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 HD현대·한화 美 전략 '갈림길' 됐다
M&A 이어가는 한화…'우회·점진 침투' HD현대
이 기사는 2024년 06월 25일 14시 39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필리 조선소 전경 (제공=한화그룹)


[딜사이트 박민규 기자] 한화의 필리조선소 인수에 따라 HD현대중공업이 해당 조선소와 체결했던 업무 협약(MOU)은 무산될 전망이다. 이에 HD현대는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현지의 다른 조선소와 접촉하는 대신, 기술 협력 등을 통해 점진적이고 우회적으로 시장에 침투하는 기존 전략을 굳히기로 했다. 반면 한화오션은 사업 확장을 위해 필리조선소 외 미국 내 다른 조선소 인수도 검토 중이다. 이에 미국 함정 시장을 정조준 하고 있는 양사의 전략이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오션이 2대 주주인 한화시스템과 함께 지난 21일 미국 필리조선소의 지분 100%를 인수하는 내용의 주주 매매계약(SPA)을 맺었다. 한화오션은 오는 11월까지 552억원을 출자해 지분 40%를, 한화시스템은 884억여 원으로 지분 60%을 취득할 예정이다. 인수가는 총 1436억원으로, SPA 전일 종가로 계산한 것보다 약 135% 비싼 수준이다.


한화는 이번 계약을 통해 미국 함정 건조 및 MRO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된 만큼 환호했지만, HD현대중공업에선 유일한 현지 협력사가 경쟁사에 넘어가며 조금은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앞서 HD현대중공업은 지난 4월 미국에서 함정과 관공선의 건조, 유지 보수(MRO)를 수행하는 필리조선소와 설계 및 자재 공급에 협력하는 MOU를 맺었다. 다른 현지 조선소와는 협력 관계를 모색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주목할 점은 HD현대중공업 MOU의 이행가능성에 대한 한화와 HD현대의 온도차다. 한화오션은 여지를 남기고 있는 반면, HD현대중공업은 사실상 단념한 모습이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HD현대중공업 MOU 경우 법적 구속력이 있거나 배타적인 계약은 아니지만, 필리조선소 인수 후 필요시 협력할 방침"이라며 "구체적인 협력 분야에 대해선 내부적으로 논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HD현대 관계자들은 "현실적으로 (필리조선소와) 협력 관계를 지속하기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도 HD현대중공업 MOU는 이어지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 중이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국내외에서 수주전을 펼치고 있는 오래된 라이벌이기도 하지만, 최근 소송전까지 벌어진 등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은 상황이라는 이유에서다.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에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개념 설계 보고서 유출의 책임을 묻기 위해 올해 3월 경찰청에 고발했다.


이런 가운데 HD현대중공업은 MOU가 무산돼도 타격이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미국 군함 시장 공략의 핵심은 어차피 '직접 진출'이 아니란 이유에서다. 이 회사는 현재 한화오션과 대조적으로 기술 협력 등을 통한 점진적 시장 진출을 꾀하고 있다. 전 세계를 돌고 있는 미국 함정이 어디에서든 MRO가 가능하도록 대륙별 거점을 구축하는 이른바 '환태평양 벨트' 전략이 대표적이다. 미국 조선소 인수는 사실상 불가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다른 미국 조선소와 파트너십을 모색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선을 긋고 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미국 경우 조선업 생태계가 붕괴된 상황으로, 인수가가 1억달러에 불과한 작은 조선소(필리조선소)가 그나마 괜찮은 수준일 정도"라며 "필리조선소도 연간 건조량이 1~2척에 그치는 등 사실상 문 닫은 상태인 점을 고려하면 (현지 조선소와 협력 관계를 맺을)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 해군의 편리성과 니즈에 맞출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찾을 방침"이라고 부연했다. 


그럼에도 업계에선 HD현대중공업이 미국 조선소와 협력을 모색했던 만큼 아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필리조선소 경우 현재 자본잠식 등 재무 상황이 안 좋긴 해도, 향후 미 조선 산업이 부활한다면 최대수혜자가 될 수 있는 등 잠재력이 클 것으로 내다봐서다.


강경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필리 조선소 경우 군함 신조 이력이 부족하지만 동부 연안에 위치한 해군 기지 3곳과 인접한 입지를 살려 군함 MRO를 꾸준하게 하고 있다"며 "HD현대미포처럼 중형(MR) 및 아프라막스급 탱커와 소형(Feeder) 컨테이너선 등 중소형 상선 건조에 최적화된 도크와 크레인 생산 능력 역시 갖췄다"고 평했다.


한편 한화 경우 또 다른 미국 조선소를 추가 인수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강경태 연구원은 "한화오션이 2차 증자를 통해 미국 투자 법인인 손자 회사(한화오션USA인터내셔널LLC)에 내리기로 결정한 돈은 약 3600억원으로, 필리 조선소 지분을 인수한 후에도 3000억원의 출자금이 남는다"며 "추가 인수 합병(M&A)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화는 필리 조선소와 별개로 호주 조선 및 방산 업체 오스탈 인수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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