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대한항공이 이사회 규모는 줄이고 이사 보수한도는 곱절로 증액한다. 시장에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현금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조 회장은 내년까지 약 100억원 규모의 상속세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급여를 반납해 온 만큼 자금 부담이 적잖다는 이유에서다.

대한항공은 내달 22일 제61기 정기주주총회를 열어 이사 선임과 이사 보수한도 승인 등의 안건을 다룰 계획이다. 특히 이번 주주총회에서는 이사회 정원과 보수한도 등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대한항공 이사회는 총 12명(사내이사 3명, 사외이사 9명)으로 내달 임기가 만료되는 이사는 5명(사내이사 2명, 사외이사 3명)이다. 하지만 이사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4명 뿐이다. 사내이사는 우기홍 대표이사 사장의 재선임과 유종석 부사장의 신규 선임이 다뤄진다. 사외이사는 정갑영 연세대 명예교수와 박현주 뉴욕멜론은행 한국대표의 재선임안이 오른다. 계획대로 이들의 선임안이 통과된다면 이사회 규모는 종전보다 1명이 줄어든 11명으로 구성된다. 

대한항공은 아울러 이사회 구성원 축소에도 총 보수한도는 90억원으로 오히려 상향 조정한다. 2011년 이후 꾸준히 유지해온 50억원 한도를 12년 만에 80%나 끌어올리는 것이다. 지난해 기준 12명의 사내·사외이사는 총 40억5000만원을 지급받았다. 1인당 평균 3억3750만원씩 받은 꼴이다. 이번 주주총회에서 한도 증액 건이 승인된다면 1인당 약 8억20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조 회장을 비롯한 사내이사들이 수령할 보수 규모는 이보다 클 것으로 예상된다. 매년 사외이사에게 배정된 보수 총액이 5억원 안팎음을 감안하면 나머지 증액분은 조 회장과 우 사장, 이 부사장이 나눠가지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재계에선 대한한공이 이사 보수를 대폭 늘리는 것이 조 회장의 유동성 확보와 무관치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 회장은 2019년 10월 고(故) 조양호 선대회장 별세에 따라 2700억원 규모의 상속세를 국세청에 신고했다. 조 회장 일가는 상속세 일시납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2024년 10월까지 여섯 번에 나눠서 내는 연부연납 제도를 신청했다. 이 중 조 회장은 올해 10월과 내년 10월 두 차례에 걸쳐 약 100억원 가량을 납부해야 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조 회장의 현금창출력은 좋지 않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 대한 고통분담 차원으로 2020년부터 기존 대한항공 월급의 절반만 받고 있다. 실제 지난해 조 회장은 한진칼 17억원, 대한항공 17억원을 각각 급여로 수령했다. 계열사 배당 수익에도 기댈 수 없는 상태다. 같은 기간 조 회장이 주식을 보유한 계열사 중 총 3곳만 배당을 실시했고, 배당금 총액은 2억여원에 그쳤다. 그나마 올해 대한항공과 한진칼이 배당을 재개했지만 규모는 크지 않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과 한진칼에서 각각 2300만원, 6억6000만원을 수령한다.

항공업황이 가파른 회복세에 접어든 점은 보수한도 확대에 대한 부담을 낮춘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56.3%, 99.6% 증가한 14조967억원, 2조8307억원을 달성했다. 화물사업이 안정적인 실적을 잡아준 가운데 여객 수요가 급증한 영향이다. 특히 엔데믹에 접어들면서 해외여행 수요는 더욱 빠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순환휴직에 돌입했던 대한항공 직원들도 모두 복귀했다.

대한항공 한 관계자는 "이사 보수한도가 10년 이상 동결돼 왔고 비슷한 규모의 상장사 대비 보수가 2배 이상 적어 인상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