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이 가상자산을 넘어 결제·송금·정산의 새로운 인프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시장을 선점한 가운데 국내에서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둘러싼 은행과 빅테크, 가상자산거래소 등의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이에 딜사이트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필요성과 사업·수익구조, 실사용 가능성을 짚어보고, 혁신과 금융안정을 함께 담아낼 제도적 과제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딜사이트 조은지 기자] 1원에 발행해 1원에 돌려줘야 하는 코인으로 어떻게 돈을 벌까. 원화 스테이블코인 사업의 핵심은 코인 가격이 아니라 그 뒤에 쌓이는 준비자산에 있다. 이용자가 맡긴 원화를 예금이나 단기국채 등 안전자산으로 운용해 발행사가 이자를 얻고, 코인이 움직이는 과정에서는 거래소와 결제·송금업체 등에 거래·송금·환전·결제 수수료가 발생한다.
발행량이 늘어날수록 운용할 수 있는 준비자산도 커진다. 여기에 거래와 결제가 늘면 거래소와 결제업체에도 새로운 수수료 수익원이 생긴다. 플랫폼은 결제·송금 비용을 낮춰 이용자를 끌어들이고 이를 쇼핑과 금융 등 기존 서비스 이용 확대로 연결할 수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경쟁이 '누가 발행하느냐'에서 '누가 돈을 벌고 어떻게 나누느냐'로 이어지는 이유다.
◆준비자산 10조·금리 3%면 3000억…발행사의 ‘돈줄’
발행사가 기대할 수 있는 대표적인 수익은 준비자산에서 나오는 이자다. 한국은행의 '한국은행이 말하는 스테이블코인의 모든 것(A to Z)' 설명자료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이용자로부터 받은 자금을 준비자산으로 운용해 이자수익을 얻는다. 코인 가격을 올려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코인 발행에 따라 확보한 자금에서 수익을 내는 구조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용자가 100만원을 내고 같은 가치의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받으면, 발행사는 향후 상환에 대비해 그에 상응하는 자산을 확보해야 한다. 이 자금을 허용된 예금이나 단기국채 등으로 보유하면서 이자를 얻는 방식이다. 이용자가 낸 100만원 자체가 발행사의 매출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행은 이를 발행사가 사실상 무이자로 받은 자금을 준비자산으로 운용해 얻는 '시뇨리지' 성격의 이익으로 설명한다. 발행량이 늘어나면 그만큼 운용할 수 있는 준비자산도 증가하기 때문에 사업 규모가 커질수록 이자수익 역시 확대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이런 수익모델이 작동하고 있다. 서클이 지난달 5일 발표한 올해 2분기 실적에 따르면 준비자산 수익은 6억6800만달러(약 9300억원)였다. 이에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도 국내 제도에서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유사한 수익모델을 구상할 수 있다.
규모에 따른 차이는 단순 계산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실제 시장 규모나 금리 전망이 아닌 가정이지만 연평균 준비자산이 10조원이라면 연 운용수익률 2%에서 2000억원, 3%에서 3000억원, 4%에서 4000억원의 비용 차감 전 운용수익이 발생한다. 준비자산이 100조원까지 늘어나면 같은 조건에서 각각 2조원, 3조원, 4조원으로 불어난다.
발행량만큼 중요한 변수는 금리다. 준비자산 규모가 같더라도 시장금리가 내려가면 예금이나 단기국채 등에서 얻을 수 있는 운용수익도 감소한다. 반대로 금리가 오르면 같은 발행잔액에서도 더 많은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이자수익은 사실상 ‘발행잔액×운용수익률’이라는 두 변수에 크게 좌우되는 구조인 셈이다.
◆코인 움직일 때마다 수수료…거래·환전·결제도 수익원
준비자산 이자가 발행사의 핵심 수익원이라면 코인을 직접 발행하지 않는 사업자에게는 코인이 움직이는 과정 자체가 사업기회가 된다. 거래소는 코인을 사고파는 거래를 중개하고, 송금업체는 다른 국가로 돈을 보내거나 현지 통화로 바꿔주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결제업체는 가맹점이 코인으로 받은 대금을 원화로 정산받도록 돕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거래·환전·송금·정산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다.
