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유범종 차장] 경영자의 어깨는 항상 무겁다. 특히 굴지의 기업이라 불릴 만한 규모를 책임지는 경영자라면 그 무게는 더 클 수 밖에 없다. 경영자의 판단이 자칫 시대의 요구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기업 근간이 흔들릴 수 있는 만큼 매 순간이 살얼음판이다.

경영자가 새로운 도전(사업)에 나선다면 지금이 아닌 10년 이상을 내다봐야 한다. 시대의 변화를 정확하게 읽어내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는 적절한 시점에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또한 이를 위한 과감한 투자도 수반되어야 한다.

국내 식품산업을 이끌어가는 기업 중 하나인 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의 고민도 여기서부터 출발했다. 동원그룹의 주력인 수산·유통사업은 최근 시장구조적인 한계와 맞닥뜨리며 점차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그룹의 모태 격인 동원F&B의 영업이익률은 수 년째 3%대에 잠겨있고 주력인 참치어획사업은 불확실한 외부환경 탓에 매출과 이익 변동이 심해 안정적인 수익구조 마련이 절실해졌다.

이에 김 부회장은 그룹의 지속성장을 위한 사업다각화를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지난해 11월 지주회사체제 전환으로 그룹 재정비를 마친 후 '제2의 창업'을 선포하고 사업간 융합과 투자를 통해 새로운 50년을 열어가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그는 첫 번째 투자로 바이오를 낙점했다. 그룹 지주회사인 동원산업은 이달 23일 보령바이오파마를 인수하기 위해 이 회사의 최대주주인 보령파트너스와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동원산업은 앞으로 단독으로 실사를 진행할 예정이며 그 결과에 따라 배타적 우선협상권을 부여 받게 된다.  

이번 인수가 최종적으로 성사되면 동원그룹의 첫 번째 바이오 계열사가 된다. 이는 1969년 창립 이래 54년 만의 바이오사업 진출이기도 하다. 동원이 보령바이오파마를 손에 넣을 경우 신규시장 진출뿐 아니라 기존 식품사업과 연계한 건강기능식품으로의 확장도 용이해질 것으로 판단된다. 정체된 식품산업의 빈자리를 채우겠다는 김 부회장의 전략이자 도전으로 읽힌다.   

보령바이오파마는 국가예방접종백신(NIP) 등 주로 백신사업을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 특히 일본뇌염 백신(2014년)과 영유아 4가 혼합백신(2020년), A형간염 백신(2021년) 등 백신의 첫 국산화에 수 차례 성공한 기업이다. 동원이 이 회사를 품에 안게 되면 풍부한 현금유동성을 바탕으로 백신 국산화를 위한 연구개발 등 광폭 지원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동원그룹의 기존 식품사업과 시너지를 내기 위해 건강기능식품 개발에도 속도를 낼 수 있을 전망이다. 최근 CJ제일제당과 롯데칠성, 오리온 등 동종 식품기업들은 건강기능식품을 미래성장동력으로 삼고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동원그룹도 보령바이오파마를 인수하면 건강기능식품시장에 본격적으로 도전장을 낼 수 있다.

동원이 바이오 진출을 자체 투자가 아닌 기업 인수로 가닥을 잡은 건 그간 인수합병 전략으로 사세를 키워온 내부 DNA(유전자)를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동원그룹은 수산-식품-포장재-유통·물류 등의 수직계열화 된 주축사업을 중심으로 연관된 기업 인수를 추진하며 성장과 혁신을 만들어온 대표적 기업집단이다.

김 부회장은 2013년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 10년 동안 테크팩솔루션과 금천, 동부익스프레스 등의 인수를 성공시키며 그룹가치를 끌어올렸다. 실제 인수한 기업들은 현재 그룹 내에서 든든한 효자역할을 하는 회사들로 자리매김했다. 동원그룹이 새로운 도약을 약속한 만큼 김 부회장의 바이오 진출 선택이 긍정적인 체질개선을 불러올 수 있을지 사뭇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