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최령 기자]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인적분할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그간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오명을 얻고 계열사 사법 리스크 관리에 힘을 쏟으며 성장에 발목이 잡혔던 카카오를 새롭게 쇄신하겠다는 각오다. 금융계열사를 가진 카카오 입장에서는 지주사보다는 인적분할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이 리스크를 줄이고 기업 성장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김 창업자는 그간 사업 확대로 복잡해진 구조를 정비하고 각종 사법 리스크 속에서 비핵심 사업과 계열사를 정리하는 데 집중했다. 이제는 카카오 본체를 AI와 투자 두 축으로 나눠 각각 두 엔진에 전력을 쏟아 성장에 속도를 내겠다는 구상이다. 모바일 시대 카카오의 성장을 이끈 김 창업자가 AI 시대를 맞아 그룹의 성장 공식을 새롭게 짜는 단계로 넘어간 셈이다.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지난 21일 이사회를 열고 존속법인 카카오X와 신설법인 카카오AI로 인적분할하기로 결정했다. 분할비율은 순자산 장부가액 기준 카카오AI 0.36, 카카오X 0.64다. 기존 주주는 두 회사 주식을 분할비율에 따라 모두 배정받는다.
이번 분할은 지난 2년간 이어진 구조조정을 바탕으로 한 지배구조 재편이다. 카카오는 앞서 2023년 경영진 모럴해저드 논란과 사법 리스크가 겹치면서 그룹 쇄신에 착수했다. 이후 경영체계를 정비하고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며 계열사 수를 지속적으로 줄여왔다.
올해도 카카오게임즈가 연결 대상에서 빠지고 포털 다음 운영사 AXZ(현 다음)를 분리하는 한편 카카오헬스케어 경영권을 차바이오텍에 넘겼다. 이 과정에서 계열사 수는 2023년 138개에서 올해 6월 말 92개로 줄었다. 카카오게임즈 관련 계열사 6곳까지 반영하면 86개로 감소할 전망이다.
그간 외형 확장 과정에서 복잡해진 사업구조를 정리하는 데 무게를 뒀다면 이번에는 성장 사업을 두 축으로 분리해 각각의 의사결정과 자본배분 속도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다수의 자회사를 거느린 기존 구조에서 경영 자원이 자회사 관리에 상당 부분 투입되면서 성장 사업에 집중하기 어려웠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최근 5년간 카카오 이사회 주요 의사결정의 약 85%, 최근 1년간 내부 투자심의 안건의 84%가 자회사와 관련됐다.
특히 카카오X 대표에 김도영 카카오인베스트먼트 대표 겸 CA협의체 그룹투자전략실장을 내정한 것은 투자회사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한 인사로 풀이된다. 김 내정자는 삼성증권 투자은행(IB) 부문 등을 거친 투자 전문가로 카카오에서 그룹 투자전략을 담당해왔다. 카카오X가 단순히 기존 계열사를 관리하는 역할을 넘어 보유 자산과 투자재원을 활용해 새로운 성장기회를 발굴하는 주체가 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카카오X는 자체적으로 마련한 약 2조3000억원과 주요 자회사가 보유한 약 4조1000억원 등 총 6조4000억원 규모의 성장재원을 활용할 방침이다. 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 등 테크핀과 콘텐츠·모빌리티 사업을 성장시키는 동시에 가상자산과 피지컬 AI, 글로벌 팬덤 등에서 제2의 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카카오모빌리티를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카카오AI는 카카오톡과 AI, 광고·커머스를 묶고 자회사 지원 부담을 덜어 카카오톡에서 창출되는 현금흐름을 AI 투자와 수익화에 집중한다.
증권가에서도 이번 분할을 그간 자회사 관리에 묶여 있던 자금과 의사결정 역량을 성장 사업으로 돌리기 위한 선택으로 보고 있다. 김동우 교보증권 연구원은 “지난 5년간 카카오 이사회 안건의 85%가 자회사 지원 및 구조개편 의사결정이었으며 총 5조3000억원의 현금 투자액 가운데 3조8000억원가량이 자회사 리밸런싱에 소요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인적분할은 밸류에이션 할인 해소와 자금 활용 및 의사결정 과정 효율화를 통한 성장 속도 복원을 위한 합리적인 포석”이라고 평가했다.
분할 이후 카카오AI가 독립적인 성장 사업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됐다는 분석이다. 정의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카카오AI가 광고·커머스·AI 순수 사업체로서 PER 기반 평가가 가능해지고 자회사 지원에 쓰이던 현금흐름이 AI 투자와 환원으로 돌아오는 자본배분 구조를 갖추게 됐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는 “모바일 시대 카카오는 가보지 않은 길에 가장 먼저 뛰어들어 혁신을 만들고 사용자의 일상을 바꿔 왔다”며 “AI 시대는 차원이 다른 민첩함을 요구하는 만큼 카카오AI와 카카오X 두 개의 엔진으로 성장 구조를 재설계해 그 성과가 주주와 이용자, 크루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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