은행은 준비자산을 보관·관리하는 서비스를, 카드사는 기존 가맹점망과 결제·정산 체계를 연결하는 서비스를 수익원으로 모색할 수 있다. 발행사가 이자수익을 기대한다면 이들 사업자는 자금 관리와 거래 처리의 대가를 받는 셈이다.
수수료율 자체는 기존 금융서비스보다 낮아질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경쟁력 가운데 하나가 블록체인을 활용해 중개 단계를 줄이고 송금·결제 비용을 낮추는 데 있기 때문이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건당 수수료를 낮추는 대신 거래량과 이용자 수를 늘려 전체 수익을 확보하는 모델을 모색할 수 있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최종적으로 내는 비용이 중요하다. 코인을 보내는 비용이 낮아도 현금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별도 수수료가 붙으면 절감 효과가 작아질 수 있다. 이에 사업자가 내세우는 수수료 경쟁력 역시 코인 충전부터 송금·결제, 환전과 최종 정산까지 전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기준으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수천억 이자수익 누구 몫?…컨소시엄 배분 변수
사업 규모가 커질수록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준비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자수익과 각종 수수료를 누가 얼마나 가져갈 것인지다. 특히 여러 업권이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사업에서는 발행사가 수익을 독식하기보다 참여사들의 기여도에 따라 수익구조를 설계하는 문제가 중요해질 수 있다.
플랫폼은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기존 사업의 매출을 늘리는 전략도 검토할 수 있다. 쇼핑이나 간편결제 서비스에서 코인을 편리하게 쓰도록 하고, 할인이나 포인트를 제공해 이용 빈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코인 자체에서 발생하는 수익과 함께 고객이 플랫폼 안에서 더 자주 결제하도록 만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발행사에도 이용자를 확보한 플랫폼과의 협력이 중요해질 수 있다. 코인을 발행해도 사용할 곳이 부족하면 수요를 늘리기 어렵다. 향후 제도가 허용할 경우 플랫폼이 결제처와 이용자를 확보하는 대가로 유통 관련 수수료를 받거나 컨소시엄 내부에서 수익을 배분하는 모델도 검토될 수 있다.
컨소시엄에서는 이런 기여도를 어떻게 인정할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은행은 자금 관리와 신뢰를, 거래소는 거래 기반을, 플랫폼과 카드사는 이용자와 가맹점망을 제공할 수 있다. 컨소시엄 지분에 따른 배당과 별개로 준비자산 관리·수탁, 거래·환전, 결제·정산 등 각사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수수료를 지급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수익 배분의 범위를 이용자까지 넓힐지도 관건이다. 발행사가 준비자산에서 상당한 이자수익을 확보하면서 이용자에게 별다른 경제적 혜택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보유할 유인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일정 기간 보유하도록 만들려면 은행 예금에 두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자를 포기할 만큼의 효용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직접적인 이자 지급이 제한될 경우 결제 할인이나 포인트, 송금·환전 수수료 인하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플랫폼 입장에서도 이러한 혜택을 통해 이용자를 확보한 뒤 쇼핑·금융 등 다른 서비스의 이용을 늘린다면 스테이블코인 자체에서 얻는 수익 이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용자 혜택 역시 공짜는 아니다. 할인과 포인트는 사업자의 비용으로 돌아오고 준비자산 관리와 보안, 블록체인·결제 시스템 운영에도 비용이 들어간다. 발행사가 얻는 이자나 거래·결제업체가 받는 수수료가 그대로 순이익으로 남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사업의 성패는 사업자 수익과 이용자 혜택을 어떻게 함께 만들어내느냐에 달릴 것으로 보인다. 사업자는 준비자산 이자와 거래·결제 수수료를 통해 지속적인 수익을 확보해야 하지만 이용자에게도 기존 결제·송금 수단을 두고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선택할 이유를 제공해야 한다. 발행량과 거래량을 키우면서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경제적 이익을 사업자와 이용자 사이에 어떻게 배분할지가 원화 스테이블코인 사업모델의 핵심 과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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