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금융지주 지배구조를 향해 ‘부패한 이너서클’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관치금융을 막기 위해 자율성을 확대했지만 그 자리를 소수 내부 인사의 폐쇄적인 권력구조가 대신했다는 문제의식이다. 금융지주 회장의 권한과 CEO 승계구조를 둘러싼 논란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돼왔다. 딜사이트는 금융지주 권력이 어떻게 형성되고 승계되는지, 이를 견제할 장치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짚어본다. [편집자 주]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금융지주사 지배구조가 도마 위에 오른 배경에는 ‘주인 없는 회사’라는 태생적 특성이 자리 잡고 있다. 국내 은행과 은행지주는 산업자본의 금융회사 지배를 제한하는 금산분리 원칙과 소유 규제를 적용받는다. 특정 대주주가 금융회사를 사금고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지만, 동시에 오너기업과 같은 뚜렷한 지배주주가 등장하기 어려운 소유구조를 만들어낸 핵심 배경이기도 하다.
이에 주요 금융지주는 다수 주주에게 지분이 분산되고 전문경영인과 이사회가 경영을 맡는 체제가 자리 잡았다. 문제는 특정 지배주주가 경영진을 견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사회마저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다. 현직 경영진을 중심으로 영향력이 집중되고 이를 다시 견제할 뚜렷한 주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게 ‘참호 구축’과 ‘이너서클’ 논란의 출발점이다.
금산분리와 소유 규제가 금융회사의 사금고화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였다면, 이러한 규제 아래 자리 잡은 소유분산 구조에서 전문경영인의 권력화를 어떻게 견제할 것인지는 또 다른 지배구조 과제가 된 셈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직접 개입하면 관치금융 논란을 피하기 어렵고, 금융회사 내부의 자율적인 견제에만 맡기면 현직 경영진과 이사회를 중심으로 권력이 고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요 금융지주의 최대주주 또는 주요 주주로 자리 잡은 국민연금의 역할이 주목받는 이유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지주회사는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를 제한하는 금산분리 원칙과 함께 동일인의 주식 보유에도 별도의 규제를 받는다.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일반은행 지주회사는 동일인이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10%를 초과해 보유하는 데 제한을 받으며, 지방은행 지주회사는 예외적으로 최대 15%까지 보유할 수 있다. 산업자본인 비금융주력자에는 별도의 보다 엄격한 소유 제한이 적용된다.
국내 금융지주사 7개사의 최대주주 지분율을 살펴보면 소유분산 구조는 뚜렷하게 드러난다. 올해 상반기 기준 KB금융지주와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의 최대주주는 모두 국민연금공단이지만, 지분율은 각각 9.23%, 9.19%, 8.90%로 집계됐다. 우리금융지주의 최대주주는 우리금융과 우리은행 우리사주조합이며, 지분율은 8.51%다.
지방금융지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BNK금융지주 최대주주인 롯데쇼핑과 특수관계자 지분율은 10.82%, JB금융지주 최대주주인 삼양사 등의 지분율은 14.85%다. iM금융 역시 최대주주인 OK그룹의 지분율이 9.99%에 그친다. 7개 금융지주 모두 최대주주 지분율이 15%에 못 미칠 정도로 지분이 분산돼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소유구조는 오너기업과 달리 특정 주주가 경영진을 일방적으로 지배하기 어렵게 만든다. 전문경영인과 이사회를 중심으로 독립적인 경영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견제의 주체가 불분명해질 수 있다는 문제도 안고 있다.
특히 최고경영자(CEO) 선임과 연임 과정에서는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이 부각될 수 있다. 회장을 비롯한 현직 경영진이 주요 인사를 통해 차기 후보군 형성에 영향력을 미치고, 현직 경영진과 장기간 호흡을 맞춘 사외이사들이 다시 차기 회장을 결정한다면 내부 견제가 약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 ‘참호 구축’과 ‘셀프 연임’ 논란이 반복되는 배경도 이 같은 소유분산 구조와 맞닿아 있다.
