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정희 기자] 16일 오전 현대자동차·기아 의왕연구소. 레일 위에 놓인 기아의 목적기반모빌리티(PBV) PV5가 자기공명영상(MRI)을 연상시키는 검사장치 안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사가 끝나자 오른편 모니터에 차량의 설계도가 나타났다. 화면 왼쪽에는 결함이 발견된 위치가 표시됐고, 오른쪽에는 결함 종류와 크기 등 구체적인 정보가 제시됐다. 어느 위치에, 어느 종류의 결함이 있는지 한번에 파악이 가능했다.
차량 한 대당 약 5000장의 초고해상도 이미지를 촬영·분석해 외관 결함을 찾아내는 ‘터널형 외관검사 비전 기술’의 시연 모습이다. 이 기술은 기아 화성 EVO WEST 공장에 적용될 예정이다.
이 기술은 현대차·기아가 외부 솔루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체 개발했다. 이동현 현대차 제조AI기술개발팀 책임은 "현대차·기아 국내외 공장에서 사용 중인 비전 시스템을 전수조사한 결과 95% 이상이 외부 솔루션에 의존하고 있었다"며 "차종 추가나 설계 변경이 발생할 때마다 외부 업체 기술에 '락인(Lock-in)'돼 지속적인 추가 투자비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 개발한 비전 기술은 초고해상도 이미지를 통해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작은 덴트나 스크래치를 파악해 제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고 부연했다.
현대차·기아는 이날 '소프트웨어 중심 공장(SDF)' 전환을 위한 기술 전시회인 '이포레스트 테크데이 2026'을 열었다. 이포레스트 테크데이는 현대차·기아 제조솔루션본부 및 협력사가 개발한 스마트 팩토리 기술을 공유하는 대표적인 기술 전시 행사로 올해로 7회차를 맞았다. 올해 행사에서는 ▲자율화·자동화 기술 ▲SDF 추진 기반 기술 ▲미래모빌리티 등의 주제로 한 200건의 제조 신기술이 전시됐다.
현대차·기아가 이들 기술을 통해 궁극적으로 구현하려는 것은 ‘자율운영공장’이다. 사람 없이 돌아가는 무인공장이 아니라 사람과 로봇이 협업하고 데이터와 인공지능(AI)이 생산 현장을 스스로 최적화하는 제조환경이다. 반복적이거나 작업 부담이 큰 공정은 로봇이 맡고, 사람은 판단과 품질 개선 등 부가가치가 높은 업무에 집중하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전시장에서는 이 같은 자동화 기술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비전 기술 시연장 옆에서는 노란색 로봇팔 두 대가 자동차 도어 가니시를 장착하고 있었다. 작업자가 불편한 자세로 직접 조립해야 하는 데다 여러 개의 클립을 차체 홀에 정확하게 끼워야 해 작업 난도가 높은 공정이다.현대차·기아는 미세 진동기로 클립의 위치를 맞춘 뒤 1차 가(假)장착과 롤러를 이용한 2차 가압을 거쳐 공정을 자동화했다. 장착 이후에는 변위센서로 들뜸 등 이상 여부도 확인한다.
모영균 현대차 제조SI기술개발1팀 책임은 "생산성 향상과 품질 안정화를 기대하고 있다"며 "2027년 12월 기아 광주1공장 양산 적용할 예정"이라고 했다.
현대차와 기아의 SDF 전환은 자동차를 직접 조립하고 검사하는 생산 공정에만 머물지 않는다. 생산 현장에서 쌓이는 데이터를 연결하고 AI가 이를 분석해 작업자의 판단을 돕는 영역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울산 전기차(EV) 신공장에 적용된 ‘폴라리스 팩토리(POLARIS-Factory)’가 대표적이다.
폴라리스 팩토리는 제조실행시스템(MES)·품질정보서비스(IQIS) 등 제조 시스템에 흩어진 가동·품질·보전 정보를 통합 분석하고, 사내 문서와 전문가의 노하우를 토대로 답변을 제공하는 제조 특화 AI 에이전트다. 쉽게 말해 공장 업무에 특화된 생성형 AI다. 데이터 조회·분석과 생산 노하우 검색, 사내 문서 연계, 음성 기반 지원 등 4종의 업무 특화 에이전트가 현장 업무를 지원한다.
이날 현장에서는 “어제 차도(차체 도장)의 주요 결함에 대해 알려줘”라는 음성 명령을 내리는 시연이 진행됐다. 폴라리스가 현장 용어를 인식한 뒤 관련 하위 에이전트에 업무를 나눠 맡기자 결과가 화면과 음성으로 제공됐다. 단순한 조회 결과뿐 아니라 분석 내용과 차트 등 시각화 자료도 함께 나타났다. 기존에는 작업자가 여러 시스템에 흩어진 데이터를 직접 조회하고 분석해야 했다면, 이제는 음성 명령으로 필요한 정보를 한꺼번에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임용택 현대차 제조소프트웨어 개발실 책임은 "단순히 데이터를 분석해 인사이트만 주는 것이 아니라 업무를 끝까지 수행하는 방향으로 개발되고 있다"며 "사내 메일, MS 오피스 등의 협업시스템과 연동해 문서를 작성하고 공유하는 업무까지 자동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기아는 이번에 공개한 기술을 그룹 주요 생산거점으로 순차적으로 확산할 계획이다. 마더플랜트인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에서 SDF 기반 구축과 자율운영공장 기술을 실증하고, 검증된 기술을 신·기존 공장에 적용한다. 현재 현대차는 미국 조지아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 조립·물류 자동화 기술을, 울산 EV공장에 고도화된 자동화·자율화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이후 기존 글로벌 공장에도 SDF 기반 체계와 핵심 제조 앱을 순차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최영태 현대차·기아 제조솔루션본부 이포레스트센터장 상무는 “2030년 HMGICS에서 버추얼 기반 자율화 제조시스템을 고도화하고, 2032년 이후 미래 신공장에서 휴머노이드와 풀스케일 자율화 기술을 본격 적용하는 것이 목표”라며 “데이터·AI·디지털트윈·로보틱스를 연결해 미래 제조를 현실로 만들어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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