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재건축 시장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 강남 일부 단지에 집중됐던 정비사업이 압구정·여의도·목동·성수 등 이른바 '압여목성'으로 확산되면서 대형 건설사들의 수주 경쟁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서울 주요 정비사업지의 현재 진행 상황과 각 권역이 갖는 의미, 건설사들의 전략을 차례로 살펴본다.
[딜사이트 배지원 기자] 최근 서울 핵심 재건축 사업장에서 과거와 같은 치열한 수주전이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 현장설명회에는 대형 건설사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내지만 정작 입찰 마감일에는 단 한 곳만 남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유찰 후 수의계약으로 이어지는 방식이 새로운 수주 공식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특히 올해 압구정과 여의도, 목동, 성수 등 대형 정비사업이 동시에 시공사 선정 절차를 밟으면서 건설사 간 '선택과 집중' 전략도 뚜렷해지고 있다. 승산이 낮은 사업장에서는 발을 빼고 경쟁이 상대적으로 덜한 사업장에 역량을 집중하는 이른바 '눈치싸움'이 본격화하고 있다.
2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압구정과 여의도, 목동, 성수 등 서울 주요 정비사업장에서 단독 입찰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과거에는 대형 사업장을 둘러싸고 건설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현대건설이나 삼성물산의 참여가 유력해지면 경쟁사들이 일찌감치 입찰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업계에서는 단독입찰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최근 정비사업이 몰리면서 수주 전략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보고있다.
업계에서는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이 가진 AA급 신용도와 브랜드 경쟁력이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건설의 하이엔드 브랜드 '디에이치(THE H)'와 삼성물산의 '래미안'에 대한 조합원 선호도가 높아 수주 경쟁에서 승산이 크지 않다고 판단하는 건설사들이 다른 사업장으로 눈을 옮긴다는 것이다.
수주전이 본격화되면 특화설계와 홍보, 금융지원 등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만큼 무리하게 맞붙기보다 다른 사업지를 공략하는 것이 수익성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최근 서울 주요 재건축 사업장에서는 입찰에 한 건설사가 단독으로 참여하면서 유찰되는 경우가 반복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압구정이다. 압구정4구역은 지난 2월 열린 현장설명회에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DL이앤씨, 포스코이앤씨, 쌍용건설, 금호건설, 제일건설 등 7개사가 참석하며 경쟁이 예상됐다. 그러나 실제 입찰에는 삼성물산만 응찰하면서 유찰됐고 이후 수의계약 절차를 거쳐 시공사로 최종 선정됐다.
압구정3구역도 마찬가지다. 현대건설만 단독 응찰하면서 두 차례 입찰이 모두 유찰됐고 이후 수의계약으로 시공사 선정이 마무리됐다. 공사비만 5조5610억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 정비사업이지만 경쟁 구도는 끝내 만들어지지 않았다.
여의도 역시 비슷한 흐름이다. 목화아파트는 지난 5월 현장설명회에 삼성물산을 비롯해 GS건설, 대우건설, 롯데건설, IPARK현대산업개발, 호반건설, 제일건설 등 7개사가 참석했지만 지난 9일 입찰에는 삼성물산만 참여해 유찰됐다. 지난 20일 열린 두 번째 현장설명회 역시 삼성물산만 참석하면서 수의계약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광장아파트(38-1구역)도 지난달 첫 현장설명회에 현대건설만 참석하면서 경쟁 입찰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조합은 재공고를 통해 시공사 선정 절차를 이어가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현대건설의 단독 수주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목동과 성수에서도 확인된다. 목동6단지는 1차 현장설명회 당시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대우건설 등이 참석했지만 실제 입찰에는 DL이앤씨만 참여했다. 두 차례 유찰 끝에 DL이앤씨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됐고 이후 시공사로 최종 선정됐다.
최근 현장설명회를 마친 목동12단지도 GS건설과 대우건설, 포스코이앤씨, IPARK현대산업개발 등이 참석했지만 업계에서는 GS건설의 단독 입찰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성수에서도 유사한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성수1지구는 현장설명회에 현대건설과 IPARK현대산업개발, 금호건설 등이 참석했지만 실제 입찰에는 GS건설만 응찰해 유찰됐고 이후 시공사로 선정됐다. 성수3지구 역시 삼성물산만 입찰 의사를 유지하면서 수의계약이 유력한 상황이다.
이는 상위 건설사 중심으로 수주 전략이 재편된 결과로 보인다.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이 압구정과 여의도 등 상징성이 큰 핵심 사업장을 선점하고, GS건설과 DL이앤씨도 각각 성수와 목동 등에서 존재감을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교통정리가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대형 사업장을 따내기 위해 출혈 경쟁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수주보다 수익성이 훨씬 중요한 상황"라며 "상징성이 큰 일부 초대형 사업장에서는 경쟁입찰이 나타날 수 있지만, 시공사 입장에서는 사업장이 유명하다고 해서 수익이 많이 남는 구조는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단독 입찰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같은 흐름에 맞춰 제도 개선도 추진되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정부에 재개발·재건축 사업 활성화를 위한 법령 개정을 건의하면서 경쟁입찰이 한 차례만 유찰돼도 수의계약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완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현재는 두 차례 유찰돼야 수의계약이 가능하지만 단독입찰이 일반화된 현실을 반영해 시공사 선정 지연을 줄이고 사업 속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다만 경쟁입찰 기회가 줄어들 경우 조합의 협상력이 약화되고 공사비 인하 경쟁이나 금융지원, 특화설계 제안 등이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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