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노연경 기자] 충남 예산역에서 예산상설시장까지는 차로 5분 남짓이다. 서울에서도 2시간 안팎이면 닿는다. 수도권에서 아침에 출발해 시장에서 점심을 먹고 주변 관광지를 둘러본 뒤 저녁이면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거리다.
이 편리함은 역설적으로 지방 소도시가 안고 있는 고민이기도 하다. 산업단지를 만들고 관공서를 이전해도 근무를 마치면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갈 수 있다. 지역에 일자리가 생긴다고 그곳에서 먹고 자고 소비하는 사람까지 저절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2일 충남 예산에서 열린 더본코리아 지역개발 기자간담회에서 백종원 대표가 강조한 것도 이 지점이었다. 백 대표는 “최소한 예산에서 머물다 가게 해보자는 데서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며 관광객을 불러들일 먹거리를 먼저 만들고 이후 교통과 숙박 등 인프라가 따라오도록 하는 ‘마중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예산시장 프로젝트 이후 예산군은 시장과 역을 오가는 교통편을 늘리고 옛 도심에 숙박시설을 확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더본코리아도 삽교시장, 충남방적 부지, 전통주 체험단지, 예당호 등 지역 내 거점을 연결해 방문객의 체류시간을 늘리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예산시장은 원래부터 관광객이 찾던 곳이 아니다. 한때 지역 농축산물과 생활물자가 모이는 장터로 번성했지만 1990년대 이후 상권이 빠르게 쇠퇴했다. 시장 안에서 45년째 같은 모습으로 옷가게 장사를 하고 있는 태양상회 점주는 당시 모습을 “우범지대 같았다”고 표현했다.
2023년 1월 장터광장이 문을 연 뒤 시장의 모습은 바뀌었다. 첫해 약 370만명, 2024년 약 400만명이 찾았고 프로젝트 시작 이후 누적 방문객은 1000만명을 넘어섰다. 더본코리아는 시장 내 핵심 5개 점포를 먼저 조성하고 기존·신규 상인을 대상으로 무료 메뉴 컨설팅과 레시피 개발, 위생교육, 외관 개선 등을 지원했다.
더본코리아의 메뉴 컨설팅을 받은 음식점도, 지원을 받아 새로 문을 연 점포도 아니지만 태양상회 점주는 백 대표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백 대표가 없었다면 예산시장이 이렇게 될 일이 없었다"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시장이 살아나자 새로운 장사꾼들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카페 '다방면'을 운영하는 최선호(27)씨는 예산이 고향이지만 운동을 배우기 위해 타지로 떠났다가 2024년 다시 돌아왔다. 할머니 때부터 이어온 수예점을 처분할까 고민하다 어머니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아 그 자리에 카페를 열었다.
최씨는 “어릴 때 예산시장은 하루 한두 명밖에 오지 않는 곳이었다”며 “지금은 외부 유입도 많고 젊은 사장님들도 많아졌다. 젊은 상인들끼리 단톡방에서 이벤트도 상의한다”고 말했다.
이날 시장에서 만난 방문객 상당수에게 예산시장은 경유지가 아니라 목적지였다. 홍성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나러 서울에서 내려온 김장현(29)씨는 “예산시장을 와보고 싶어서 왔다”며 “기존 시장과 달리 젊은 감각이 묻어난다. 젊은 사장님도 많고 메뉴도 다양하다”고 말했다.
보령에서 가족 3대가 함께 방문한 김백진(31)씨도 “콧바람 쐬러 왔는데 이런 분위기의 시장은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다”며 “시장 하면 할머니가 있는 분위기를 떠올렸는데 젊은 사람도 많고 흔하지 않은 메뉴가 많다”고 했다.
예산시장이 관광 콘텐츠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지역에 이미 존재하던 먹거리 자산도 한몫했다. 국수와 장터국밥, 사과와 축산물 등 기존 지역 자원에 현대적인 메뉴와 공간을 덧입혔다. 더본코리아는 예산 쪽파를 활용한 파기름비빔국수, 사과를 활용한 메뉴, 지역 축산물을 활용한 고기와 부속구이 등을 개발했고 최근에는 예산 사과잼을 넣은 디저트 ‘잼리수’까지 선보였다.
박현주 예터칼국수 점주가 체감하는 변화는 더 직접적이다. 박 점주는 2018년 예산군의 지원을 받아 국숫집을 시작했지만 당시에는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고 바닥 시멘트가 들뜰 정도로 시장 환경이 열악했다.
박 점주는 “당시에는 하루에 국수 다섯 그릇도 못 팔았는데 지금은 주말이면 50그릇 이상을 판다"며 “당진·서산·천안은 물론 서울에서 왔던 손님이 다시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예산시장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시선이 모두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이날 시장에서 만난 한 방문객은 “결국 백종원이 여기서 돈을 버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더본코리아는 시장 상인들에게 컨설팅비를 받거나 매출 일부를 가져가지 않는다. 자사 식재료 사용을 의무화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공공예산 집행을 기다리지 않고 시장 내 화장실과 인접 상가를 매입해 리모델링한 뒤 예산군에 기부했고 핵심 점포의 매입·임대와 시설, 메뉴 개발 등에 자체 자금을 먼저 투입했다.
백 대표는 “성과를 먼저 보여주는 것이 빠를 것 같았다”고 말했다. 예산에서 먼저 돈을 넣어 결과를 보여주자 다른 지자체들도 예산시장 사례를 보고 사업 예산을 편성해 더본코리아를 찾기 시작했다.
백 대표와 더본코리아가 각종 논란에 휩싸였던 지난해 예산시장도 함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이날 만난 상인들은 “백 대표가 없었다면 지금의 시장은 없었을 것”이라며 누구도 백 대표를 원망하지 않았다.
백 대표도 지난 1년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논란을 겪으며 조직을 재정비하고 축제와 현장 운영을 더욱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계기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제 목표는 예산시장 하나의 성공에 머무르지 않는다. 예산에서 얻은 시행착오와 노하우를 바탕으로 다른 지역에서도 사람이 찾아오고 청년이 장사하며 지역이 다시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상생 사례를 만드는 것이다.
백 대표는 “자연발생적으로 마을이 생긴 사례를 보면 시장처럼 먹거리와 생활필수품을 파는 공간으로 시작한 곳이 대부분”이라며 “지역에 있는 시장이 그런 마을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을이 생기면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인프라가 자연스럽게 갖춰지고 지방 소도시도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체 내용과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사 본문과 함께 읽어주세요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Ho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