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K-금융의 글로벌 행보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해외 진출은 이제 주요 금융사에 단순한 기회 모색이 아니라 핵심 사업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탄탄한 해외 실적은 '생산적 금융'이 강조되는 현시점에서 선순환적 수익 구조를 만들어가는 동력이 되고 있다. 딜사이트는 이번 기획을 통해 세계 각 거점에서 펼쳐지는 국내 금융사의 현지 사업과 전략, 그리고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한다. [편집자 주]
[싱가포르=딜사이트 차화영 기자] 한국수출입은행 싱가포르법인이 해외 프로젝트의 ‘수행자’에서 ‘발굴자’로 역할을 넓히고 있다. 2022년 출범 초기 본점에서 발굴한 거래를 수행하는 데 무게를 뒀다면 이제는 현지에서 직접 우량 프로젝트를 찾아 국내 기업과 금융회사에 연결하는 정책금융 플랫폼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모습이다.
외형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총자산이 10억달러를 넘어선 데 이어 올해 초 2억달러를 추가 출자해 자본금을 3억달러에서 5억달러로 늘렸다. 올해 말에는 수익자산 13억달러와 당기순이익 1700만달러 안팎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지 딜 소싱과 대형 프로젝트금융(PF)을 확대하기 위한 자본 여력도 함께 키운 셈이다.
글로벌 금융회사와 다국적 기업이 밀집한 싱가포르의 입지를 활용해 현지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국내 기업·금융회사와 연결하는 데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싱가포르법인은 단순히 해외에서 자산과 수익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정책금융기관으로서 국내 기업과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을 뒷받침하는 역할에도 무게를 두고 있다. 한국 기업이 참여하는 해외 프로젝트에 금융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현지에서 발굴한 우량 프로젝트를 국내 금융회사에 소개하고 필요하면 보증을 제공하거나 위험을 분담하는 방식이다.
이도형 수출입은행 싱가포르법인장은 최근 싱가포르에서 딜사이트와 만나 "단순한 해외 영업점이 아니라 글로벌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자본을 연결하는 금융 플랫폼으로서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궁극적인 방향"이라고 말했다.
◆자산 10억달러 넘어…'본점 수행'서 '현지 발굴'로
2022년 출범한 싱가포르법인은 초기 영업체계를 구축하는 단계를 지나 독자적인 영업 기반을 넓히고 있다. 현재 직원은 주재원 7명과 현지 직원 27명 등 모두 34명 규모다.
영업 영역도 기업금융 중심에서 PF와 구조화금융, 투자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다. 올해 6월 말 승인액 기준 금융지원 포트폴리오 가운데 대출과 보증 등 여신이 약 80%, 채권과 펀드 투자가 약 20%를 차지한다.
여신을 지역별로 보면 아시아·호주가 약 60%로 가장 많고 유럽이 약 22%, 북미가 약 7% 등의 순이다. 한국과 관련된 거래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사업별로는 기업금융이 전체 여신의 절반가량, PF와 구조화금융이 약 30% 수준이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데이터센터와 신재생에너지, 배터리·전기차 밸류체인, 친환경 인프라 등 성장산업으로 금융지원 영역도 넓히고 있다. 특정 산업에 자산이 쏠리지 않도록 성장성과 사업성, 리스크 수준을 함께 고려해 포트폴리오를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외형 확대와 함께 가장 공을 들이는 분야는 현지에서 직접 거래를 발굴하는 역량이다. 출범 초기에는 본점에서 발굴한 프로젝트를 현지에서 수행하는 비중이 컸지만 최근에는 싱가포르법인이 직접 프로젝트를 찾아 본점에 소개하거나 글로벌·국내 금융회사와 함께 거래구조를 만드는 사례가 늘고 있다.
법인 자체의 금융 기능도 강화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본점의 별도 보증 없이 싱가포르법인의 자체 신용등급(무디스 Aa2)을 기반으로 채무보증(Debt Guarantee)을 수행했다. 수은은 이를 싱가포르법인이 단순한 해외 영업거점을 넘어 자체 금융 수행 역량을 한 단계 높였다는 의미로 보고 있다.
