸류에이션 또한 높게 산정될 가능성이 높다. SPAC 합병은 외부 평가기관으로부터 미래 추정실적을 기반으로 본질가치를 평가 받아 신청한다. 이에 따라 분석기관 평가의견서만 공시돼 주가수익비율(PER) 멀티플이 일반 공모보다 높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공모시장에서 높은 멀티플을 받기 어려운 산업에 위치한 기업, 시각에 따라 밸류에이션 수준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기업, 향후 실적이 기대되는 기업의 밸류에이션 책정 시 SPAC 합병이 유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단점도 명확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내놨다. 그는 "SPAC 존속기간이 짧을수록 주주는 합병보다는 청산가치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며 "합병 이후 가치에 주목하지 않고 청산으로 받게 될 이익을 계산해 대량으로 주식매수청구를 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SPAC 소멸 방식에서 발생하는 단주로 인해 현금 유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내놨다. 김 대표는 "SPAC 소멸 방식이 인정되며 합병비율이 1을 넘는 사례가 거의 없어졌다"며 "소멸 방식은 존속 방식보다 합병비율이 낮아 단주가 많이 발생하는데, 이는 상장 당일 종가 기준 현금으로 지급해야 해 현금 유출 부담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