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K-금융의 글로벌 행보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해외 진출은 이제 주요 금융사에 단순한 기회 모색이 아니라 핵심 사업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탄탄한 해외 실적은 '생산적 금융'이 강조되는 현시점에서 선순환적 수익 구조를 만들어가는 동력이 되고 있다. 딜사이트는 이번 기획을 통해 세계 각 거점에서 펼쳐지는 국내 금융사의 현지 사업과 전략, 그리고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한다. [편집자 주]
[부다페스트(헝가리)=딜사이트 한진리 기자] 대출 한 건 취급하지 않지만 중동부유럽(CEE) 금융시장의 움직임은 누구보다 촘촘히 살핀다. 신한은행 헝가리 대표사무소의 역할이다. 현지 금융당국의 정책 방향부터 은행들의 수익구조, 한국 제조기업의 투자 움직임까지 추적하며 향후 금융사업의 기회를 찾고 있다. 헝가리를 넘어 슬로바키아·세르비아·루마니아까지 시장을 살피는 신한은행의 '금융 레이더'인 셈이다.
최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딜사이트와 만난 이광윤 신한은행 헝가리 대표사무소장은 "사무소는 현지 시장을 분석하고 네트워킹하기 위한 조직"이라며 "금융당국의 스탠스와 금융시장 상황, 현지 은행들이 어떤 부분에서 수익을 내고 무엇을 민감하게 보는지 등을 계속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이 이처럼 현지 금융시장 분석에 공을 들이는 배경에는 중동부유럽의 산업구조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이 공급망 안정성과 역내 생산 기반 확보에 무게를 두면서 한국 제조기업들이 진출한 헝가리와 인접국의 전략적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기업들의 생산거점과 투자 방향이 달라지면 시설자금과 운전자금, 외환·현금관리 등 금융 수요도 함께 움직이는 만큼 시장 변화를 선제적으로 파악하겠다는 구상이다.
◆헝가리 넘어 인접국까지…금융시장·규제 동향 추적
신한은행 헝가리 대표사무소는 2021년 9월 등기를 마치고 같은 해 12월 문을 열었다. 현재 본국 파견직원 1명과 현지 직원 1명 등 총 2명이 근무하고 있다.
사무소는 현지 규제에 따라 대출이나 예금 수취 등 직접적인 금융 영업을 할 수 없다. 대신 금융당국과 현지 금융회사, 한국계 기업 등과 접점을 넓히면서 시장조사와 정보 수집에 집중하고 있다.
조사 대상도 헝가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슬로바키아·세르비아·루마니아 등 인접국의 산업구조와 금융시장 변화까지 살피며 신한은행이 중동부유럽에서 추진할 수 있는 금융사업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특히 현지 은행들이 어떤 사업에서 수익을 창출하고 어떤 위험 요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파악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한국 기업의 금융 수요를 확인하는 것에서 나아가 현지 금융회사의 영업 환경과 경쟁구조까지 분석하려는 취지다.
현지 금융기관의 수익구조와 여신 취급 기준, 금융당국의 정책 방향은 향후 신한은행이 시장 진출이나 금융거래를 검토할 때 중요한 판단 자료가 될 수 있다. 사무소가 확보하는 정보는 신한은행의 현지 금융사업 가능성을 검토하는 기초 자료로 활용된다.
직접 금융상품을 판매하지는 않지만 시장과 제도를 파악하고 현지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향후 금융사업의 기반을 다지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배터리 성장 둔화 속 공급망 변화 주시
신한은행 헝가리 사무소가 주목하는 또 다른 변화는 유럽의 산업정책과 제조업 공급망 재편이다. EU가 전략산업 육성과 공급망 안정성을 강조하면서 유럽 시장에 진출한 기업들의 현지 생산 기반 확보 필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헝가리와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등은 유럽 주요 소비시장과 연결되는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자동차와 이차전지 산업의 생산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 기업들도 독일 등 서유럽에 판매법인과 지역본부를 두는 한편 중동부유럽에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유럽 사업을 확대해 왔다.
완성품 제조기업이 생산시설을 세우면 소재·부품업체와 협력사들이 뒤따라 진출하면서 공급망이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생산설비 투자와 운영자금, 외환거래 등 금융 수요도 함께 발생한다.
특히 헝가리는 한국 2차전지 기업들의 주요 유럽 생산거점 중 하나다. 삼성SDI와 SK온이 현지에 생산시설을 구축했으며 관련 소재·부품 기업들도 진출해 대규모 공급망을 형성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기차 시장의 성장 둔화가 변수로 떠올랐다. 2022~2023년 이후 유럽 전기차 수요가 당초 기대만큼 빠르게 늘어나지 않으면서 이2전지 기업들의 투자와 생산 전략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신규 설비투자와 기존 공장의 운영 방향이 달라질 경우 관련 금융 수요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소장은 “헝가리를 놓고 보면 이차전지를 빼놓을 수 없다”며 “최근 점진적인 회복 조짐은 있지만 과거 예상했던 만큼 성장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런 산업 흐름을 계속 지켜보는 것이 사무소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배터리 산업의 회복 속도와 한국 기업들의 투자 움직임을 살피면서 중동부유럽 공급망 변화가 새로운 금융 수요로 이어질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문화·교육 교류로 현지 접점 확대
금융시장 조사와 함께 현지 사회와의 관계를 넓히는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신한은행 헝가리 사무소는 헝가리 한국영화제 후원을 비롯해 엘테(ELTE)대학교에 영상 기자재를 지원했으며, 올해는 한국학과 학생들이 한국 관련 연구자료와 도서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국어 전자자료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활동을 인정받아 지난달 18일(현지시간) 헝가리 한국대사관이 주최한 제2회 헝가리 진출기업 사회공헌(CSR) 시상식에서 '한·헝가리 교류협력상'을 수상했다.
이 소장은 “이번 수상은 헝가리 현지에 한국 문화를 알리고 양국 간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한 점을 인정받은 결과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헝가리는 물론 중동부유럽에서 대한민국을 알리는 홍보대사로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앞으로도 헝가리를 거점으로 인접국의 금융시장과 산업 동향을 추적하고 현지 금융기관 및 기업들과의 접점을 넓힐 방침이다. 직접 영업에 나서기보다 시장의 변화와 잠재적인 금융 수요를 먼저 파악하면서 중동부유럽 금융사업의 기반을 다진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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