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김주연 기자] '위기에 강하고 역전에 능하며 독한 삼성인'
최근 삼성 전 계열사 임원을 대상으로 진행된 세미나에서 수여된 크리스털 패에 새겨진 문구다. 개인부터 '독한 삼성인'이 될 것을 주문하며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의지가 드러나는 메시지다.
이 회장은 수년 동안 이어진 사법 리스크를 의식해 적극적인 경영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그러나 삼성이 처한 위기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하자 "독한 삼성인", "사즉생(死卽生)" 등 직접적인 단어를 통해 고강도 쇄신에 대한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 17일 삼성 전 계열사 임원 2000명을 대상으로 이달 말까지 진행되는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에서 이러 메시지를 전달했다. 해당 메시지는 영상 형식으로 발표됐으며 영상에서 이 회장이 직접 등장하진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고(故) 이병철 창업 회장과 고 이건희 선대 회장의 메시지도 포함됐다.
이 회장은 이날 "삼성은 '죽느냐 사느냐'의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며 "21세기를 주도하며 영원할 것 같았던 1999년 다우지수를 구성한 30개 기업 중 24곳이 이미 사라졌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우리도 잊힐 것"이라고 했다.
이어 "삼성전자는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라며 질문하며 "과감한 혁신이나 새로운 도전을 찾아볼 수 없고 판을 바꾸려는 노력보다는 현상 유지에 급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위기 돌파를 위해 "중요한 것은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다. 당장의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며 "'사즉생'의 각오로 과감하게 행동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 셋째도 기술"이라며 삼성의 '초격차' 기술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훌륭한 특급 인재를 국적과 성별을 불문하고 양성하고 모셔 와야 한다"고 주문하며 외부 인재 영입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까지 내부 인재 육성에 집중했던 전략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다.
경영진의 자세와 태도에 대해서도 개선을 요구했다. 이 회장은 "적어도 1년에 절반 이상 고객과 시장을 찾아가라"며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문제가 무엇인지 철저히 파헤치고 답을 찾으라"고 주문했다. 인사 원칙에서도 "필요하면 인사도 수시로 해야 한다"며 "성과는 확실히 보상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신상필벌이 우리의 오랜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외부에서 바라본 삼성의 위기 등을 주제로 한 강연이 이어지며 위기 의식을 고조하기도 했다. 참석한 임원들에게는 '위기에 강하고 역전에 능하며 승부에 독한 삼성인'이라고 새겨진 크리스털 패가 주어졌다. 업계에 따르면 이번 세미나는 다소 무거운 분위기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사법리스크로 몸을 사리고 있는 이 회장이 위기를 언급하며 내부적으로 쇄신을 요구한 발언이 대외로 공개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이 회장은 지난 11월 진행된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의혹'의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최후 진술을 통해 "최근 삼성이 마주한 현실은 어느 때보다 녹록지 않다"며 "그러나 어려운 상황을 반드시 극복하고 한발 더 나아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업계에서는 이 회장의 이번 메시지가 제2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처럼 삼성 위기 극복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보라"로 대변되는 고 이건희 선대 회장의 프랑크프루트 선언은 삼성전자 체질 개선의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삼성전자는 불량이 발생할 경우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하는 '라인 스톱제', 휴대품 불량률 근절을 위한 '애니콜 화형식' 등 질 경영에 주력해 초격차를 이룰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의 '독한 삼성'이 제2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되려면 구체적인 행동과 방향성 지시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이 회장의 메시지는 다소 형이상학적이다. 게다가 직접 임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다"며 "메시지가 현실화되려면 앞으로의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공장 라인, 반도체 담당자 등을 직접 만나며 현장에 등장해야 한다. 또한 인재들이 떠나는 상황에서 조직원들과의 직접 소통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한편 삼성인력개발원이 주관하는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 세미나는 경기 용인에 위치한 삼성인력개발원 호암원에서 다음 달 말까지 열린다. 삼성이 전 계열사 임원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개최하는 건 2016년 이후 9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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