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최지혜 기자] 서울 신도림역 인근 한 대형 오피스는 지난해부터 새 주인을 찾았다. 펀드 만기가 다가오면서 운용사가 매각에 나섰다. 하지만 거래는 끝내 성사되지 않았다. 결국 건물은 그대로 두고 돈의 주인만 바뀌었다. 기존 수익자가 빠지고 새로운 수익자가 들어오는 방식으로 펀드를 다시 짰다.
건물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공실이 발생하거나 건물의 수명이 다한 것도 아니다. 먼저 수명을 다한 것은 건물을 담고 있던 금융상품이었다.
이는 국내 상업용 부동산시장에서 흔히 나타나는 사례다. 대형 자산인 오피스를 담는 부동산펀드의 운용기간이 5~7년 안팎에 그치기 때문이다. 운용사는 정해진 기간 안에 자산을 사고, 임대수익을 올리고, 다시 팔아 투자금을 돌려줘야 한다. 건물은 수십년을 바라보지만 자본은 출구부터 찾는다.
하지만 부동산시장은 펀드 만기표에 맞춰 움직이지 않는다. 금리가 낮고 거래가 활발할 때 만기가 돌아오면 별다른 마찰 없이 자산을 넘길 수 있다. 오른 가격에 건물을 팔고 투자자는 수익을 거둔다. 반대로 거래시장이 얼어붙은 시기에 만기가 찾아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손바뀜이 일어나지 않으면 펀드 만기를 연장하거나 새로운 투자자를 찾아야 한다.
올해 서울 오피스 시장에서도 펀드 만기를 앞두고 매각시장에 나온 물건이 적지 않다. 거래가 성사된 자산도 있고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자산도 있다. 결과는 달라도 출발점은 비슷하다. 자산 매각에 좋은 시점이라서가 아니라 돈을 돌려줘야 할 때가 됐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운용사의 시선도 짧아질 수밖에 없다. 10년, 20년에 걸쳐 자산의 경쟁력을 높이기보단 정해진 운용기간 안에 얼마에 사서 얼마에 팔지가 중요해진다. 리모델링과 임차인 관리로 장기간 현금흐름을 키우는 '운용'보다 마지막 매각가격이 투자 성과를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만기가 있는 펀드 자체는 금융상품으로서 죄가 없다. 투자자는 언젠가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고, 정해진 기간 안에 수익을 실현하는 것도 운용사의 책무다. 다만 이같은 자금이 국내 상업용 부동산시장의 주요 자본으로 자리 잡으면서 주기적으로 우량한 자산의 매각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구조가 굳어졌다는 점이 아쉬움을 남긴다.
다른 형태의 자본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존속기간의 제약 없이 자산을 장기간 보유할 수 있는 리츠나 영속형 펀드가 대표적이다. 해외에서는 장기자본이 우량 부동산을 장기간 보유하면서 임대수익과 자산가치 상승을 함께 추구하는 투자 방식이 이미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다. 국내 리츠 시장이 커지면 부동산을 반드시 5~7년 안에 처분하지 않아도 되는 자본도 함께 커진다.
오래 존재한다는 것은 오래 소유된다는 것과 별개다. 건물은 한자리에 남아 있는 동안 몇번이고 주인을 바꿀 수 있다. 금융은 그것을 유동성이라 부르고, 투자는 회수라고 부른다. 모두 필요하다. 다만 50년을 견딜 자산을 5년마다 떠나야 하는 돈으로 소유하는 방식이 유일한 답일 필요는 없다.
좋은 부동산을 알아보는 능력만큼 좋은 부동산을 오래 소유할 수 있는 능력도 자본의 실력일 것이다. 국내 부동산금융에 필요한 것은 더 좋은 엑시트가 아니라, 서둘러 떠나지 않아도 되는 돈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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