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노연경 기자] 홈플러스 사태를 둘러싼 여러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홈플러스가 신용등급 강등을 미리 인지했는지 이를 토대로 기업회생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단기채권을 발행했는지 등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먼저 첫 번째 쟁점은 홈플러스가 신용등급 하락을 예상했는지 여부다. 홈플러스는 지난달 25일 한국기업평가로부터 신용등급이 하락할 수 있다는 예비 평정 결과를 받았다. 같은 날 오후 홈플러스는 신영증권과 820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를 발행했다. 이후 27일 최종 신용등급 하락 통보를 받았고 이튿날 관련 내용이 공시됐다.
ABSTB는 홈플러스가 물품 결제를 위해 사용한 기업용 신용카드를 기반으로 발행하는 단기채권이다. 홈플러스가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카드사들은 매출채권(카드 대금)을 증권사에 매각하고 증권사는 이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또 다른 채권인 유동화증권을 발행한다.
홈플러스가 신용등급이 하락할 것을 예상하고도 채권을 발행했다면 이는 법적처벌 대상은 아니지만 도덕적 해이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시중에 발행·유통된 기업어음(CP)·전자단기사채(전단채)·카드대금 기초 유동화증권(ABSTB·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 등 홈플러스 단기채권 판매잔액은 이달 3일 기준 5949억원에 달한다. 이 중 개인투자자에 팔린 채권은 2075억원에 이르며 중소기업 등 일반법인에 유입된 채권은 3327억원이다.
자본시장에서는 채권의 발행과 유통은 신영증권이 하지만 홈플러스가 신용등급이 하락할 것을 예견했다면 채권 발행 자체를 진행하지 않아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영증권은 이달 18일 국회에서 열린 홈플러스 사태 관련 현안질의에서 "우리도 피해자"라며 홈플러스가 신용등급이 떨어질 수 있다는 내용을 전혀 공유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쟁점은 홈플러스가 회생신청을 염두하고 금융채권을 발행했느냐다. 홈플러스가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하면서 금융채권은 사실상 휴지조각이 됐는데 여기에 투자한 투자자 대부분은 대형 기관이 아닌 개인이다. 회생절차에 돌입하면 개인 투자자들은 기관보다 후순위로 밀려 본전도 찾기 어려워진다.
홈플러스는 신용등급 하향 공시가 되고 약 4일 만인 이달 4일 새벽 기습적으로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신용평가 등급이 공시되고 난 직후 3월1일부터 3일은 주말과 공휴일이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현안질의에서 절대적으로 서류를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을텐데 채권 발행 결정시점부터 기업회생을 준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홈플러스가 회생신청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채권을 발행했다면 이는 도덕적 지탄을 넘어 형사처벌 대상이다. 돈을 갚을 능력이나 의지 없이 빌리는 것 자체가 사기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결국 홈플러스가 언제부터 기업회생을 준비했는지가 주요 쟁점이 될 수 밖에 없다. 이에 국회는 현안질의에 앞서 홈플러스에 회생 신청에 관여한 법률대리인을 언제부터 선임했는지 변호사 선임계약서 등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지만 홈플러스는 제출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금융감독원 조사를 통해 밝혀질 전망이다. 금감원은 당초 채권 발행·유통 주체인 신영증권과 신용평가사를 조사했다. 이번 쟁점의 핵심인 홈플러스와 최대주주 MBK파트너스까지는 조사 범위가 미치지 못했다. 국회 현안 질의에서 금융당국의 역할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자 금감원은 관례를 깨고 특정 사건으로 사모펀드를 조사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달 19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홈플러스 사태 의혹들을 확인하기 위해 핵심당사자인 MBK에 대해 금융투자검사국이 검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별도의 팀을 꾸려 홈플러스 관련 MBK 검사를 대대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검사 범위는 ▲MBK의 홈플러스 신용등급 하락 인지 시점 ▲홈플러스 회생신청 계획 시기 ▲전자단기사채 발행 판매 과정에서의 부정거래 의혹 ▲상환전환우선주(RCPS) 상환권 양도 과정에서 국민연금 등 투자자(LP)의 이익 침해 여부 등이다.
국회도 청문회를 열지 고민하고 있다. 피감기관이 참석해 사안에 대해 보고하는 현안 질의와 달리 청문회가 열리면 당사자를 증인과 참고인 등으로 불러 직접 따져 물을 수 있다. 정무위는 여야 간사간 합의는 이미 된 상태지만 사채 출연을 약속한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어떤 자구책을 내놓을지 답변을 들어본 뒤 청문회 개최 여부를 정한다는 입장이다.
홈플러스는 각종 의혹에 휘말리고 있지만 줄곧 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신용등급 하락은 예상하지 못했고 회생신청은 갑작스러운 신용등급 하락 이후 급하게 준비했다는 입장이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은 국회 현안질의 당시 "공식적으로 (회생 신청을) 결정한 이사회 결의는 3월 3일"이라며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게 확정된 다음 2월28일과 3월1일은 내부 검토를 좀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전에는 미리 준비한 게 없었고 3월1일 오후에 임원들끼리는 더 이상 방법이 없겠다고 생각하고 그때부터 준비를 본격적으로 했다"며 "(빠르게 서류를 준비할 수 있었던 건) 이 분야 전문가 변호사가 다른 기업이 사용했던 샘플을 제공해줘서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신용등급 하락과 관련해서는 "2024년 2월 예비 평정 대비 2025년 2월 평정에서는 (신평사에서 등급 하향 이유로 제시한) 세가지 사유가 전부 다 개선됐다"며 각종 경영지표가 개선되고 있던 중이기 때문에 예상치 못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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