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세연 기자] 그간 자녀 승계를 염두에 두고 발판을 마련해온 서울반도체는 현재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현재 장남과 장녀 모두 서울반도체의 본업인 광반도체와 거리가 먼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023년에는 이들을 이사진에 합류시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지만 남겨놓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확립한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에 따르면 서울반도체는 창업자 이정훈(72) 대표가 지분 13.59%를, 장남 이민호(45)·장녀 이민규(39) 씨가 각각 7.47%씩을 보유하고 있다. 이 외 대부분(67.56%)의 지분은 소액주주들이 보유하고 있으며, 오너 일가 3인을 제외하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주주는 없다. 오너 일가가 그룹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으며 확실한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1992년부터 약 33년간 경영 일선에 나서고 있는 이정훈 대표도 이제는 후계 승계를 고민해야 할 시점에 접어들었다. 현재로서는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주기보다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자녀들의 지분율에 별다른 변동이 없고, 경영 수업에도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이정훈 대표는 2002년 서울반도체가 코스닥에 상장될 당시 이민호·이민규 씨에게 주식을 증여해 주요 주주 명단에 올렸다. 당시 두 사람의 지분은 각각 2.60%에 불과했으며, 이정훈 대표의 지분은 48.11%에 달했다. 이렇게 미미했던 지분은 지난 2010년 8.80%로 급격히 늘어났다. 같은 시점 이정훈 대표의 지분이 18.93%였던 점을 고려하면 상당 부분 격차를 좁힌 셈이다.
동시에 반도체칩 제조 자회사인 서울바이오시스(옛 서울옵토디바이스)에도 자녀들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지분을 높이고 일감을 몰아주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2006년 약 8~9%대에 불과했던 두 자녀의 지분은 이듬해 이정훈 대표가 지분 전량을 팔고 나가면서 15~16%대로 상승한 바 있다. 당시 서울바이오시스의 서울반도체 관련 매출은 80%를 넘어서는 등 높은 내부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동시에 증여세로 사용할 수 있는 배당도 상당한 규모로 발생해왔다.
장남과 장녀에게 항상 비슷한 수준의 지분이 배분됐으나, 승계는 사실상 이민호 씨에게 향하는 분위기였다. 이민호 씨는 해외에서 학위를 취득한 뒤 2009년 서울반도체 재무회계 부서에 대리로 입사해 자금 업무를 맡으며 경영 수업을 시작했다. 당시 이정훈 대표가 "회사 경영 전반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면 자금 업무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해당 부서에서 실무를 익히도록 했다는 전언이다. 차녀 이민규 씨는 현재 소믈리에로 활동하고 있어, 서울반도체의 주력 사업인 광반도체와 많이 다른 길을 걸어온 것으로 보인다.
서울반도체 내부 관계자는 "이민호 씨는 서울 반도체 본사 전략실, 해외 영업부 등을 오가며 근무하고 있었다"며 "장녀 이민규 씨는 회사에서 전혀 모습을 볼 수 없어, 사실상 장남이 승계를 받는 것이 유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이민호 씨는 조용하고 차분한 스타일로,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성실히 경영 수업을 받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승계 가능성이 점쳐졌던 서울반도체는 현재 2세 경영 승계를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고수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최종적으로 이정훈 대표가 경영 승계를 이어갈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 승계를 중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민호 대표 또한 근무 10년도 채 되지 않아 회사를 떠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다 이민호 씨는 2022년 서울반도체가 설립한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서울경영파트너스'에 심사역으로 합류했으나, 대내외적인 불확실성과 기타 상황적인 어려움으로 펀드 결성과 딜 소싱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단 한 건의 투자도 집행하지 못한 채 창업투자회사 라이선스를 반납하며 사업이 무산됐다. 현재 이민호 씨는 화장품 도소매업체 이소피카 대표, 상품 도소매업체 세렌디인터내셔널 COO를 겸임하고 있다.
현재 서울반도체는 경영 체제를 재정비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김홍민 조명사업부 영업본부장을 대표이사로 영입해 각자대표 체제로 전환했다. 지난해 이정훈·홍명기 각자대표 체제에서 이정훈 단독 대표 체제로 전환된 지 1년 만에 이뤄진 변화다. 영업 부문은 김홍민 대표에게 맡기고, 이정훈 대표 본인은 기술 개발에 더욱 힘을 싣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동시에 서울바이오시스는 이정훈·강지훈 각자대표 체제에서 이정훈·이영주 각자대표 체제로 정비를 마쳤다.
일각에서는 경영 승계도 '가능성은 열어놓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서울반도체는 지난 2023년 이민호·이민규 씨를 돌연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한 데 이어, 지난달 임기가 끝난 후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두 사람을 재선임했다. 기타비상무이사는 여러 결격조건이 있는 사외이사와 달리 자격 제한이 없어, 이사진에 포함시킴으로써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것으로 해석된다.
서울반도체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겠다는 기조이나 아직 확정된 사항이 없어 답변드리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편 딜사이트는 이날 오후 장남 이민호씨와 연락이 닿았으나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