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이사회 독립성과 최고경영자(CEO) 승계 절차의 공정성을 강조하면서 은행권 지배구조 개선 압박이 커지고 있다. 연말 은행장 인선을 앞두고 차기 수장을 결정하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의 독립성과 검증 능력도 시험대에 올랐다. 임추위가 경영진을 견제하는 독립적인 의사결정 기구인지, 사실상 정해진 후보를 추인하는 형식적 절차에 머무는지가 핵심이다. 딜사이트는 주요 은행별 임추위 구성과 운영 방식, 위원들의 면면과 인적 관계를 분석해 은행장 선임 과정의 실질적인 의사결정 구조와 검증·견제 장치의 실효성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딜사이트 구예림 기자] JB금융그룹이 전북은행과 광주은행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에 재의요구권을 신설했지만, 은행장 인선의 주도권은 여전히 지주가 쥐고 있다. 은행이 지주의 최종 후보 선정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길은 열렸으나 후보 발굴부터 평가·압축, 최종 추천까지 지주가 전담하는 구조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다른 금융지주들이 후보 추천과 평가 단계부터 은행의 참여를 확대하는 것과 달리 JB금융은 최종 후보 선정 이후에야 은행의 견제를 허용했다는 점에서 제도 개선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JB금융은 올해 상반기 전북은행과 광주은행 임추위에 지주가 추천한 최종 은행장 후보에 대한 재의요구권을 신설했다. 기존에는 지주가 선정한 후보의 적격성을 심사하는 데 그쳤지만 앞으로는 은행 차원에서 후보 선정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고 재검토를 요청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제도 개편은 금융당국이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자회사 임추위의 역할 강화와 맞닿아 있다. 금융감독원은 2023년 12월 발표한 '은행지주·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을 통해 지주가 은행장 선임에 관여하더라도 은행 임추위의 실질적인 역할을 보장하도록 권고했다. 이후에도 자회사 임추위의 제한적인 권한이 개선 과제로 거듭 지목되면서 금융지주별로 인선 절차를 손질하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그러나 재의요구권 신설에도 전북·광주은행의 후보 선정 과정에서 은행 임추위가 직접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제한적이다. JB금융 자회사CEO후보추천위원회(자추위)는 은행장 상시후보군 관리부터 롱리스트·숏리스트 압축, 결격요건 검증, 내부 및 다면평가, 최종 후보 1인 결정에 이르기까지 인선의 핵심 절차를 모두 주도한다. 은행 임추위는 지주가 최종 후보를 결정한 이후에야 재의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후보 선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권한과 이미 내려진 결정의 재검토를 요청하는 권한은 무게가 다르다. 사전 후보 추천권이나 평가권은 여러 인물을 비교·검증하며 적임자를 추리는 과정에 은행의 의사를 직접 반영할 수 있는 수단이다. 반면 재의요구권은 이미 지주가 결정해 넘긴 단일 후보에 대해 사후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견제 장치다. 은행이 인선의 방향을 정하기보다 지주의 결정에 문제를 제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셈이다.
재의요구 이후 지주가 기존 후보를 다시 추천할 경우 은행 임추위가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도 관건이다. 재검토 요청만 가능하고 후보 교체를 요구하거나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면 은행 측 판단이 인선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재의요구권의 실효성은 권한의 존재 자체보다 지주의 결정을 실제로 바꿀 수 있는 절차가 마련돼 있는지에 달려 있다.
인선 권한이 집중된 지주 자추위의 구성도 주목할 대목이다. JB금융 자추위는 김기홍 회장을 비롯해 성제환 독립이사, 김지섭 비상임이사 등 3명으로 구성돼 있다. 사외이사 비중은 전체의 3분의 1인 1명에 불과한 데다, 김 회장이 직접 위원장을 맡아 위원회 소집 및 외부 전문가 자문 여부 등 주요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구조다.
은행장 후보를 발굴하고 평가하는 핵심 기구에 지주 회장이 직접 참여하는 데다 사외이사는 1명에 그친다. 후보 선정 권한이 지주에 집중된 상황에서 은행 임추위의 개입마저 최종 후보 결정 이후로 제한돼 있어 독립적인 견제 기능이 충분한지 의문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지난해 말 전북은행장 선임 과정은 지주와 은행 사이의 권한 배분을 보여주는 사례다. JB금융 자추위는 박춘원 당시 JB우리캐피탈 대표를 차기 전북은행장 단독 후보로 추천했다. 당시 박 대표가 IMS모빌리티 투자 의혹과 관련해 특검 조사를 받은 사실이 논란이 되면서 당초 12월16일로 예정됐던 전북은행 이사회와 임시주주총회 일정이 연기됐다.
당시 전북은행 이사회는 후보자에 대한 추가 검증이 필요한 사항이 있는지 재차 확인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반면, JB금융 자추위는 관련 의혹을 포함해 후보자의 자격요건을 충분히 검증했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이후 전북은행은 같은 달 30일 이사회와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지주가 추천한 박 대표를 신임 은행장으로 선임했다.
은행 이사회가 선임 일정을 미루고 추가 검증 필요성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견제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검증 절차를 거친 뒤에도 지주가 추천한 단일 후보가 그대로 선임됐다. 은행이 후보의 적격성을 재검토할 수는 있었지만 다른 후보를 선택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지는 못한 것이다.
당시에는 재의요구권이 도입되기 전이었지만, 지주가 추천한 후보에 은행이 문제를 제기할 경우 어떤 방식으로 인선이 진행되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올해 신설된 재의요구권 역시 은행의 이의 제기가 지주의 후보 재검토에 그칠지, 실제 후보 교체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가 핵심이다.
신설된 재의요구권이 실제 인선 과정에서 시험대에 오르기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다. 박춘원 전북은행장과 정일선 광주은행장은 모두 지난해 12월 선임돼 올해 1월 취임했으며, 임기는 2027년 12월 말까지다. 두 은행장 모두 재의요구권 도입 이전에 선임된 만큼 새로운 권한의 실효성은 차기 은행장 승계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날 전망이다.
JB금융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지주에서 추천 후보를 결정하면 자회사에서 검증하는 시스템이었다면 올해 상반기부터 자회사에서 추천 후보에 대한 재의를 요구할 수 있게 됐다”며 “임추위의 추가적인 변화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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