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백승룡 기자] 올해 들어 대규모 투자수요가 몰렸던 회사채 시장의 열기가 이달 눈에 띄게 식어가고 있다. 기관투자가들이 자금 집행을 재개하는 '연초효과'가 사실상 끝난 데다가, 미국을 필두로 긴축적 통화정책 기조가 시장 예상보다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돼서다. 

12월 결산법인의 사업보고서 제출과 정기주총 시즌을 맞아 '숨 고르기'에 접어든 회사채 시장이 이달 말부터 재개하는 주요 기업들의 수요예측 결과에 관심이 모아진다.

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이달 회사채 수요예측에 나선 7개 기업 중에서 현대차증권(AA-)·삼척블루파워(A+) 등 두 곳이 투자수요를 채우지 못했다. 올해 1~2월 70여 개 기업이 수요예측을 진행해 미매각이 발생한 기업은 5곳 수준이었던 것에 비해 미매각 빈도가 잦아진 것이다. 이는 일반 회사채 기준으로, 후순위채 발행에 나섰던 ABL생명보험(A0)은 700억원 모집에 단 한 건의 매수주문도 받지 못했다.

조(兆) 단위 매수주문이 나타난 곳도 이달 초 LG CNS(AA-) 한 곳뿐이었다. 올해 1~2월 두 달 동안 발행사 한 곳에 평균적으로 1조원 안팎의 투자수요가 몰렸던 것과 대조적이다. 두 달 사이 70여 개 발행사의 수요예측 과정에 참여한 매수주문은 총 76조원 수준이다. 금융회사가 자본 확충을 위해 발행하는 신종자본증권까지 포함하면 두 달 사이 나타난 매수주문은 80조원에 육박했다.

회사채 시장의 열기가 한풀 꺾이는 추세는 시장 안팎에서도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자금조달을 이뤄뒀던 기업들이 올 초 앞다퉈 회사채 시장을 찾았고, 연기금과 보험회사 등도 어느 정도 연초 집행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최종금리 수준이 상향 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으면서 회사채 시장의 위축이 가속화되는 모양새다.

IB업계 관계자는 "연초 국고채 금리가 기준금리를 밑돌면서 회사채 강세로 이어졌는데, 최근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이 다시 불거지면서 국고채 금리가 급등했다"며 "이는 기관들의 입장에서 회사채를 사야 할 유인이 낮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장의 조기 '피봇(pivot·통화정책 방향 전환)' 기대감도 사실상 물건너 가면서 투심이 위축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발행시장은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통상 3월은 사업보고서 제출과 정기 주주총회 등으로 회사채 발행이 주춤하는 시기다. 자금조달을 모색하는 기업들은 이달 말에 수요예측 일정을 잡았다. E1을 필두로 신세계건설, 한일시멘트, OCI 등이 이달 말 수요예측을 거쳐 회사채 발행에 나설 예정이다. 신세계건설은 당초 지난달 발행을 검토했지만 건설채 투심이 비우호적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기업어음(CP)으로 단기자금을 조달, 회사채 발행 계획은 미뤄둔 상태다.

관건은 다시 회사채 발행이 재개될 시점의 시장 분위기다. 조기 피봇 가능성이 사라지고 긴축 기조가 장기화된다면 연초와 같은 회사채 시장의 강세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이 살아나면서 크레딧 시장의 강세 기조가 지속될지 여부에 대한 의구심이 크다"며 "이달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와 내달 우리나라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통화정책의 불확실성 해소 여부가 하반기 크레딧 스프레드의 추가 강세에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