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진철 부국장] 기업들의 3월 정기주총 시즌을 앞두고 '주주 행동주의'가 주식시장에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가 자신들이 투자한 기업을 상대로 배당,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 확대를 요구하면서 긴장감이 감돈다. 나아가 일부 기업에 대해선 이사 선임 등 주주제안을 통해 경영에도 적극 개입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과거에는 소버린과 아이칸과 같은 외국계 헤지펀드가 경영진 교체, 자산매각, 배당확대 등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적극 내세우며 경영진과 일전을 벌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국내 기관투자가는 물론 소액주주들도 주주 행동주의를 내세우며 투자기업에 대해 의결권 행사 등 주주로서 권리행사에 적극적이다. 

실제로 얼라인파트너스는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한 금융지주사를 대상으로 주주환원을 늘리라는 공개서한을 발송하며 여론전을 펼쳤다. 2021년 설립된 얼라인은 '저평가돼 있는 회사에 투자를 하고 기업가치를 개선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을 표방하는 투자전문회사다. 금융당국으로부터 배당보다는 자본건전성을 우선 챙기라는 압박을 받던 금융지주사들은 얼라인의 요구를 기다렸다는 듯 예년보다 높은 수준의 주주환원책을 제시했다. 얼라인 측은 신한금융지주, KB금융지주, BNK금융지주가 발표한 주주환원책에 대해 "크게 환영한다"며 당초 계획한 주주제안은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화답했다. 행동주의 펀드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얼라인은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에 대한 주주행동주의로 지배구조 개선 약속을 이끌어낸 데 이어 최근 에스엠 창업주인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의 경영권 분쟁에도 적극 개입하며 위세를 떨치고 있다. 

오너십이 강한 우리 기업의 특성상 기관투자가들이 경영진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것은 이젠 옛말이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태광산업에 대해 독립적인 감사위원(사외이사) 선임과 배당성향 상향을 요구하며 내달 정기주총에서 일전을 예고했다. 트러스톤은 태광산업이 대주주만을 위한 경영형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오너를 직접 겨냥한 비판도 서슴치 않고 있다.

사실 주주권익을 내세워 기업을 공격해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는 펀드들을 보는 시각은 곱지 않다. 기업이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집중하지 못하고 경영권 방어에 몰두하는 부작용이 우려돼서다. 무엇보다 1% 남짓한 지분을 보유한 펀드가 주주제안 등을 통해 주가 상승을 유도한 뒤 주식을 팔아 차익을 실현하고 떠나는 '먹튀' 사례가 다반사다.

헤지펀드 활동이 활발한 미국은 주주들이 높은 주가만 형성된다면 누가 경영권을 갖던지 상관이 없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다. 경영권 분쟁이 벌어져 주가가 높아지는 것을 주주들이 긍정적으로 여기면서 헤지펀드의 주주행동주의 성공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헤지펀드의 주주자본주의가 득세했던 시기 미국 제조업은 내리막 길을 걷기도 했다.

주주행동주의 공격을 받는 기업은 지배구조나 경영투명성, 경영권 방어수단 등이 취약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에 현금을 곳간에 쌓아두면서도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에 인색해 공격의 명분을 주는 경우가 대다수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증시의 밸류에이션 디스카운트의 요인으로 인색한 주주환원을 꼽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국내 기업의 주주환원 확대 움직임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주총 시즌만 되면 단순한 이익실현만을 위해 기업을 공격하는 '먹튀 펀드'가 아닌 책임있는 장기투자 펀드들이 주주 행동주의를 주도해 구성원간 합의로 주주환원책을 마련해 나가는 것이 기업과 주주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