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임초롱 기자] 금융당국이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 연임에 제동을 걸고 나선 가운데 차기 은행연합회장 후보로 9~10년간 금융회사를 이끈 전직 최고경영자(CEO)들이 거론되면서 인선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정부가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 재임을 견제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은행권 대표로 장기 재임 경력자가 선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정부의 지배구조 개편 기조와 대비되는 인선이 이뤄질지가 이번 회장 선출의 관전 포인트로 떠올랐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금융지주 회장이 세 번째 임기에 도전할 경우 주주총회에서 출석 주주 의결권의 75% 이상과 발행주식 총수의 절반 이상 찬성을 받도록 하는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당초 검토했던 3연임 금지나 최장 6년 임기 제한 대신 선임 절차의 의결요건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 재임에 대한 견제 장치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이 같은 정책 기조 속에서 차기 은행연합회장 후보로 거론되는 윤종규 전 KB금융 회장과 박종복 전 SC제일은행장의 장기 재임 이력이 주목받고 있다. 윤 전 회장은 2014년부터 2023년까지 9년간 KB금융을 이끌었고, 박 전 행장은 2015년부터 2025년까지 10년간 SC제일은행을 이끌었다.
특히 윤 전 회장은 금융당국이 이번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문턱을 높이려는 세 번째 임기까지 수행한 인물이다. 2014년 회장에 취임한 뒤 2017년과 2020년 두 차례 연임에 성공했다.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 집권을 견제하겠다는 정책 기조가 강화되는 시점에 과거 두 차례 연임에 성공한 전직 회장이 은행권 대표 후보로 거론되는 셈이다.
박 전 행장 역시 2015년 취임 이후 네 차례 연임하며 10년간 은행을 이끌었다.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은 지배구조와 선임 절차가 다르지만, 장기간 CEO 자리를 유지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두 후보 모두 오랜 경영 경험과 대외 네트워크를 갖췄지만, 장기 재임을 바라보는 금융당국의 시선이 달라진 만큼 과거 경력이 오히려 인선 과정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금융당국이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문턱을 높이려는 배경에는 장기 재임 과정에서 이사회와 주주의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회장의 경영성과뿐 아니라 연임을 결정하는 절차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 재임에 대한 견제 필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은행권 대표 후보로 장기 재임 경력자들이 거론되는 것은 정부의 정책 기조와 대비되는 대목이다.
은행연합회장은 금융당국과 은행권 사이에서 정책 현안을 조율하고 업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자리다. 차기 회장은 가계대출 관리와 금융사고·해킹 재발 방지, 생산적·포용금융 확대에 따른 은행권의 자본 부담 등 현안을 다뤄야 한다. 정부가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 연임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가운데 은행권이 장기 재임 경력자를 대표로 선출할 경우 인선의 적절성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질 여지도 있다.
차기 은행연합회장 인선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민간 출신과 관료 출신의 경쟁이다. 현재 하마평에는 윤 전 회장과 박 전 행장 외에도 윤종원 전 IBK기업은행장,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 등이 오르내리고 있다. 아직 공식 후보군이 추천된 것은 아니다.
은행연합회는 정부와 업권 간 가교 역할을 수행하는 특성상 관료 출신 회장이 다수를 차지해 왔다. 최근에는 민간 금융회사 CEO 출신이 회장에 오르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2014년 하영구 전 한국씨티은행장이 선임된 데 이어 2023년에는 조용병 전 신한금융 회장이 은행연합회장에 올랐다.
올해 새롭게 선출된 금융 관련 협회장들 역시 민간 출신이 강세를 보였다. 여신금융협회장에 이동철 전 KB금융 부회장이, 한국화재보험협회 이사장에 김기환 전 KB손해보험 대표가 각각 선임됐다. 이 같은 흐름이 차기 은행연합회장 인선에도 이어질지가 관심사다.
관료 출신 후보로 거론되는 윤종원 전 행장과 은 전 위원장은 행정고시 27회 동기다. 윤 전 행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으며 은 전 위원장은 금융위원장을 역임했다. 금융당국과의 정책 조율 경험을 갖췄다는 점에서 민간 출신 후보들과 차별화된다.
민간 출신 후보들이 은행 경영 경험과 업권에 대한 이해를 앞세운다면 관료 출신 후보들은 정책 조율 능력에서 강점을 갖는 구도다. 가계대출 관리와 생산적 금융 확대 등 정부의 정책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은행권의 이해관계까지 대변해야 하는 만큼 회추위가 경영 경험과 정책 조율 능력 중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가 인선의 향방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의 임기가 이달 말 만료되는 가운데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도 조만간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지난달 26일 정기 이사회 일정에 맞춰 회추위를 구성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사회를 서면으로 대체하면서 회추위 구성 일정도 다시 조율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사회 멤버인 행장들의 일정 조율이 빠듯해 이번주는 어려운 것으로 안다"며 "특히 임기가 만료되는 행장들의 일정 맞추기가 빠듯하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은행연합회 회추위는 조 회장과 11개 회원사 은행장 등 총 12명의 이사회 멤버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이환주 KB국민은행장·정상혁 신한은행장·이호성 하나은행장·정진완 우리은행장·강태영 NH농협은행장 등 5대 은행장을 비롯해 신학기 Sh수협은행장까지 6명이 연말연초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차기 은행연합회장을 선출하는 회추위 위원 상당수가 자신의 연임 여부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직전 인선인 2023년에는 10월 말 회추위가 구성된 뒤 같은 해 11월10일 잠정 후보군 6명이 공식 추천됐다. 이후 같은 달 16일 조 회장이 최종 후보로 추천돼 사원총회에서 선임됐다.
올해는 회추위 구성이 3년 전보다 늦어지면서 후보 추천과 검증에 주어진 시간이 더욱 촉박해졌다. 조 회장의 임기가 이달 30일 끝나는 점을 고려하면 이르면 이달 중순께 차기 회장 후보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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