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강동원 기자]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증권사와 기업은 악어와 악어새 관계다. 기업은 IPO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증권사에 상장 업무를 맡기고, 증권사는 실적을 쌓기 위해 상장 도전 기업을 찾는다. 하지만 간혹 공생 관계는 기업→증권사의 수직적인 구조로 변화한다. 이때, 증권사는 기업 눈치에 무리수를 두고 이는 곧 시장질서가 교란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지난주 IPO 시장은 증권사의 무리수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하반기 기대주로 시선을 모은 골프존커머스와 라이온하트스튜디오(라이온하트)가 같은 날 철회신고서를 제출했다. 두 기업은 가파른 실적 성장세를 강조했으나 기업가치 고평가와 함께 쪼개기 상장 등 논란이 불거지며 온기 대신 찬바람을 넣었다.

한국투자증권의 무리수는 골프존커머스 IPO에서 드러났다. 한국투자증권은 골프존커머스의 공모가 희망밴드(1만200~1만2700원)를 산정하기 위해 최초 증권신고서에서 비교기업 3곳을 선정했다. 하지만 사업 연관성이 떨어지는 기업을 포함하며 몸값이 높게 책정됐다는 지적이 나오자 증권신고서를 정정하고 비교기업을 6곳으로 늘렸다.

비교기업 추가로 주당 평가가액에 소폭 변화가 생겼지만, 한국투자증권은 할인율을 조정(7.73~25.89%→5.53~24.12%)하는 방식으로 공모가를 유지했다. 그러자 시장에서는 '눈 가리고 아웅'에 그쳤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한국투자증권은 비교기업을 2곳으로 줄이는 대신 할인율을 변경하며 공모가를 고수했다. 이 모든 게 3일 만에(10월 5~7일) 벌어진 일이다.

한국투자증권의 분주한 움직임은 골프존커머스가 기관 수요예측에서 최소 모집가액도 채우지 못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공모가 희망밴드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 기관투자가들은 수요예측 참여조차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골프존커머스는 대형법인 특례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공모가를 최소 7560원 이상으로 확정해야 했다.

골프존커머스는 골프존·골프존데카 등을 거느린 골프존뉴딘그룹의 핵심 계열사다. 골프존뉴딘그룹은 기업가치가 1조~2조원 안팎으로 거론되는 골프존카운티의 상장도 추진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으로서는 일반 상장 주관업무와 비교해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부담감에서 시작된 무리수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지만 말이다.

증권사는 IPO 주관 과정에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투자자들이 받아들일 만한 공모가를 산출하는 것이다. 주가수익(PER), 주가순자산(PBR) 등 다양한 지표를 활용하고 할인율을 자유롭게 반영할 수 있는 점도 이 때문이다. 과연 기업 눈치 보기에 급급해 증권사 마음대로 할인율만 조정해서 공모가를 제시하는 것을 능력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한국투자증권은 IPO 시장에서 수년 간 주관실적 상위권을 유지한 강자다. 시장 한 축을 담당하며 수많은 딜을 성공시켰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보여준 아마추어적인 면모는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게다가 올해는 침수로 인한 전산오류와 허위 공매도로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 부디 부담감을 내려놓고 국내 대표 증권사의 이미지를 회복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