◆우량 딜 발굴해 K-금융 연결…2억달러 증자로 실탄 확대
현지 딜 소싱 확대는 수은의 정책금융 기능과도 맞물려 있다. 싱가포르에서 우량 프로젝트를 직접 발굴하면 수은 자체 금융지원에 그치지 않고 국내 기업과 금융회사가 해외 사업에 참여할 기회도 함께 넓힐 수 있어서다.
실제 대규모 해외 프로젝트에서는 국내 시중은행과 함께 대주단에 참여해 공동으로 금융을 제공하고 있다. 필요하면 시중은행에 보증을 제공하거나 일부 위험을 분담한다. 현지에서 발굴한 프로젝트를 국내 금융회사에 소개하고 금융구조를 설계하거나 투자자와 차주를 연결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민간 금융회사와 같은 거래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책금융기관으로서 보증과 위험분담,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 프로젝트 참여 지원 등 상호 보완적인 역할에 무게를 두고 있다. 수은이 해외 프로젝트의 일부 위험을 분담함으로써 국내 금융회사의 참여 기반을 넓히는 방식이다.
정책금융기관이라는 점은 글로벌 금융회사와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사업 자체의 금융적 타당성뿐 아니라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과 공급망 확보, 전략산업 육성, 에너지 안보 등 국내 경제에 미치는 효과까지 함께 고려해 금융지원 여부를 판단한다.
한국 기업이 당장 직접 참여하지 않는 사업도 국내 산업과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면 이른바 'K-Benefit' 관점에서 금융지원을 검토한다. 향후 국내 기업의 수주·수출 기회를 만들거나 공급망 안정, 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등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함께 살피는 방식이다. 인프라와 발전, 신재생에너지, 배터리, 데이터센터 등 대형 프로젝트에서는 사업 특성과 위험에 맞춰 금융구조를 설계하며 정책금융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올해 초 이뤄진 2억달러 규모의 증자는 이 같은 사업 확대를 뒷받침한다. 자본금은 기존 3억달러에서 5억달러로 약 67% 늘었다. 자본금 확충으로 대규모 PF와 구조화금융 등 큰 거래에 참여할 수 있는 여지도 커졌다.
◆외형 커지자 포트폴리오 관리 강화…아태 정책금융 허브로
자산과 사업 영역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포트폴리오 관리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별도 인력을 채용해 'Credit Portfolio' 관리팀을 만들었다. 개별 거래의 위험뿐 아니라 국가와 산업, 차주별 익스포저를 함께 살펴 특정 영역에 자산이 집중되는 것을 관리하기 위해서다.
이 법인장은 "해외 프로젝트금융과 중장기금융은 투자기간이 길고 다양한 국가와 산업이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리스크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수익성 확대보다도 안정적인 자산 운용과 건전성 관리를 우선 원칙으로 삼고 있으며 국가리스크, 신용리스크, 시장리스크, 환율리스크를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PF의 경우 차주의 신용도뿐 아니라 사업에서 발생하는 미래 현금흐름의 안정성을 중점적으로 살핀다. 자산과 부채의 만기구조를 점검하고 대출 구조에 맞춰 자금을 조달하는 등 금리와 유동성 위험도 함께 관리하고 있다.
앞으로는 싱가포르를 기반으로 정책금융의 지리적·협업 범위를 더욱 넓힐 계획이다. 아세안을 넘어 인도와 호주, 중동 등 성장 잠재력이 높은 시장에 대한 금융지원을 확대하고 글로벌 은행과 다자개발은행(MDB), 개발금융기관(DFI), 연기금, 국부펀드 등과 협력도 강화할 계획이다.
이 법인장은 "싱가포르법인을 수은 해외 네트워크의 핵심 거점이자 아시아·태평양 지역 정책금융 허브로 육성해 한국의 금융영토를 넓히고 우리 기업과 국익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글로벌 금융 플랫폼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비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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