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주명호 차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혼 재산분할 소송은 총수 개인의 가족사가 기업 지배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 회장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지급할 재산분할금 9440억원을 마련할 용도로 지주사인 SK㈜ 주식 165만3924주를 처분키로 했다. 전략적 투자자에 절반 이상을 매각하는 등 안전장치를 뒀지만 총수 개인의 지분율 하락(17.8%→15.5%)이라는 결과는 고스란히 남았다.
LG그룹의 상황도 외견상 이와 비슷하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상대로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제기한 세 모녀(김영식·구연경·구연수)는 직접적으로 LG 지분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민법상 법정상속비율(배우자 1.5·자녀 1)을 따르면 구광모 회장의 지분은 16.60%에서 9.71%로 급격히 낮아진다. 세 모녀의 총 지분율은 14.10%로 구 회장 개인 지분율을 넘어선다. 명백한 지배구조 리스크다.
다만 현실은 그들의 주장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아직 1심만 진행된 상황이지만 사법부의 판단은 구 회장의 손을 들어주고 있어서다. 올해 2월 1심 법원은 2018년 진행됐던 상속재산 분할 합의가 유효하다고 보고 세 모녀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항소심이 남아 있지만 1심에서 인정된 사실관계 및 법리가 뒤집히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 재계 관계자는 "세 모녀 측 역시 이기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소송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속적인 잡음을 통한 압박이란 해석이 크다. 파양 소송 역시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재벌 총수의 가십과 추문은 진위여부를 떠나 그 자체로 큰 부담이다. 대중이 공유하는 윤리적 영역은 더욱 그렇다.
결국은 돈의 문제로 귀결된다. 상속비율대로의 지분 분배가 아니더라도 일부 지분을 받을 수 있다면 목적 달성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LG 지분은 핵심 경영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지닌 자산이다. 지분 자체의 가치에 더해 매년 받는 배당도 상당하다.
이미 세 모녀의 현 지분 수준은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현금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다. 김영식 여사가 보유한 LG 주식은 725만3100주로 연간 배당금은 약 205억원(세전 기준)으로 추산된다.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503만279주), 구연수(113만7064주)씨의 배당금은 각각 142억원, 35억원 수준이다. 고배당기업 배당소득 분리과세 특례 적용시 세후 기준 최소 265억원이 세 모녀에게 돌아간다. 재계에서는 이들의 재산 규모를 2조원대 이상으로 전망한다.
그럼에도 지분이 더 필요하다는 욕망을 움직이는 기제는 유추하기 쉽지 않다. 다만 이로 인해 지속될 리스크가 LG그룹 전체에 애꿎은 악재라는 점은 명백하다. 인공지능(AI) 기업으로 대도약을 준비하는 현 상황에서 특히 그렇다. 글로벌 기업들과의 합종연횡이 중요한 시점에서 경영권 분쟁처럼 비춰지는 현 소송전의 겉모습은 협상력을 깎는 요인으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 그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발생하는 비용은 주주들에게도 전가될 수밖에 없다.
구 회장과 세 모녀의 항소심은 지난 9월 첫 변론준비기일을 시작으로 쟁점 정리 절차에 들어갔다. 두 번째 변론준비기일은 내달 27일이다. 그간 재판 과정을 감안하면 법정분쟁이 내년까지 이어진다는 점은 이미 기정사실로 여겨진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LG를 둘러싼 잡음은 계속해서 생겨나고 또 소비될 것이다. 다만 SK와는 다른 소송의 본질을 이제는 대중들도 더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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