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소영 기자] ETF(상장지수펀드)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운용사 간 상품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새로운 투자 전략을 발굴하고 차별화된 상품을 선보이려는 시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먼저 출시된 상품과 유사한 상품이 잇따라 등장하는 관행도 반복되고 있다.
유사 상품의 등장이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경쟁은 투자자의 선택지를 넓히고 상품의 질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먼저 시장에 선보인 운용사가 후발 주자의 물량 공세에 밀려 그 성과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히 자본력과 브랜드 인지도, 판매망에서 앞서는 대형사가 유사 상품을 출시하면 먼저 시장을 개척한 중소형 운용사는 차별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대형사는 기존 판매 채널과 마케팅 역량을 활용해 후발 상품임에도 인지도를 빠르게 높이고 자금 유입을 끌어낼 수 있지만 중소형사는 상대적으로 제한된 자원으로 투자자를 확보해야 해서다.
ETF 상품 하나를 시장에 내놓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투자 수요를 분석하고 기초지수와 운용 전략을 설계하는 것은 물론, 상품 출시 이후 투자자에게 상품의 특성을 알리고 시장에 안착시키는 과정도 필요하다. 유사 상품이 잇따라 출시되면 선발 상품의 차별성이 희석되면서 개발에 들인 노력이 시장 성과로 이어지지 못할 수 있다.
그렇다고 후발상품의 진입 자체를 제한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특정 투자 전략을 한 운용사가 독점하도록 허용하면 오히려 경쟁이 위축되고 투자자의 선택권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후발상품의 정당한 경쟁은 보장하되 먼저 새로운 상품을 선보인 운용사의 노력과 성과 역시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거래소는 신규 상품의 독창성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신규 상장 신청 상품과 유사한 상품의 출시를 일정 기간 제한하는 장치다. 문제는 해당 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라는 데 있다. 독창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정성적이며 심의 절차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실질적으로 신청하는 운용사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ETF 시장은 상품 출시 시점과 투자자의 관심을 선점하는 속도가 중요한 시장이다. 심의가 길어지는 사이 시장 환경과 투자 수요가 달라질 수 있는 데다 보호여부 마저 불확실하다면 운용사입장에서는 제도를 활용할 유인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피해는 개별 운용사에 그치지 않는다. 검증된 투자 방식이 유리해지면 운용사의 상품 개발도 보수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ETF 시장의 상품 구성이 획일화되고 투자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투자 전략의 폭마저 좁아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대안으로 '최초 출시 마크' 도입을 제안해본다. 유사 상품 가운데 최초로 출시된 상품에 마크를 부여해 투자자가 원조 상품을 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투자자의 상품 선택을 돕고 차별화된 상품을 먼저 개발한 운용사의 기여도 시장에서 인정받도록 하자는 취지다.
물론 마크 하나로 카피캣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먼저 선보인 상품의 가치를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면 운용사들이 새로운 투자 전략과 차별화된 상품 개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유인이 생길 수 있다. 결과적으로 상품 모방에 기대기보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경쟁하는 시장을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ETF 시장의 성장은 더이상 상품 수와 총자산(AUM) 규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다양한 투자 아이디어가 실제 상품으로 이어지고 운용사들이 차별화된 전략으로 경쟁할 때 시장의 성장도 의미를 갖는다. 외형을 키우는 데 집중해온 ETF 시장이 이제는 경쟁의 질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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