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한솔그룹이 계열사 한솔PNS(한솔피엔에스)를 자발적 상장폐지하기로 결정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통상 상장폐지는 대주주인 사모펀드(PEF)가 수월하게 엑시트(투자금 회수)하거나 외부로 경영권을 통매각하기 위해 진행되는 터라,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대다수다.
하지만 한솔피엔에스 상장폐지는 오히려 소액주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결정된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 회사 사업부문이 지류유통과 IT 서비스로 완전히 상반되는 만큼 구조적인 성장 한계가 존재하는 데다, 이르면 2027년께 '강제 상장폐지'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 한솔홀딩스, 공개매수 후 비상장사化…총 212억원 투입 예정
3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한솔그룹 지주사인 한솔홀딩스는 자회사 한솔피엔에스의 주식 1125만2677주(발행주식총수의 53.93%)를 공개매수한다. 현재 기준 한솔홀딩스는 한솔피엔에스 주식 944만335주(46.07%)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그 외 5% 이상 지분을 들고 있는 주주는 없다.
한솔홀딩스는 이날부터 내달 30일까지 공개매수를 진행하며, 공개매수 응모율과 무관하며 응모 주식 전부를 사들일 예정이다. 공개매수대금은 210억원이며, 매수 수수료와 기타 비용까지 고려하면 총 212억원 상당이 투입된다. 한솔피엔에스는 한솔홀딩스의 100% 자회사가 된 뒤 자진 상장폐지되는데, 1989년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 입성한지 36년 만에 비상장사가 된다.

주목할 부분은 공개매수 가격이다. 한솔홀딩스는 한솔피엔에스의 공개매수를 발표하기 전날인 28일 종가 1199원 기준 58.47%의 할증(프리미엄)이 붙은 1900원으로 산정했다. 최근 1·2·3개월 가중산술평균 주가로 따져보더라도 최소 55.09%, 최대 58.26%의 할증이 반영됐다.
한솔홀딩스가 제시한 공개매수 가격은 최근 사례와 비교해도 매우 높은 프리미엄이 반영됐다. 실제로 2022년 1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상장폐지 목적으로 공개매수를 진행한 15개사를 기준으로 전 영업일 종가 대비 평균 할증률은 15.08%였으며 ▲1개월 평균 대비 25.05% ▲2개월 평균 대비 28.63% ▲3개월 평균 대비 29.41%로 나타났다.
◆ 자진 상폐, 배당 독식·매각·외부 간섭 최소화 등 '부정적 목적'
국내 증시에서 자진 상장폐지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이라고 볼 수 없다. 대주주가 배당 수익을 소액주주와 나누지 않고 독식하거나, 경영권 매각을 염두에 두고 가격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상폐를 단행한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소액주주의 간섭을 최소화할 뿐 아니라 각종 비용을 아끼고, 의무 공시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스스로 상장을 취소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햄버거 프랜차이즈 업체인 맘스터치앤컴퍼니(맘스터치)는 2022년 공개매수를 거쳐 비상장사가 됐다. 외형과 내실 동반 성장을 일구던 맘스터치가 갑작스럽게 상장폐지한 이유로는 가맹점주들과의 갈등이 꼽힌다. 특히 최대주주인 사모펀드 케이엘앤파트너스는 상장폐지가 완료된 2023년 중간 배당으로 총 725억원을 챙겼다. 상장폐지 전 마지막 배당을 실시한 2020년 수령한 18억원(주당 30원)과 비교할 때 40배 넘게 늘어난 금액이다.
종합생활용품 락앤락은 지난해 12월 상장폐지됐다. 락앤락은 2017년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어피니티)로 인수됐으나, 장기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에 시달렸다. 시장에서는 어피니티가 락앤락을 상장폐지해 주가가 아닌, 기업가치로 재매각에 나서려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전체 지분을 통째로 매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영권 프리미엄에도 유리할 것으로 관측된다.
SK네트웍스가 SK렌터카를 자진 상장폐지 시킨 주된 배경에는 경영권 매각이 있다. SK네트웍스는 지난해 8월 SK렌터카 지분 전량을 8200억원에 어피니티로 넘겼다. SK네트웍스가 산정한 SK렌터카 주식 공개매수 가격(1만3500원)으로 단순 추산한 결과 약 31%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인정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문제는 자진 상장폐지가 일반주주의 권리를 침해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공개매수 가격이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거나, 장기 투자자의 경우 주가 하락에 따른 손실을 만회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매각·배당 무관…현 상태라면 강제 상폐, 선제적 주주 보호 차원
한솔피엔에스의 상장폐지는 일반적인 경우와는 결이 다르다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한솔홀딩스가 한솔피엔에스를 외부로 매각할 가능성이 전무한 데다, 배당 수익을 탐낸다고 보기에도 다소 무리가 있어서다.
먼저 한솔피엔에스는 전체 매출의 78% 가량을 지류유통 부문에서 창출 중이며, 나머지 22%는 IT서비스 부문에서 나온다. 한솔그룹이 그룹 모태인 한솔제지를 주축으로 하는 만큼 지류유통 부문의 상징성과 중요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룹사 거래 비중도 상당하다. 지난해 말 기준 한솔피엔에스는 원재료의 64.4% 가량인 1793억원을 한솔제지에서 매입했다. 더군다나 한솔피엔에스의 경우 그룹사 IT 사업을 전담하는 '그룹 전산실'이라는 점에서 매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솔피엔에스가 이질적인 사업부문을 한 회사에서 운영하고 있다는 점도 집고 넘어갈 부분이다. IT사업의 경우 안정적인 이익을 내고 있지만, 고객사 확대가 쉽지 않다. 또 지류유통의 경우 산업 성숙기에 진입하면서 이익률을 높이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기업가치를 제고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한솔피엔에스가 고배당에 나설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도 않다. 사업 특성상 영업이익률이 1%대에 불과해서다. 실제 이 회사는 지난해 말 연결기준 매출 3136억원과 영업이익 33억원, 순이익 23억원을 기록했다. 현금 곳간을 유추할 수 있는 현금성자산(기타유동금융자산)과 미처분이익잉여금은 각각 195억원, 193억원으로 나타났다.
한솔피엔에스의 상장폐지는 현 주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당국은 저성과 기업을 퇴출하기 위해 시가총액 요건을 강화했다. 세부적으로 2027년 300억원 미달, 2028년 500억원 미달일 때 증시에서 퇴출된다. 전날(28일) 종가 기준 한솔피엔에스의 시가총액이 246억원인 만큼 상장폐지 대상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이에 한솔그룹 차원에서 한 발 앞서 주주가치 보호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이와 관련, 한솔그룹 관계자는 "이번 공개매수는 경영활동의 효율성과 신속한 의사결정 체계를 확보하고, 사업구조 재편 등을 통한 기업 가치의 실질적인 개선 등을 위해 실행한다"며 "한편으로는 상장폐지라는 위험이 상존하는 만큼 주주가치의 선제적인 보호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