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최유라 기자] 서울교통공사(공사)의 전동차 구매 입찰 평가기준을 두고 기존 납품 실적을 보유한 업체에 유리하게 설계돼 신규 업체의 진입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술평가에서 등급 간 점수 차가 큰 데다, 실적을 입증하지 못하면 최저등급을 받아 적격 기준인 85점을 넘기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신규 전동차 입찰에서 협약을 통한 타사의 실적 인정 방식을 적용하고 있어 입찰 평가 기준에 차이를 보였다.
28일 조달청 나라장터에 따르면 6·7호선 신조전동차 376칸 구매 입찰은 지난 7월 첫 개찰부터 두 차례 재공고까지 세 차례 모두 단독 응찰로 유찰됐다. 사업 규모는 5935억원이다. 결국 공사는 단독 응찰한 우진산전과 수의계약을 맺었다.
국내에서 전동차를 만드는 업체는 현대로템과 우진산전, 로만시스, 다원시스 등이다. 지난 2월 공사가 연 6·7호선 전동차 사업설명회에 참석한 제작사도 이들 4곳뿐이었다.
입찰은 두 단계로 진행된다. 1단계는 규격(기술) 평가다. 차량 기술과 사업 수행계획 등을 보는 수행능력(75점)과 납품실적 및 경영상태를 보는 납품·이행능력(25점)을 합쳐 100점 만점으로 평가한다. 여기서 85점 이상을 받고 현장실사에서 적격 판정까지 받은 업체만 2단계 가격 평가로 넘어간다. 2단계에선 예정가격 이하로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가 낙찰자로 선정된다. 아무리 낮은 가격을 써내도 1단계를 통과하지 못하면 가격 평가 대상에서 제외된다.
점수는 항목마다 A부터 E까지 다섯 등급으로 매긴다. A등급은 해당 항목의 배점을 모두 받고 한 등급 내려갈 때마다 배점의 20%씩 차감된다. 가장 낮은 E등급은 배점의 20%만 받는다. 공사는 사업설명회에서 업체 간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등급별 가중치를 상향조정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업계에서 문제로 지적하는 부분은 실적과 연동된 평가항목이다. 평가기준에 따르면 ▲RAMS(신뢰성·가용성·유지보수·안전성) 목표값 미달성으로 인한 입증기간 연장 정도 ▲연간 완성차량 생산 현황 ▲형식승인 기간의 적정성 등 세 항목은 모두 납품실적증명서로 입증해야 한다. 관련 증빙을 제출하지 못하거나 실적이 없으면 최저등급인 E등급을 받는다.
업계에선 이 같은 구조가 실적 없는 신규 업체에 사실상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일부 실적 항목에서 최저등급을 받으면 85점 기준을 넘기 어려워 납품 이력이 없는 업체는 입찰 참여 자체를 주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등급 간 차이라 이렇게 벌어지면 몇개 항목에서만 낮은 등급을 받아도 치명상이 된다"고 우려했다.
공사는 주요 장치의 자체 생산 여부도 평가한다. 추진제어장치와 견인전동기 등 주요 장치를 8건 초과해 자체 생산하면 A등급, 1건 이하면 E등급을 받는다. 업계 관계자는 "장치별 전문 업체의 부품을 구매한 뒤 시스템 엔지니어링으로 차량을 완성하는게 일반적인데, 부품까지 직접 만들어야 점수를 주는건 업계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발주기관별 평가기준에도 차이가 있다. 코레일이 최근 발주한 신조 전동차 144칸 평가기준을 보면 형식승인 실적을 가진 업체와 협력하기로 약정하면 입찰자의 납품실적으로 인정한다. 과거 실적이 없는 업체도 협력관계를 통해 실적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 코레일 기준에서도 RAMS 입증 실적이 없으면 최저등급을 주는 조항은 있지만 배점이 작고 등급 간 차이도 10%에 그친다. 등급 간 20% 차이는 주요 성능·안전 항목에만 적용한다. 연간 생산 실적과 형식승인 기간, 주요 장치 자체 생산을 따지는 항목은 없다.
공사는 다원시스의 납품 지연 사태 이후 서울시 자문회의를 거쳐 납품 지연과 품질 문제에 대한 페널티를 강화했다는 설명이다. 최근 5년 안에 공사와의 계약에서 지연배상금을 낸 업체는 최대 5점, 최근 10년 안에 공사에 납품한 전동차에서 고장이 잦았던 업체는 최대 3점이 깎인다.
감점 조항은 공사에 차량을 납품한 적이 있는 업체에만 해당된다. 반면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확대된 등급 간 점수 차와 실적 증빙 요건은 신규 업체에도 동일하게 적용한다. 신규 업체는 과거 납품과 관련한 감점 요인은 없지만 실적 항목에서 최저등급을 받아 85점 문턱을 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공사는 제작사마다 이해관계가 엇갈려 평가기준을 자체적으로 바꾸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토교통부가 올해 철도차량 구매 계약 제도 전반에 대한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어 결과에 따라 관련 평가기준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제작사마다 상황이 달라 기준을 올리면 한쪽에서, 낮추면 다른 쪽에서 불만이 생겨 공사 스스로 계약제도와 평가기준을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며 "국토부 연구용역 결과로 가이드라인이 마련되면 그에 맞춰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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