◆'주인 없는 금융사' 누가 견제하나…국민연금 역할론
금융권 안팎에서 국민연금이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정부를 대신해 금융회사 경영에 개입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뚜렷한 지배주주가 없는 금융지주에서 주요 주주이자 기관투자자로서 CEO 선임 절차의 투명성과 이사회의 독립성, 후보군 관리의 공정성을 따지는 외부 견제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에 가깝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KB금융·신한금융·하나금융의 최대주주인 동시에 다른 금융지주에서도 상당한 지분을 보유한 주요 기관투자자다. 국민연금은 올해 상반기 기준 우리금융 지분율 6.43%의 2대주주에 올라 있으며, BNK금융과 JB금융 지분도 각각 7.03%, 5.46% 보유하고 있다. iM금융 지분율 역시 8.56%에 달한다.
7개 금융지주 모두에서 의미 있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공통 기관투자자인 셈이다. 특정 금융지주의 경영권을 좌우할 정도의 지분은 아니지만 CEO와 사외이사 선임 등 지배구조 안건에서 국민연금의 판단이 시장에 던지는 신호는 작지 않다.
국민연금이 소유분산기업의 CEO 승계 문제에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낸 전례도 있다. 금융회사는 아니지만 KT와 포스코홀딩스가 대표적이다. 두 회사 역시 뚜렷한 지배주주 없이 전문경영인과 이사회가 경영을 맡는다는 점에서 금융지주와 유사한 지배구조 문제를 안고 있다.
KT에서는 2022년 구현모 당시 대표의 연임 과정에서 후보 선정 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은 CEO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라는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취지로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구 전 대표는 이후 연임 도전을 포기했다.
포스코홀딩스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나왔다. 최정우 당시 회장의 연임 가능성을 둘러싸고 ‘셀프 연임’ 논란이 제기되자 국민연금은 CEO 선임 절차의 공정성에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최 전 회장은 이후 차기 회장 후보군에 포함되지 않았다. KT와 포스코 사례는 국민연금이 특정 CEO를 직접 선택하지 않더라도 승계 절차와 이사회 독립성을 문제 삼는 방식으로 소유분산기업의 외부 견제자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논쟁은 금융지주에서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앞서 국민연금은 2023년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의 선임 당시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 등과 관련한 기업가치 훼손과 감시의무 소홀을 이유로 반대표를 행사했다. 2022년에는 하나금융그룹의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신입사원 채용 비리 재판 등을 문제 삼으며 함영주 회장의 선임안에 반기를 든 바 있다.
진 회장과 함 회장 모두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과반의 찬성표를 얻어 선임안이 통과됐다. 이는 국민연금이 주요 금융지주의 최대주주라고 해도 단독으로 CEO 선임 여부를 좌우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대로 주요 주주가 후보자의 책임과 적격성에 대한 판단을 공개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다른 주주와 시장의 관심을 환기하는 역할은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제2의 관치'는 안 된다…사람 아닌 절차 견제해야
국민연금의 역할이 커질수록 경계해야 할 지점도 분명하다. ‘주인 없는 금융회사’의 내부 권력을 견제한다는 이유로 국민연금이 특정 후보의 선임이나 배제를 사실상 좌우한다면 정부와 금융당국의 직접적인 인사 개입과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부 권력을 견제하려다 또 다른 외부 권력이 CEO 인선을 좌우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역할은 ‘누가 회장이 돼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회장을 뽑는 절차가 공정했는가’를 감시하는 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후보군을 충분히 열어뒀는지, 현직과 외부 후보에게 공정한 경쟁 기회를 제공했는지, 회추위와 이사회가 현직 회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판단했는지 등을 일관된 원칙에 따라 평가하는 방식이다.
국민연금뿐 아니라 다른 기관투자자까지 같은 원칙에 따라 주주권을 행사한다면 정부가 CEO 인사에 직접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소유분산 금융회사의 내부 권력화를 견제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관치냐 내부 자율이냐’라는 오래된 양자택일에서 벗어나 시장을 통한 견제 장치를 만드는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지배구조 전문가는 “국민연금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승계 절차의 투명성과 후보군 관리의 실효성, 이사회의 독립성, 객관적인 성과 평가”라며 “특정 후보에 대한 선호를 드러내기보다 일관된 원칙에 따라 승계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감시하는 것이 기관투자자로서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Home
