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현진 기자] '남자 아이돌에게 세계관은 필요한 것인가?'
최근 하나증권 리서치센터가 내놓은 엔터테인먼트 분석 보고서 제목이다. 처음에는 게임 관련 보고서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아이돌 그룹의 세계관이 팬덤 형성과 흥행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는 내용이었다. 이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기업 실적뿐 아니라 아이돌의 가상 세계까지 들여다봐야 하는 모양이다.
증권가의 이색 보고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24년에는 'N사(엔비디아) 업고 튀어'라는 제목이 등장했고, 현대글로비스의 실적 개선을 두고 '완전 럭키비키잔앙'이라는 표현까지 동원됐다. 인기 드라마와 인터넷 유행어에 밝지 않으면 보고서 제목부터 이해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점잖은 숫자의 세계였던 증권사 리서치센터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그 배경에는 치열해진 관심 경쟁이 있다. 같은 기업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들은 동일한 실적 발표와 공시를 바탕으로 저마다의 해석을 내놓는다. 투자자가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넘쳐나고, 인공지능(AI)은 방대한 자료를 순식간에 요약한다. 분석의 차별화는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독자의 관심을 붙잡아야 할 필요성은 커졌다.
보고서를 잘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진 셈이다. 이제는 잘 읽히게 만들어야 한다. 기발한 제목은 물론 웹툰과 영상까지 리서치의 무대가 넓어지는 이유다. 한때 기업가치를 평가하던 애널리스트들이 이제는 자신의 보고서가 가진 가치까지 증명해야 하는 처지다.
물론 이런 변화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려운 금융 정보를 쉽게 전달하고,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영역에서 새로운 투자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것도 애널리스트의 경쟁력이다. 아이돌 세계관 역시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수익 구조를 설명할 수 있다면 충분히 분석할 만한 주제다.
다만 재미있는 보고서와 가치 있는 보고서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제목은 클릭을 유도하지만 투자자의 신뢰까지 보장하지는 못한다. 눈길을 끄는 재치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남다른 분석과 설득력 있는 근거다.
아이돌의 세계관은 팬덤을 형성하고 확장하기 위한 장치다. 그렇다면 애널리스트들의 기발한 제목 경쟁도 어쩌면 자신만의 독자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일지 모른다.
남자 아이돌에게 세계관이 꼭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다만 요즘 증권가를 보면 세계관이 더 절실한 쪽은 아이돌보다 애널리스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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