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세연 기자] ASML의 차세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인 '하이-NA EUV'가 최근 수율 개선을 보이면서 주요 반도체 기업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10나노급 6세대(1c) D램의 수율 문제로 양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삼성전자가 하이-NA를 활용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현재 파운드리에서 시범 운용 중인 하이-NA의 성능이 기대에 부응할 경우, 이르면 1d D램 공정에 도입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하이-NA의 수율이 향상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주요 기업들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연구기관 아이멕(Imec)은 지난달 하이-NA EUV 리소그래피 스캐너를 이용해 패터닝한 20nm 간격의 금속 배선에 전기 테스트를 시연, 90%가 넘는 수율을 입증했다. 하이-NA 리소그래피 스캐너와 그 주변 기술이 작은 차원의 선과 공간을 패터닝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보여줬다는 설명이다. 현재 하이-NA 제품인 'EXE:5000'은 인텔이 두 대, 삼성전자와 TSMC가 각각 한 대를 구매해 시범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NA는 높은 빛 집광 능력을 바탕으로 2나노미터(1nm=10억분의1m) 이하의 초미세 공정을 구현하는 데 필수적인 장비로 여겨진다. NA는 렌즈 개구수를 의미하며, 기존 로우-NA EUV 장비의 0.33에서 0.55로 확대한 점이 특징이다. NA를 확장한 만큼 보다 미세한 회로를 웨이퍼에 새길 수 있고, 칩이 고도화되면서 증가하는 스텝 수를 줄이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존 EUV 장비가 2~3번에 걸쳐 수행해야 했던 작업을 하이-NA는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가격이다. 삼성전자가 기존에 사용하던 로우-NA는 약 3000억원대인 반면, 하이-NA는 그보다 훨씬 높은 5000억원 이상으로 책정된다. 반도체는 시간당 웨이퍼 생산량을 늘리는 것뿐 아니라 고정비를 줄이는 것도 중요한 만큼 가격을 간과할 수 없다. 또 하이-NA는 소스 파워가 기존 250와트에서 1000와트까지 증가할 수 있어, 이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소재와 부품단에서 큰 변화가 필요하다. 마스크부터 시작해 펠리클, 감광액 등 여러 요소의 내구성과 내열성을 개선해 EUV를 뒷받침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비용 부담이 늘어난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해도 가격 대비 생산 능력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주요 기업들이 하이-NA를 한두 대씩은 도입한 상태지만, 이를 본격적으로 채택하기에는 리스크가 커 신중하게 접근하는 모습"이라며 "삼성전자도 기존에 보유한 유휴 장비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하이-NA가 긍정적인 성과를 보이면서 주요 기업들의 관심이 다시금 커지게 됐다는 분석이다.
이에 현재 1c D램에서 수율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삼성전자에 하이-NA가 새로운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10나노급 D램 공정 기술은 1x(1세대)부터 시작해 1y(2세대), 1z(3세대), 1a(4세대), 1b(5세대), 1c(6세대) 순으로 발전해 왔다. 각 세대를 거듭할수록 선폭이 더욱 미세해져 성능과 전력 소비 효율이 개선된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1x에서 시작된 문제가 1a로 넘어가면서 크게 악화됐고, 이 1a를 바탕으로 한 1b와 1c 역시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결국 설계 변경에 착수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차기 라인업인 10나노급 7세대(1d) D램에서 하이-NA를 선제적으로 적용할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기술 격차를 좁히려는 의지가 강한 만큼, 현재 파운드리에서 시범 운용 중인 하이-NA의 성능이 기대에 부응할 경우 이르면 1d D램에서 도입될 가능성도 있다"며 "아직 1c도 채 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라 이르긴 하나, 원래도 1d에서 도입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이-NA를 가장 먼저 상용화하는 건 삼성전자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현재 퀀텀점프가 절실한 상황이라 하이-NA를 모험적으로 도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는 올해 HBM 생산 물량을 모두 소진했고, 내년 물량 역시 매진을 앞두고 있어 하루빨리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 시점에 있다. 만약 삼성전자가 1d에서 하이-NA를 도입하지 않기로 결정하면, 파운드리 2나노 이하 공정에만 적용될 가능성이 높고 D램은 1d 이후로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기존에 사용해온 로우-NA인 NXE:3800을 D램 양산에 계속 활용하게 될 전망이다.
삼성증권은 지난달 리포트를 통해 "1d D램의 선행 개발이 진행 중인 만큼, 하이-NA가 1d에는 활용될 가능성이 있으나, 그 활용성이 극대화되려면 소재·부품 단의 업그레이드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며 "이 혁신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공급업계도 섣불리 하이-NA를 1d에 적용하긴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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