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배지원 기자] 재건축·재개발 조합들이 건설사업관리(CM) 업체를 직접 선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자재비와 인건비 상승으로 시공사의 공사비 증액 요구가 잇따르면서 조합이 자체적으로 적정 공사비를 판단하기 어려워진 영향이다. 특히 시공사 선정 단계부터 CM을 투입해 입찰지침과 건설사 제안서를 검토하고 공사비를 검증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28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양천구 목동7단지 재건축 조합은 최근 총회에서 시공사 선정 단계에 한정해 CM을 도입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CM 업체는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입찰지침서와 건설사 참여 제안서를 검토하고 공사비를 검증하는 한편 시공계약서 검토 등을 지원하게 된다.
목동 주요 재건축 단지에서도 CM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목동4단지는 이미 설계부터 공사까지 전체 공정에 CM을 도입한 상태다. 목동6·8·12단지는 CM의 역할을 시공사 선정 단계로 한정해 운영하고 있다. 이번에 CM 도입을 의결한 목동7단지도 우선 시공사 선정 과정에 CM을 활용하기로 했다. 이들 단지는 추후 CM업체의 역할 확대 여부에 대해 결정하는 단계를 거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CM업계에서도 정비사업 수주 경쟁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 재건축 조합은 지난 7월 CM 용역업체 선정 입찰공고를 내고 업체 선정에 착수했다. 입찰은 8월 3일 마감됐으며 9월 중 최종 업체를 선정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은마아파트는 과거에 선정된 시공사인 삼성물산·GS건설과의 최종 도급본계약 체결을 앞둔 상황으로, 본계약 체결 전 전문 CM업체를 선제적으로 내세워 공사비 검증과 원가 절감 등을 꾀하겠다는 전략을 내세운 것으로 분석된다. 대표 정비사업장인 만큼 대형 CM사들이 경쟁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비사업에서 CM의 역할이 부각된 배경에는 공사비 갈등이 자리한다. 코로나19 이후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오르면서 시공사와 조합 간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분쟁이 잇따랐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이다. 조합과 시공사업단 간 공사비 증액 갈등으로 2022년 공사가 중단됐고, 이후 증액된 공사비를 받아들이면서 사업이 재개됐다.
조합 입장에서는 시공사가 제시한 설계와 공사비가 적정한지, 증액 요구가 실제 원가 상승분을 반영한 것인지 자체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조합이 외부 전문기관을 활용해 공사비를 사전에 검증하려는 수요도 커진 모습이다.
정비사업에서 CM 활용이 상대적으로 늦었던 것은 감리 제도와도 관련이 있다. 주택법 제43조에 따르면 일정 요건을 갖춘 주택건설공사의 경우 사업계획승인권자(지역자치단체)가 감리자를 지정한다. 즉 일반적인 민간 건축물처럼 조합이 감리업체를 자유롭게 선정해 CM과 감리를 묶어 관리하는 방식이 어렵다.
민간 정비사업의 CM 도입 자체가 의무사항도 아니어서 조합 입장에서는 별도의 용역비를 들여 CM을 선임할 유인이 크지 않았다. 반면 최근에는 CM을 감리의 보완재가 아니라 공사비와 설계, 시공사 선정 과정 등을 관리하는 전문용역으로 보는 시각이 강해지고 있다.
정비사업 CM의 역할도 세분화되는 모습이다. 설계 단계부터 사업 전반을 관리하는 전체 공정형 CM(풀CM)이 있는 반면, 앞서 언급한 목동 단지 사례처럼 시공사 선정과 공사비 검증에 집중하는 단계형 CM도 등장하고 있다. 한 번에 전체 공정을 맡기기보다 공사비와 계약 조건이 결정되는 프리콘(Pre-Construction) 단계에 투입하는 방식이다. 조합 입장에서는 전체 사업기간에 걸쳐 용역비를 부담하는 대신 공사비가 결정되는 핵심 단계에만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업계에 따르면 주요 정비사업장에서 프리콘 단계만 CM을 맡길 경우 용역비는 20억~30억원 수준으로 거론된다. 전체 공정을 관리하는 풀CM은 약 70억원 수준까지 올라간다. 다만 CM 용역비는 세대수나 면적에 따라 일률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투입 인력과 업무 범위 등에 따라 달라진다는 설명이다.
CM업계가 제시하는 공사비 절감 사례도 조합들의 관심을 높이는 요인이다. 한미글로벌은 용산국제빌딩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에서 시공사가 당초 요청한 금액에서 약 390억원을 절감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사업은 2020년 준공된 센트럴파크 해링턴스퀘어로, CM사가 공사비 관련 검토를 수행한 사례로 업계에서 거론된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시공사 선정이 본격화되는 대규모 정비사업장에서 CM 활용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공사비가 수천억원에서 조 단위에 달하는 대형 재건축 사업장에서는 입찰 단계에서부터 설계와 공사비를 전문적으로 검증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시공사 단독입찰이 많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어느 시공사를 선정하느냐보다 계약 단계부터 사업 조건을 잘 설정하는 게 중요해졌다”며 “특히 정비사업은 엔지니어링과 건설사업에 대한 전문성이 필요한 만큼 프리콘 단계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 CM을 통해 추후 공사비 증액이나 사업 과정에서의 변수를 줄이려는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CM 도입이 곧바로 공사비 절감으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업체별로 공사비 산정 기준과 수행 범위가 다르고, CM이 검토한 금액과 실제 시공사가 최종 계약한 금액의 차이를 모두 CM의 절감 효과로 볼 수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결국 조합이 CM 용역비를 지급하는 만큼 어떤 업무를 맡기고 어떤 결과를 기대할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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